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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 사진으로 기록한 재일동포 1세들의 마지막 초상
이붕언 지음, 윤상인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61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이붕언 엮음
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3.5.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이붕언/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은 ‘일본에서 나고자란 한겨레’인 이붕언 님이 ‘일본에서 일하고 살아온 한겨레’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은 자취를 갈무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일본에서 일하며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붙잡히거나 끌려가야 한 분이 있고, 이 나라에서는 입에 풀바를 길이 없어 떠나야 한 분이 있고, 시달리고 들볶이는 살림이 벅차 건너간 분이 있습니다.
마을이 아름답다면 누구나 곱게 품습니다. 나라가 사랑스럽다면 누구나 반가이 안습니다. 마을이 아름답지 않기에 한켠에서 울며 괴로운 사람이 있고, 나라가 사랑스럽지 않아 한쪽에서 멍들며 슬픈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총칼을 벼린다고 할 적에는, 이 총칼로 으레 옆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총칼이란 옆사람을 이웃 아닌 밉놈으로 삼아 짓밟고 죽이려고 하는 싸움연모이거든요. 그런데 사람은 총칼로만 이웃을 짓누르거나 죽이지 않아요. ‘개밥도토리’란 말이 있듯 우리 겨레도 스스로 옆사람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일삼았습니다. 아무래도 사람하고 사람 사이를 따순 마음이 아닌, 높낮이(신분·계급·돈·이름·힘)로 가르는 틀을 두었으니, 때리는 쪽하고 맞는 쪽이 있기 마련입니다.
옆에 있대서 이웃이 되지 않습니다. 담 하나를 마주하는 사이라서 이웃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옆에 있는 나라하고 더없이 가까운 사이가 될 만하기에, 우리한테 넉넉한 살림을 나누어 주고, 우리한테 없는 살림을 나누어 받으면 서로 좋겠지요. 나라지기라면 나라하고 나라가 사이좋도록, 고을지기라면 고을하고 고을이 사이좋도록, 마을지기라면 집집이 사이좋도록, 슬기롭게 이끌 노릇입니다
이곳에 있든 저곳에 있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이웃나라에서 일거리를 찾아서 살림을 짓고 살아가기에 ‘재일조선인’이라면, 이 나라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재한조선인’일까요?
서로 아끼는 가까운 사이는 ‘동무’입니다. 동글동글 어우러지고, 동글동글한 마음이에요. ‘동포(同胞)’란 한자말은 “1.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 2.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만, 글쎄요, 참말로 따스하게 한겨레를 일컬으려고 이 이름을 붙인다는 생각은 터럭만큼도 안 듭니다. ‘우리하고 다르잖아?’ 하는 뜻으로 금을 그으려고 이 이름을 쓴다고 느껴요. ‘한배를 타는’ 사이라면, 한살림을 꾸리는 동무가 되자면, 한사랑으로 나아갈 이웃으로 살자면, 가장 수수한 이름인 ‘이웃·동무·마을’으로 돌아가서 바라보고 어깨를 겯어야지 싶습니다. 이제는 눈물을 닦고 웃음으로 가길 바라요.
ㅅㄴㄹ
“먼 길 오셨네.” “네, 조금요. 이런저런 옛날이야기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야기할 수야 있지만 한량이 없어서…….” 말문을 연 지 얼마 안 돼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려내렸다. 그 순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1쪽)
“일본에 와서 제일 힘들었던 건 그야 탄광이지. 그때가 열예닐곱 살이었으니 아직 어린애잖소. 느닷없이 데려와서는 처박은 거지. 탄광이란 게 어지간해서는 못 배기는 곳이오. 돌덩어리가 머리 위에서 데굴데굴 떨어지는 곳이니까.” 드디어 그는 탄광에서 도망쳤다. (42쪽)
“한국에는 가 보고도 싶다오 태어난 곳은 역시 그리운 법이거든. 그렇지만 생활하기는 어려워. 27년 만에 고향에 갔는데 아무것도 없었수. 저기에 내가 자란 마을이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멀리서 바라보며 울기만 했지.” (49쪽)
일본이 전쟁에서 지자,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옷가지와 가재도구를 전부 팔아치우고 배를 기다렸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147쪽)
조선에 가면 목숨은 건진다. 인간답게 살 수 있다.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일본에 있는 조선인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1년 후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밀항선이 끊이지 않았다. “고향에서는 살 수 없어. 돌아가지 마!” 밀항으로 돌아온 조선인들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2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