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나비처럼 노래하는 나날 (2020.9.26.)

― 서울 〈니은서점〉


  여느 해보다 길디긴 장마철에는 햇살놀이를 못 누렸습니다. 그러나 구름놀이는 실컷 누렸어요. 장마가 가시고서 하늘이 파랗게 튼 다음부터는 장마철하고 사뭇 다른 구름놀이를 맞이합니다. 비를 안 뿌리는 구름은 끝없이 새롭게 흐르는 하양놀이입니다. 하양이란 빛깔을 파랑이란 바탕에서 ‘똑같은 꼴이 하나도 없이 새롭게 빚어서 선보이는 잔치마당’이라고 하겠어요. 마당에서 아이들하고 함께 뛰면서 구름빛을 누리고, 작은아이를 샛자전거에 태워 함께 들마실을 하며 구름결을 즐깁니다.


  상주에 갈 일로 먼저 서울로 가서 하루를 묵기로 합니다. 시골을 떠난 버스가 빠른길을 씽씽 달릴수록 하늘빛에서 파란 기운이 줄어듭니다. 서울에 닿을 무렵에는 파란하늘 아닌 잿빛하늘입니다. 하늘빛은 서울에서는 이렇게 뿌옇군요. 그나마 조금은 파란 기운이 남았는데, 고흥에서 늘 마주하는 파란하늘을 헤아린다면, 서울은 ‘하늘빛이 없는 고장’이로구나 싶어요.


  이웃님 이웃을 거치고 지나 〈니은서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ㄴ씨가 꾸리기에 니은서점일 수 있고 ㄴ이라는 말밑으로 새롭게 날개를 펴고 내남없이 놀이하는 노래가 흐르는 니은서점일 만하겠지요. 저는 ㄴ이라는 말에서 늘 ‘날개·나비·놀이·노래·넉넉·나긋·느긋·눈눈눈’을 그려요. ‘눈눈눈’이란 하늘눈이랑 몸눈이랑 싹눈 세둥이입니다.


  서울 연신내에는 오래도록 〈문화당서점〉이 뿌리를 내리면서 책사랑을 둘레에 폈습니다. 연신내가 술집거리가 아니던 무렵부터 알뜰히 책살림을 가꾸던 〈문화당서점〉인데, ‘알라딘 중고샵 연신내 가게’가 생긴 지 이레였나 보름 만에 〈문화당서점〉 책지기님은 오랜 책길을 끝내기로 하셨어요. 젊은물결은 노닥거리고 새옷 차려입고 술이랑 커피만 마시는 삶은 아닐 텐데, 어쩐지 ‘젊은거리·젊은문화’는 한켠으로만 기웁니다. 연신내랑 불광동이랑 구산동에는 마을책집이 수두룩했는데 몽땅 스러졌어요. 그래도 그 은평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열며 숨통을 틔웠고, 이제 〈니은서점〉이 새싹을 돋으려고 합니다.


  나비처럼 노래하는 나날을 책집살림으로 담으면 좋겠습니다. 더 깊거나 너른 인문학보다는 마을길이 꽃길로 피어나도록 곁에서 상냥하게 돌볼 줄 아는 즐거운 날갯짓인 책누리가 되면 좋겠어요. 책날개란 ‘더 많은 책’이 아닌 ‘즐겁고 사랑스러운 책’이지 싶어요. ‘더 좋은 책’이 아닌 ‘푸르게 숲을 노래하는 맑고 환한 눈빛을 들려주는 책’일 테고요.


  밤샘을 마친 고흥에서 일곱 시간을 달려 〈니은서점〉에 닿아 조용히 책 석 자락을 골랐습니다. 푸른 빛살이 감도는 책집을 사진으로 담고팠는데, 손님이 자꾸 줄이어 사진기는 집어넣었어요. 이다음에 찾아와서 찍으면 되겠지요.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노명우, 클, 2020.9.2.)

《깨달음의 혁명》(이반 일리치/허택 옮김, 사월의책, 2018.8.1.)

《새는 건축가다》(차이진원/박소정 옮김, 현대지성, 2020.3.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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