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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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58


《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요시카와 나기 옮김

 비채

 2015.4.24.



  《사과에 대한 고집》(다니카와 슌타로/요시카와 나기 옮김, 비채, 2015)은 어떤 글을 묶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글님은 스스로 노래님이기를 바라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 묶은 글은 노래일 테지요. 노래꽃 한 자락을 쓰며 글삯을 얼마를 받든, ‘직업사전’이란 책에 ‘노래님(시인)’이란 일이 실리든 안 실리든, 스스로 노래님입니다.


  저는 우리말꽃을 짓는 사람이니 ‘우리말꽃지기(사전편찬자)’일 텐데, ‘직업사전’이란 책에 ‘사전편찬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있을까요? 아마 없지 않을까요? 날개를 타고 나라밖으로 나가야 할 때면 으레 ‘일(직업)’도 적어야 하는데요, 저는 ‘Korean-Dictionary writer’나 ‘Korean-Dictionary editor’로 적습니다. “하는 일”이란 바깥으로는 낱말책 쓰기요, 집에서는 집안일입니다. 그래서 곧잘 ‘살림지기’나 ‘살림꾼’으로 적기도 합니다.


  이렇게 적으면 으레 눈살을 찌푸려요. 틀에 안 맞는다고 하면서요. 그러나 일을 어떻게 틀에 맞추나요? 일이 ‘회사원·공무원·노동자·교사’만 있나요? 은행이란 곳에서 일을 볼 적에도 “하는 일”을 적어야 할 때가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흙지기(농부)’는 안 보입니다. 우리 터전은 삶을 두루 품거나 고루 아우르는 길하고 자꾸만 멀어지지 싶어요. 틀에 맞추거나 가두거나 옭매어서 생각까지 틀박이로 얽어 놓는다고 느낍니다.


  이웃나라 일본이 우리나라를 총칼로 짓밟던 무렵에 ‘한글’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서 총칼에 맞선 이들은 일본뿐 아니라 이 나라 임금틀에도 맞섰습니다. 총칼나라가 물러난 뒤에도 매한가지예요. 사람들을 굴레에 가두려는 나라지기나 벼슬아치하고 맞서는 ‘말길’입니다. 배움터에서 달달 외우도록 가두는 그 배움수렁판에서 쓰는 말이 재미나나요? 배움터에서는 글(시·소설·수필)을 글맛이 나게 가르치나요?


  다시 《사과에 대한 고집》으로 돌아와 보면, 아니 내내 이 책을 놓고 빗대어 말했습니다만, 글님은 스스로 재미나고 즐겁게 글빛을 지으려고 했구나 싶은데, 자꾸자꾸 ‘안타깝고 안쓰러운 일본 터전에 시나브로 젖어든’ 빛이 제법 드러납니다. 밥을 먹고서 보임틀에 푹 빠져도 나쁘지 않지만, 밥을 먹고서 맨발로 풀밭을 거닐면 이녁 글빛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둘레에 나는 풀을 그때그때 조금 훑어서 밥으로 삼고 해바라기를 하면 이녁 글결이 새로우리라 생각합니다.


  능금은 능금이지요. 배는 배예요. 딸기는 딸기입니다. 언제나 그뿐입니다. 글은 글이요, 사람은 사람이고, 사랑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사랑’ 아닌 다른 낱말로는 나타낼 길이 없습니다. 하늘은 ‘하늘’일 뿐이기에, 창공이나 창천이나 상공 같은 낱말로는 도무지 못 그려요.


ㅅㄴㄹ


빨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색이 아니라 사과다. 동그라미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양이 아니라 사과다. 신맛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맛이 아니라 사과다. 비싼 가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값이 아니라 사과다.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가 아니라 사과다. (34쪽)


고구마 먹고 푸 / 밥 먹고 포 / 안 그런 척 헤 / 미안해요 파 // 목욕하며 뽀 / 남 몰래 스 / 당황해서 뿌 / 둘이 같이 뽕 (39쪽)


나쁘지 않다고 책은 생각했다 / 내 마음을 모두가 읽어준다 / 책은 책으로 있다는 게 / 조금 기뻤다 (69쪽)


저녁은 밖에서 먹을 때도 많다. 이제는 조식粗食이 체질에 맞아서 집에 있을 때는 채소를 쪄서 현미밥과 함께 먹는다. 식후는 당연히 텔레비전을 보게 된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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