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54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장정일 글

 청하

 1988.8.30.



  우리가 말을 한다면, 우리가 나고자란 터전에서 마주한 어른이며 또래한테서 들은 말이 바탕입니다. 우리가 글을 쓴다면, 우리가 어릴 적부터 곁에 둔 글이며 책에 흐르는 글이 바탕이에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말씨가 다르고, 어떤 글이며 책을 얼마나 읽느냐에 맞추어 글씨가 다릅니다. 《서울에서 보낸 3주일》 같은 노래책을 쓴 장정일 님은 ‘스스로 책을 숱하게 찾아헤매며 읽’기도 했다지만, ‘고등학교·대학교’라는 배움수렁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마침종이(졸업장)를 앞세운 끼리질하고 동떨어졌습니다. 이렇다 보니 장정일 님 글은 홀가분합니다. 홀로 가볍게 날아오릅니다. 멋스러이 보이려고 꾸미지 않고, 누구 눈치를 안 보고서 스스로 마음에 흐르는 생각을 고스란히 폅니다. 1988년에 나온 장정일 노래책을 2020년에 읽다 보니, 요즈막 적잖은 글꾼이 ‘장정일 흉내’를 내는구나 싶더군요. 그런데 장정일 님은 배움책이나 마침종이나 끼리질이나 스승좇기를 잘라낸, 스스로 일구는 삶에서 피어나는 글입니다. ‘장정일 흉내’는 ‘희번덕거려 보이려고 꾸민 얼렁뚱땅 포스트모던’에 그칩니다. 두 손으로 살림을 하고, 아기를 돌보고, 숲을 품고, 사랑을 꿈꾸면 글빛이 흐드러져요. 모든 글은 늘 삶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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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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