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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전쟁 - 한국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동아시아 냉전 위생 지도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0년 6월
평점 :
숲책 읽기
인문책시렁 138
《전염병 전쟁》
이임하
철수와영희
2020.6.10.
지금까지 국민방위군 사망자는 대개 얼어죽거나 굶어죽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상당수의 국민방위군이 전염병인 발진티푸스로 사망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4쪽)
위생은 경찰의 강압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며 한 사람의 마음이 아닌 시민 또는 국민의 모든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20쪽)
국민방위군으로 동원된 청장년들은 모두 교육대에 도착하면 군복을 배급받으리라 예상했다. 그 때문에 여분의 옷을 챙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동할 때나 교육대에서도 그들은 작은 공간에서 20∼30명씩 함께 지냈다. (91쪽)
미국에서 가장 문제가 된 지점은 바로 DDT의 항공살포였다. 하늘에서 하얀 가루 비가 내렸던 항공살포였다. 그리고 생태계를 변화시켰던 것도 항공살포였다. (144쪽)
1780년 이후부터 의사들이 작성하는 조사서에는 서민은 청결하지 못한 반면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부르주아는 상대적으로 청결하다는 이분법이 점점 더 강조되었다. (257쪽)
엄청난 화학적 공격에도 견뎌내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심지어 번성할 수 있었다. 사실, 굴복했다기보다 학질(말라리아) 모기들은 한때 강력했던 화학물질에 대한 저항력을 발달시켰고, 엄청난 양의 번식을 계속했고, 인간들에게 질병을 퍼트렸다. (325쪽)
공포심은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를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공포심의 조장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공포심은 곧 공격성을 드러내고 공격은 항상 약한 대상을 향한다. (333쪽)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미움으로 살아가요. 두려워하는 사람은 두려운 눈빛으로 살고, 꺼리는 사람은 꺼리는 몸짓으로 삽니다. 노래하는 사람이기에 노래하는 살림입니다. 놀이하는 사람이라서 놀이하는 살림이지요.
사랑살림에는 미움도 두려움도 없어요. 미움살림에는 미움이 있을 뿐, 사랑이 없어요. 노래살림에는 노래가 바탕이면서 사랑하고 놀이가 찾아들 만합니다. 꺼림살림에는 사랑이며 노래이며 놀이를 꺼리기 일쑤이면서 자꾸자꾸 미움이나 두려움을 끌어들여요.
돌림앓이판이 또아리를 틀 뿐 아니라 뿌리를 내리는 2020년 한복판에 태어난 《전염병 전쟁》(이임하, 철수와영희, 2020)입니다. 오늘 우리는 돌림앓이판이 되면서 사랑도 노래도 놀이도 아닌, 미움이며 두려움이며 꺼림이라는 길로 자꾸 치달으려 합니다.
둘레를 봐요. 아픈이를 돌보거나 아끼려는 눈빛이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픈이를 미워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라거나 꺼리거나 두려워합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픈이한테 ‘앞으로 한결 튼튼하게 일어서려고 몸이 바뀐단다. 이럴 적에는 느긋이 쉬렴. 풀꽃나무를 마주하는 숲에서 푸른바람하고 파란하늘을 누리면 곧 나아.’ 하고 속삭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픈이를 외톨이로 내몰고, 모든 곳에서 가로막으면서 어떤 풀밭도 숲도 하늘도 꽃내음도 멀리하게끔 닦달합니다.
항생제가 나타난 뒤부터 ‘항생제 중독’이란 말이 같이 불거졌습니다. 처음에는 항생제가 잘 듣는가 싶지만, 어느덧 항생제에 길들거나 버티면서 끝끝내 처음보다 사납거나 모진 판이 된다지요. 농약으로 밉벌레를 없앨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농약으로는 그저 우리 목숨줄을 끊을 뿐입니다. ‘약을 먹어서 낫는 삶’에 길들면 약이 없으면 못 견디는 몸이 되고, 약발이 떨어질 적에 끔찍하도록 두려운 맛을 보기 마련입니다.
돌림앓이가 번질 적에는 왜 돌림앓이가 번지는가를 읽을 노릇입니다. 이 푸른별이 푸른별 아닌 ‘삽질별’에 ‘시멘트별’에 ‘아파트별’에 ‘싸움별’로 내몰고 말아 마침내 ‘미친별’로 치닫거든요. 예부터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이든 마을은 서로 알맞게 떨어졌고, 집도 서로 알맞게 떨어졌습니다. 이러면서 사이에 마당이며 텃밭이며 꽃밭을 가꾸었고, 나무가 우거지도록 돌보면서 숲정이를 건사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숱한 나라를 들여다보면 큰고장은 온통 시멘트밭입니다. 찻길이 빼곡하고 자동차가 넘쳐요. 이런 판에 안 아픈 사람이 있을까요? 멀쩡하던 사람도 픽픽 쓰러질 판입니다.
곧 죽어가려는 사람이 있기에 약도 마련해야겠습니다만, 약이 으뜸길이 될 수 없어요. 으뜸길은 숲입니다. 첫길은 풀꽃나무입니다. 이제는 아파트를 그만 지어야 하고, 앞으로는 찻길을 더 안 늘려야 합니다. 하늘나루를 줄이고, 저마다 조촐히 마을살림이며 집살림을 숲살림답게 가꾸도록 북돋울 노릇입니다. 학교는 입시지옥 아닌 배움터로 달라져야지요. 대학입시를 없애고, 고등학교를 마친 채로도 즐겁고 씩씩하게 마을일꾼이 되도록 이끄는 배움터로 거듭나야지 싶어요. 군대랑 전쟁무기가 아니라, 마을빛을 살찌우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할 테고요.
다만, 이 모든 길은 푸른별 모든 나라가 같이 나아갈 노릇입니다. 남북녘도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전쟁무기를 확 줄이거나 없애면서 푸른길로 거듭나기를 빌어요. 《전염병 전쟁》은 우리나라에서 싸움판하고 얽혀 얼마나 스스로 못난 짓을 일삼았는가를 낱낱이 드러냅니다. 이 못난 짓이 사람들을 길들이거나 바보로 몰아세운 짓도 꼼꼼히 밝힙니다.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 갇혀 먹이만 받아먹는 고기짐승살이’가 아닌 ‘너른들에서 손수 하루를 짓는 푸른넋살이’로 가야 합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