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사 - 창의적인 수용과 융합의 2천년사
소병국 지음 / 책과함께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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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34


《동남아시아사》

 소병국

 책과함께

 2020.3.20.



동남아시아는 ‘물의 세계’라고 할 정도로 대부분의 지역이 강이나 바다 같은 물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지리적으로는 인도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위치에 있어 오래전부터 동서 세계를 해로로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25쪽)


《나가라꺼르따가마》에 따르면 자야나가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는 자신의 안마사인 딴샤의 아내를 탐하는 우를 범했다. 1328년 자야나가라는 이에 격분한 딴샤에게 살해되었다. (199쪽)


(싱가포르에서) 일본은 인민재판을 통해 적대적인 성향이 의심되는 중국인들을 숙청했다. 이 과정에서 반일 활동과 관련 없는 중국인이 희생되었다. (467쪽)


말레이 슐탄의 지위 및 권한, 말레이인의 특별한 지위, 말레이어가 국어라는 사실과 이슬람교가 국교라는 사실에 대해 공공장소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치안법에 따라 내란죄를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729쪽)


정부의 부정부패와 비효율이 마르코스의 이상인 신사회 건설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다. 독재정권을 지탱하는 정실자본주의는 세 가지 수단, 즉 공권력·독점권·특혜에 의존했다. (752쪽)



  달팽이가 지나간 곳에는 달팽이 자국이 남습니다. 풀벌레가 차츰 몸을 키우면서 풀노래를 부르는 곳에는 풀벌레 허물이 남습니다. 반짝거리는 날개를 팔랑거리는 나비가 깃드는 곳에는 물이 담긴 고치가 남습니다. 우리가 걸어서 지나간 곳에는 발자국이 남고, 우리가 손에 쥐어 읽은 책에는 손자국이 남습니다.


  자국이나 자취를 살피면 여태 어떠한 삶이 있었나를 읽을 만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풀벌레에 숲짐승에 풀꽃나무까지 저마다 살아온 나날을 읽어요. 우리는 오늘날 ‘역사’라는 낱말을 쓰는데, 쉽게 말하자면 ‘자취·자국’이고 ‘발자취·발자국’입니다.


  동남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리는 여러 나라 발자취를 다루는 《동남아시아사》(소병국, 책과함께, 2020)인데, 800쪽에 가까운 발자취를 가만히 읽고 보니 ‘책에 글로 남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엮습니다. 아무래도 그럴밖에 없겠지요? 우리나라 발자취를 다룰 적에도 으레 ‘책에 글로 남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거든요.


  그렇다면 ‘오늘자취(현대사)’는 어떻게 엮으면 될까요? 오늘자취는 아직 책에 글로 안 남았을 텐데, 무엇을 바탕으로 다룰 만할까요? 그리고 책에는 어떤 사람들 어떤 자취를 담을까요?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발자취를 단출히 엮은 대목은 좋은 《동남아시아사》이지만, 이 책도 임금붙이·벼슬아치·먹물붙이를 바탕으로 싸움자취가 줄줄이 흐릅니다.


  왜 싸움자취를 읽어야 할까요? 왜 임금붙이 자취를 얘기해야 할까요? 나라나 겨레마다 스스로 즐겁게 가꾸거나 지으면서 ‘굳이 책에 글로 안 남겼으나 오래오래 사랑스레 이은 살림’을 역사란 이름으로 다루거나 갈무리하거나 이야기하기는 어려운가요?


  정치사나 전쟁사에 치우친 역사라고 느낍니다. 더구나 정치나 전쟁도 우두머리를 바탕으로 다룰 뿐, 마을사람 눈높이나 자리에서 바라보지 않아요. 우두머리도 임금붙이도 먹물붙이도 아닌, 싸움자취도 땅따먹기도 아닌, 갖은 잘잘못도 아닌, ‘물뭍나라’인 동남아시아 사람들 빛나는 발걸음을 들려주는 이야기책이 태어나기를 손꼽아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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