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식욕과 나 1 - 픽시하우스
시나노가와 히데오 지음, 김동수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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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입가리개 어긴값’으로는 더 앓는다



《산과 식욕과 나 1》

 시나노가와 히데오

 김동수 옮김

 영상출판미디어

 2017.11.1.



  11월 한복판에 논개구리가 밤에 고로로 나즈막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꼭 하나가 논도랑에서 노래를 합니다. 풀개구리도 거의 12월까지 꿈길로 안 가고 풀밭이나 축축한 곳을 찾아서 돌아다니곤 합니다. 늦가을까지 돌아다니는 개구리는 가을빛을 더 누리고 싶은 마음일 테지요. 겨울이 기니 긴잠에 들기 앞서 온누리를 더 맞아들이고 싶어한다고 느껴요.


  겨울을 앞두고 겨울철새가 찾아옵니다. 봄에는 여름철새가 찾아오지요. 겨울철새는 텃새하고 퍽 떨어진, 아니 다른 터전에서 먹이를 찾고 날개를 쉬면서 지냅니다. 우리 집 둘레에서 살아가는 작은 텃새 노랫소리로 아침을 열고, 두루두루 날아다니는 겨울철새 날갯짓소리로 낮을 보냅니다.



‘촉촉하게 땀이 맺히고, 헉헉대지 않을 정도로 숨이 차올라. 응, 들어갔어. 자신만의 리듬으로 걸으면 진짜로 기분 좋아!’ (7쪽)



  고흥쯤 되는 시골집에서 살기에 낮에는 새파란 하늘에 문득 스치는 흰구름을, 밤에는 새까만 하늘에 가득 쏟아지는 별빛을 누립니다. 그러나 고흥쯤 되는 시골이어도 면소재지나 읍내는 불빛이 제법 있으니 별빛을 누리기에는 안 좋아요. 서울사람이라면 순천을 시골로 여길 터이나, 순천조차 밤별을 누릴 만하지는 않습니다. 광주 대구 부산 인천이라면 별빛이 더더욱 드물고, 서울은 아예 없다시피 하지요.


  우리는 무엇을 만나고 마주하고 맞이할 적에 즐거이 하루를 열까요? 우리 곁에 무엇이 있을 적에 튼튼하고 든든하며 믿음직할까요?


  철마다 다른 철새를 만나지 못하고서, 철마다 다른 별자리를 읽지 못하고서, 철마다 다른 바람맛을 보지 못하고서, 철마다 다른 아침저녁을 누리지 못하고서, 우리 몸이 튼튼길을 갈 만할까요?



‘아아, 어이해 산은 누구의 눈에도 아름답게 비치는지 묻노라. 그러나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은 허락될지언정 답하는 것은 용서되지 않으리.’ (31쪽)



  큰고장에서 살며 이레끝(주말)마다 멧길을 타는 아가씨 이야기를 다루는 《산과 식욕과 나 1》(시나노가와 히데오/김동수 옮김, 영상출판미디어, 2017)를 읽으며 2020년 모습을 가누어 봅니다. 적어도 이레끝 이틀이라도 멧길을 두 다리로 타면서 숲바람을 쐬는 살림이라면 이럭저럭 튼튼몸을 건사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멧길이 아닌 들길을 걸어도 좋고 달려도 좋습니다. 또는 볕이 좋은 곳에서 텃밭일을 해도 좋고, 텃밭일을 마치고서 풀밭에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해도 좋아요. 우람한 나무를 타고 굵직한 줄기에 앉아 바람을 마셔도 좋겠지요.



