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한뼘은 씨앗 한 톨 (2020.12.22.)

― 서울 〈한뼘책방〉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으려고 태어납니다. 온누리 모든 어른은 사랑하려고 짝을 맺고 동무를 사귀고 이웃으로 지냅니다. 온누리 모든 풀꽃나무는 푸르게 우거지는 숲을 사랑하려는 숨결이지 싶습니다. 온누리 모든 책은 이 삶을 슬기롭게 사랑하는 상냥하면서 싱그러운 빛을 품고 태어나지 싶습니다.


  서울 한켠에 한뼘으로 싹을 틔운 〈한뼘책방〉은 헌책집이면서 책을 펴내는 터전이었습니다. 2020년 12월 22일을 끝으로 책집살림은 접기로 했습니다만, 서울이라는 고장 한켠에서 한뼘만 한 숲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한뼘만 한 이야기로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책집은 처음에는 아주 작았습니다. 아니, 처음에는 책집조차 없어요. 삶을 생각으로 갈무리해서 글로 여민 작은 사람 몇몇이 종이에 이야기를 얹어서 나눈 조그마한 손길이 어느덧 퍼지고 자라면서 책집이란 자리로 피어났지 싶습니다. 즐거이 나누며 새로 꽃피우는 생각을 담은 책이 차츰 늘면서 책집도 어느새 책시렁을 늘리고, 나중에는 자리를 키워야 했어요.


  책숲(도서관)도 처음부터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웃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오면서 처음 선 책숲인데, 곳곳에 책집이 늘고 책사랑이 뿌리내리면서 비로소 태어나는 책숲입니다.


  마을에서는 큰책집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마을에서는 큰가게여야 하지 않아요. 이 마을에서 사뿐사뿐 찾아가고 저 마을에서 산들산들 찾아옵니다. 알맞게 추리고 솎은 책으로 마음에 빛살을 담는 이곳에서는 조용히 몇 걸음을 떼면서 책내음을 맡습니다. 아늑히 쉬면서 한 쪽 두 쪽 넘기는 이곳에서는 햇살 한 조각을 함께 나누는 골목이웃 같은 마음으로 여러 갈래 이야기를 넌지시 맞아들이면서 꿈꿉니다.


  돌림앓이가 들끓는다지만 아침나절에 짐을 꾸립니다. 집안일을 얼른 마치고서 아이들한테 하루짓기 즐거이 하라고 얘기하고는 성큼성큼 이웃마을로 걸어가서 읍내로 가는 시골버스를, 이윽고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그리고 서울로 가는 빠른기차를, 서울에서는 전철로 구비구비 돌고서 잿빛집 사이를 달려서 〈한뼘책방〉에 닿습니다. 마지막날 마감을 한 시간 남긴 어두운 저녁에 닿았습니다. 책집 앞에서 숨을 고릅니다. 이 한뼘이 한살림을 이룬 손자취랑 발자국을 헤아립니다.


  온나라에 돌림앓이 얘기가 판칩니다만, 이제는 돌림사랑과 돌림읽기와 돌림나눔과 돌림밭으로 이야기 꼭지를 틀면 좋겠어요. 이 별은 사랑으로 돌아가는 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비는 아주 작지만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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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스나르의 구두》(스가 아쓰코/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20)

《서점, 시작했습니다》(쓰지야마 요시오/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8.11.10.)

《서울에서 보낸 3주일》(장정일, 청하, 1988.8.30.)

《庶民韓國史》(이규태, 샘터사, 1973.4.1.)

《ふるさと60年》(道浦母都子 글·金斗鉉 그림, 福音館書店, 2012.2.20.)

《우리 말과 헌책방 4》(최종규 글·사진, 그물코, 2007.12.10.)

《行ってみたいな こんな國 1∼5》(東 菜奈 글·그림, 岩崎書店, 1999.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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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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