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책 쥐는 손길 : ‘책읽기’도 책읽기일 테지만 ‘책을 쥐는 손길’조차 배움터에서 못 배우기 일쑤이다. 책숲(도서관)이나 배움터에서 책읽기를 가르치거나 보여주기 앞서 ‘책을 쥐는 손길’부터 가르쳐야 할 텐데, 책숲도 배움터도 어린이·푸름이한테 ‘책을 어떻게 쥐고 다루고 만지는가’를 보여주지도 알려주지도 않는다. 책숲지기(도서관 사서)나 길잡이(교사) 가운데 쥠새(책 쥐는 손길)를 제대로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 그들도 열림배움터(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쥠새는 배운 적도 본 적도 없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쥠새는 먼저 어버이한테서 배운다. 어버이가 집에서 책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지켜보고 고스란히 따라하지. 어버이가 집안살림을 어떻게 매만지느냐를 그대로 따라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책집으로 마실을 다닐 적에 책집지기한테서 쥠새를 배울 수 있다. 이때에는 어버이나 어른도 책집지기한테서 쥠새를 제대로 배울 노릇이다. 같이 배워야지. 생각해 보라. 밥지기(요리사)가 되려 할 적에 쥠새가 엉성하거나 엉터리라면 아무것도 안 가르쳐 준다. 주먹솜씨(무술)를 가르칠 적에도 몸차림이 엉성하거나 엉터리라면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지. 그런데 책은 너무 마구 읽혀 버리고 만다. 책을 제대로 쥐지 않고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망가뜨리는 손길로 책을 많이 읽는들, 엉성하거나 엉터리인 손길에서 어떤 마음길로 이어질까? 왜 예부터 배울 적에는 반듯하게 앉으라 하겠는가? 왜 예부터 배우는 사람더러 등허리를 꼿꼿이 펴고 차분히 지켜보면서 마음을 모으라 하겠는가? 책은 누워서 읽어도 좋고, 국수를 삶아서 먹으며 읽어도 좋다만, 쥠새가 제대로 서지 않은 채 눕거나 국수먹기를 한다면 책이 망가지거나 다친다. 쥠새가 제대로 서면 칙칙폭폭(기차)을 타든 씽씽이(자동차)에서든 책을 고이 건사하면서 즐거이 읽을 만하다. 글씨쓰기를 할 적에 붓을 똑바로 힘을 실어 쥐도록 이끌듯, 책읽기를 할 적에도 책을 참하게 쥐고서 읽도록 먼저 이끌어야겠지. 섣불리 책을 펴서 줄거리부터 읽히지 말 노릇이다. 제대로 쥘 줄 모르는 사람한테는 책이고 나발이고 없다. 1999.11.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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