‘방금 걸어온 등산로 쪽에서 무거운 비구름이 보여. 틀림없이 저 근처는 아직 비가 내리겠지. 빗속이 아니라 비구름 속을 걸어온 거야.’ (67쪽)


식후에는 다시 능선에 나가 자신을 두고 내일로 떠나는 태양에게서 위대한 우주를 피부로 실감한다. (77쪽)



  2020년 늦가을, 나라에서는 ‘입가리개를 안 하고 다니면 어긴값(벌금)을 매기겠다고 밝힙니다. 사람이 물결치는 큰고장이라면 그럴 만하겠구나 싶으면서도, 사람이 물결치는 큰고장일수록 더더욱 ‘두려움도 걱정도 없이 이웃하고 사이좋게 지낼 길’을 마련해야 슬기롭고 참다운 나라지기나 나라일꾼이리라 생각합니다. 어긴값을 매기겠다고 벼르거나 이모저모 애쓰기보다는, 큰고장 곳곳에 풀밭이며 나무밭을 마련할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씽씽이(자동차)를 줄이고, 씽씽이를 아무 데나 못 대도록 치우면서,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돌볼 노릇이지 싶습니다.


  사람이라면 생각해야지요. 숲이나 바다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돌림앓이로 헤매는 일이 없을 뿐더러, 숲사람이나 바닷사람 가운데 누가 앓아눕더라도 숲이며 바다가 아픈 데를 어루만져서 씻어내어 줍니다. 무엇보다도 돌봄터(병원)에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숲을 품고 바다를 안는 시골로 떠나서 조용히 맑은 물바람을 누리면서 깨끗하게 털고 일어나곤 합니다.


  다시 말해서, 큰고장 사람들이 애써 먼먼 시골로 몸을 달래러 떠나도록 하지 말고, 큰고장 곳곳이 시골처럼 아름숲이 되고 아름들이 되도록 터전을 갈아엎을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잿빛집(아파트)을 치운 자리를 숲으로 가꿀 노릇입니다. 찻길을 한 줄씩 줄이면서 숲으로 가꿀 일입니다. 큰고장 사람들 누구나 입가리개 없이 튼튼히 살아갈 길을 마련할 나라지기요 나라일꾼 아닐까요?



‘하지만 친구가 있어도 산에는 혼자 올 것 같아. 실제로 이렇게 혼자 왔고. 내가 홀로 등산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왜 혼자서 산에 오는 걸까?’ (115쪽)


‘아아, 태양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의 기분을 알 것 같아. 우동이 빛나고 있어!’ (120쪽)



  그림꽃책 《산과 식욕과 나》를 펴면 이레끝마다 멧길을 타는 아가씨가 멧자락이나 멧꼭대기나 냇가에서 도시락을 누리는 줄거리가 흐르는데, 여느 달삯쟁이로 일할 적에는 느끼지 못하던 맛밥을 느낀다고 합니다. 고기떡(소시지) 하나를 먹어도, 큰고장 한켠에서 먹을 때하고 숲에서 먹을 적에는 맛이 사뭇 다르다지요. 국수를 삶아 먹어도 멧꼭대기에서는 더없이 훌륭한 맛이라지요.


  따르릉 하고 걸어서 시켜 먹는 바깥밥은 얼마나 맛있거나 이바지할까요? 들에서 냇가에서 바닷가에서 숲에서 멧골에서 고즈넉히 부는 푸른 숨결을 맞아들이면서 누리는 조촐한 도시락이야말로 큰고장 사람들 몸을 살리는 길이리라 봅니다.


  억누르는 길은 갑갑합니다. 갑갑한 길로는 튼튼하거나 즐겁지 못합니다. 튼튼하거나 즐겁지 못하다면 돌림앓이는 안 사라집니다. ‘큰고장을 다녀온 사람’이나 ‘큰고장에서 놀러온 사람’ 탓이 아니고는 이 나라 어느 시골에서도 돌림앓이에 걸린 사람이 없다는 대목을 나라지기나 나라일꾼은 얼마나 읽을까요? 아프거나 앓기 쉬운 큰고장 사람들을 제대로 헤아리려 한다면, 이제 서울 한복판에서 모든 씽씽이(자동차)가 멈추도록, 두 다리로 거닐 숲길을 마련하도록, 생각머리를 돌려세워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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