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세트 (완전 복원판 + 원서 복원판) - 전2권
엘리자베스 키스.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37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엘리자베스 키스·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지음

 송영달 옮김

 책과함께

 2020.6.10.



지난 십수 년간(1920∼30년대)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잘 간수해야 마땅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탁월한 그림, 도자기, 조각 등이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 일본은 훔쳐간 이 귀중품들을 다시 본고장인 한국으로 반환해야 한다. (27쪽)


빨래도 힘들지만 한국의 다듬이질은 정말 힘든 노동이다. 서울 어디를 가나 여자들의 다듬이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는 어떤 때는 새벽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이렇게 두드려 편 옷은 다시 새것처럼 된다. (44쪽)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집에 마당이 있고, 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논다. 어린아이들은 자기 장난감을 스스로 만들어서 논다. (59쪽)


서울에는 일본 정부가 운영하는 서양식의 호화스러운 호텔(조선 호텔)이 있었는데, 일본사람들은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호텔을 사양하고 감리교 의료 선교회관으로 들어가 한국 방문 기간 내내 그곳에서 지냈다. (67쪽)


한국 청년의 이야기를 이만큼 들었으니, 이제는 내가 잘 아는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이야기를 좀 해보자. 야나기는 젊었을 때 윌리엄 블레이크의 생애에 대해서 글을 썼고 한국 미술을 연구해 온 학자다, 그는 신문과 기타 매체에 조선총독부의 잔인성과 무능한 행정에 항의하는 글을 썼다. 일본인들은 육체적으로는 용감한 듯하지만 도덕적인 용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야나기는 도덕적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215쪽)



  흙살림을 하던 겨레는 이제 ‘농업’으로 바뀝니다. 흙살림이란 흙을 살찌우면서 사람이며 뭇숨결이 함께 살아가는 길입니다. ‘농업’이란 흙에서 한 줌이라도 더 거두어들여서 돈을 많이 벌려는 길입니다. 흙살림일 적에는 굳이 농약도 비료도 비닐도 기계도 안 씁니다만, 농업일 적에는 이런 여러 가지를 다 씁니다.


  흙살림길을 가던 때에는 벼를 거두면 볏줄기를 따로 말려 볏짚으로 삼았습니다. 볏짚은 지붕도 되고 짚신도 되며 새끼줄도 되어요. 이 새끼줄로 메주를 매달지요. 흙살림길이기에 새끼로 볏섬을 짜는데, 농업으로 바뀌면서 풀지붕이 사라지며 슬레트지붕이 되고, 짚신이 사라지며 플라스틱 신발이 되며, 새끼줄이 사라지며 플라스틱 끈이 되었습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엘리자베스 키스·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송영달 옮김, 책과함께, 2020)는 흙살림길이 차츰 농업으로 바뀌던 무렵에 이 나라에 찾아와서 지켜보고 돌아보고 생각한 나날을 담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스 님은 ‘올드 코리아’라 일컫는데, 오랜살림을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멀리하던 우리 모습을 안쓰러우면서도 따뜻하게 바라보았지 싶습니다.


  우리는 진작부터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는 정치에 사회에 문화에 행정에 교육에 종교에 과학에 문학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살림살이 가운데 손수 가꾸거나 지으면서 펴는 길은 얼마나 될까요? 어느 판을 보아도 한겨레다운 멋이란 없지 싶어요. 어느 판을 보든 일본 말씨에 일본 한자말에 번역 말씨에 영어가 너울거립니다.


  값진 빛줄기는 늘 우리 살림자리였으나, 우리 살림자리에 흐르는 흙빛이며 들빛이며 숲빛이며 물빛을 찬찬히 사랑한 손길이 매우 얕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한다면 삽질을 함부로 할까요? 우리가 이 터를 사랑한다면 전쟁무기를 함부로 끌어들일까요?


  다듬이를 하는 방망이나 돌이 사라질 만합니다. 다듬이질이 고되기에 사라진다기보다, 사내도 가시내도 집안일을 등지고 집살림하고 멀어지니 저절로 사라지지요. 물꼭지를 트는 살림이 퍼지니 냇물을 맑게 돌보려는 손길도 사라져요. 모든 물은 멧골에서 비롯하여 내·가람으로 흐르다가 바다로 가는데, 냇물이며 샘물이며 우물물을 마시는 살림이라면 흙에 농약을 안 뿌릴 테고, 바다에 쓰레기를 흘려보내지 않으며, 기름 먹는 배를 섣불리 안 띄우겠지요. 오랜길이 새길인 줄 잊은 곳에는 빛줄기가 퍼지지 못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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