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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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쓰기 : 말썽거리가 된 소설꾼이 낸 소설책을 마을책집에 찾아간 길에 처음으로 문득 펼친다. 말썽을 피운 이 책은 출판사에서 드디어 모두 거둬들이기로 했다는데, 앞으로는 참 드문 책이 되겠구나. 설마 ‘말썽책(문제도서)’이 ‘드문책(절판 희귀본)’으로 되는 터무니없는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부끄럼짓으로 문학상을 받고 장사를 하다가 책집에서 사라진 책으로 두고두고 이름이 남기를 빈다. 그나저나 이이 글을 훑으니 어쩐지 겉멋(폼) 같더라. 잔뜩 허울(폼)을 잡고서 손재주를 부린 껍데기이지 싶더군. 말썽이 되기 앞서부터 겉치레로 가득한 꾸미기인 셈이었지 싶다. 마을책집 책시렁을 둘러보다가 ‘말썽이 안 된 시인’이 선보인 시집을 여러 자락 읽는다. 첫 꼭지부터 끝 꼭지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지 종잡지 못한다. 글씨는 틀림없이 한글이지만, 이 한글을 엮어서 무슨 줄거리를 짜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논문이나 평론을 읽을 적에, 페미니즘 담론이나 역사비평을 읽을 적에, 적잖은 수필이며 동화를 읽을 적에, 더구나 요새는 그림책을 읽을 적마저 글쓴이가 선보이는 ‘한글 엮기’가 글인지 글이 아닌지 모르겠다. 겉멋이 아닌 글은 어디에 있을까? 치레질이나 꾸미기 아닌 글은 언제 볼 수 있을까?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가 쓴 동시마저 글쓰기학원에서 길든 티가 물씬 나는 겉질이 넘친다. 2020.7.2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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