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해는 높고 잎은 물들고 (2020.10.31.)

― 순천 〈책방심다〉


  이틀을 전주에서 묵습니다. 어제는 새벽 두 시부터 일어나 노래꽃을 썼다면, 오늘은 아침 여섯 시에 느즈막이 일어나 노래꽃을 씁니다. 노래꽃을 쓰는 바탕은 늘 풀꽃나무입니다. 눈을 고요히 감고서 마음귀를 살며시 열면 어느새 숱한 풀꽃나무가 바람빛으로 다가와서 속살거려요. “넌 오늘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니?”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면 재미날까?” “네가 궁금한 그 이야기는 이렇단다.” 같은 말로 조곤조곤 수다를 떠는데요, 이 수다는 제가 쓰는 노래꽃으로 새롭게 피어납니다.


  매우 향긋한 유칼립투스란 나무를 2011년에 제대로 만났지 싶습니다. 다만 그때에는 나무이름을 몰랐어요. 마을에서도 나무이름을 다들 모르더군요. 나무를 잘 아는 분이 저희 책숲에 나들이를 오셔서 “누가 여기에 유칼립투스를 엄청나게 박아 놨네요!” 하고 알려주어서 비로소 깨달았어요. 오늘 새벽에 바로 이 ‘아름나무’ 이야기를 썼어요. 이러고서 기차로 순천으로 옵니다. 햇볕이 매우 좋습니다. 가을볕이지만 여름볕 못지않습니다. 이 볕살을 누리며 걷습니다. 고흥에서 아버지를 기다릴 아이들이 바라는 김밥을 넉 줄 장만합니다.


  다시 천천히 걸어 〈책방심다〉에 닿습니다. 처음 마루에 올라설 때만 해도 책손은 혼자였으나, 이내 왁자지껄 북적북적 손님이 들어찹니다. 손님이 이리저리 물결을 치니 섣불리 빛그림을 찍기 어렵습니다. 한낮에 흐르는 이 빛살이 드리우는 책자락을 살포시 바라보다가 찰칵 하고 한 칸을 담으면 참으로 아름다울 텐데요.


  그림책 《엄마를 산책시키는 법》을 모처럼 다시 들춥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혼책(독립출판물)을 읽습니다. 마흔두 살에 숨졌다고 하는 나라밖 글님이 남긴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상주로 삶터를 옮겨 한 해를 살아낸 분이 쓴 혼책을 집어듭니다. 이분은 “상주로 내려갔다”고 말합니다만, 서울에서 상주를 가면 ‘갈’ 뿐입니다. 내려가지 않습니다. 또 서울로 올라갈 일이 없습니다. 서울로 ‘갈’ 뿐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얄궂은 말씨가 무척 퍼졌는데요, 배움터나 마을에서 제대로 짚어 주어야지 싶어요. ‘시골로 내려가다’도 ‘낙향’도 아닙니다. ‘시골꽃길’을 갑니다. ‘서울로 올라가다’도 ‘입성’도 아닙니다. ‘서울삶길’을 갑니다.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요. 이곳에서 살고 저곳에서 삽니다. 저마다 즐겁게 꿈을 밝힐 길로 나아갑니다. 스스로 신나게 사랑을 지필 삶을 헤아립니다. 오늘도 〈책방심다〉에 포근포근 넘실넘실 해님이 깃들고, 이 해님을 품으려는 책손은 다들 아름책 하나씩 가슴에 안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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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가씨 화이팅》(노니 글·짓키 그림, 킷키노니, 2020.8.7.)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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