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숲에서 짓는 글살림

45. 꿍꿍쟁이



  일본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읽다가 ‘일본사람은 이런 데에서 이런 영어를 흔히 쓰는구나?’라든지 ‘일본사람은 이런 한자말을 참 좋아하네?’ 하고 느낍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영어나 한자말을 쓰지 않았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 만하지요. 일본에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양 물결이 출렁이기 앞서까지는 ‘그냥 일본말’을 썼어요. 일본에서도 벼슬아치나 먹물을 뺀 여느 사람들, 이를테면 흙을 일구고 바다를 마주하던 수수한 마을사람은 언제나 마을말을 썼습니다.


  한국이건 일본이건 마을사람은 마을말을 쓰고, 바닷가 사람은 바다말을 씁니다. 숲에 깃든 사람은 숲말을 쓰며, 멧자락에 깃들어 살기에 멧말을 쓰고, 너른 들판을 품에 안으면서 들말을 쓰지요.


  한국이나 일본은 한자가 스며든 지는 얼마 안 됩니다. 한자가 스며들었어도 임금이나 벼슬아치나 먹물 언저리에서나 조금 쓸 뿐, 99.99퍼센트에 이르는 조촐한 삶터에는 한자가 스미지 않았어요. 한자말이라 하면 으레 중국말을 떠올릴 만하지만, 막상 중국에서도 여느 중국사람은 한자를 안 쓰거나 모르지요. 그저 ‘말’을 할 뿐입니다.


  누에실, 솜실


  흔히들 글을 놓고서 삶터나 살림터를 가릅니다만, 글삶터나 글살림터로만 가르기에는 어쩐지 엉성하지 싶어요. 글이 태어난 지는 얼마 안 되었거든요. 나라나 겨레를 넘어, 마을이란 터전에서 말이 흐른 지는 까마득히 오래되었어요. 삶터나 살림터를 묶자면 ‘말삶터’나 ‘말살림터’를 묶어야지 싶어요.


  그래서 ‘한자 문화권’이라 하더라도 정작 한자를 안 쓴 여느 사람이 99.99퍼센트라 한다면, 이러한 살림터 가르기란 부질없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글 아닌 말을 바탕으로 바라보면서 ‘흙살림터’라든지 ‘바다살림터’라든지 ‘마을살림터’라든지 ‘숲살림터’라든지 ‘멧살림터’를 바라보면 우리 눈길을 새롭게 뜰 만하리라 생각해요.


  오월이 무르익고 유월로 접어들면 뽕나무마다 오디가 검붉게 익어요. 뽕잎은 펑퍼짐하면서 도톰하게 풀빛으로 반짝이고요. 오디는 사람을 먹여살린다면, 뽕잎은 누에를 먹여살려요. 흔히 중국에서 서양으로 가던 살림길 하나를 ‘실크로드’나 ‘비단길’이라 이릅니다만, ‘비단’이란 한자말은 ‘누에에서 얻은 실로 짠 천’을 가리켜요. 다시 말해서 ‘실크로드 = 비단길’로 한자 ‘비단’을 써서 풀었다면, 이다음에는 ‘비단길 = 누에길(누에천길)’처럼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매무새로 풀어낼 만합니다.


  우리가 입는 옷 가운데 ‘면’은 ‘목화’에서 왔다고 하는데, ‘목화’는 한자말이요, ‘솜꽃’을 가리킵니다.  ‘목화솜’이나 ‘목화꽃’은 겹말이에요. ‘솜’하고 ‘솜꽃’이라고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솜천’이란 말을 지어서 쓸 만해요. “면 소재 옷”이 아닌 “솜실로 지은 옷”이나 ‘솜실옷·솜천옷’처럼 말하면 쓰임새나 얼거리고 환하게 드러납니다.


 ‘낫’ 바라보기


  말을 바탕으로, 말살림을 뼈대로, 말로 이야기를 펴고 생각을 나누고 삶을 짓는 길을 바라보면서 살림터를 헤아린다면, 우리가 손으로 지어서 누리는 옷살림이나 집살림이나 밥살림을 살피면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호미란 연장은 어떻게 지었을까요? 이 멋진 연장은 어느 곳에 어느 만큼 퍼졌을까요? 가래나 낫이란 연장도 대단하지요. 이 알뜰한 낫이나 가래 같은 연장을 쓰는 테두리는 어떠할까요?


  더 들여다보면, ‘낫’이나 ‘호미’처럼 오래오래 쓰던 수수한 살림살이 말밑부터 헤아릴 적에 비로소 말길을 풀 만해요. 말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셈입니다. 먹물꾼이라면 “낫 놓고 기역 글씨 모른다”고 할 테지만, 살림꾼이라면 “낫 쥐고 풀 벨 줄 모른다”라든지 “낫 벼릴 줄 모른다”고 했으리라 생각해요. 참말 그렇지요. 우리는 왜 낫을 바라보면서 ‘ㄱ’이라는 글씨를 떠올려야 할까요? 한글이 놀라운 글씨이기는 합니다만, 한글보다 낫이 엄청나게 오래되었어요. 오래오래 쓰던 살림인 낫이라면, 이 낫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떤 살림을 지으면서 어떤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돌보았나 하고 생각하면서 살림터를 가꿀 적에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뭘까?


  말을 생각하고 살림을 헤아리며 삶을 들여다볼 적마다 늘 먼저 부딪히거나 만나야 하는 대목이라면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이란 몸을 입었어요. 살빛이나 얼굴이나 몸매나 키나 덩치가 모두 다른 사람인데, 다 다르게 생겼어도 이름은 똑같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살 + 암’으로 엮는다고 하는데, ‘살’하고 ‘암’이란 무엇일까요? 말밑을 파헤치는 일도 대수롭지만, 또 어떤 말씨를 왜 배우느냐도 대단하겠지만, 어릴 적부터 흔하고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으레 쓰는 말마디에 얽힌 살림을 함께 바라보도록 이끌면 좋겠어요.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는 길에서 바탕말을 둘러싼 밑살림을 바라보도록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살’이라는 말씨를 생각하면, ‘살다’라는 낱말에도 나오듯 ‘살’이 얽힙니다. ‘살갗’에도 ‘살’이 있지요. ‘삶·살림’도 매한가지입니다. ‘사랑’이란 낱말도 한동아리로 들어가요.


  ‘암’을 담은 말씨로 ‘암수’도 있습니다만, ‘개암’도 있어요. ‘암·알’은 맞물리는 터라 ‘알·알맹이·알갱이’를 비롯해 ‘낟알·씨알·알속·알짜’로 줄줄이 이어지고, ‘알뜰하다’나 ‘아름답다’도 이 틀에 깃듭니다.


  “살아가는 알(알맹이·씨알)”인 ‘사람’이란 소리입니다. 그저 팔다리가 있고 말을 하고 숨을 쉬고 생각을 하고 이것저것 하는 몸뚱이를 넘어서, “살아가는 씨알”인 사람이에요. 그리고 ‘알’은 ‘얼’하고도 맞물리니, “살아가는 얼”이라고 하는 대목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겉몸을 넘어 마음으로 함께 만나고 얼크러지는 사이인 줄 알아차릴 만합니다.


  꿍꿍쟁이


  일본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읽다 보면, 참 뜬금없는 영어나 한자말이 쏟아진다고 했습니다. 이 가운데 ‘비밀주의’를 요즈막에 보았어요. 남한테 숨긴다고 하는 뜻이고 ‘-주의·주의자’를 구태여 붙여서 나타내는구나 싶던데, 문득 궁금해서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니 ‘비밀주의’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어라, 이런 일본 말씨가 왜 한국말사전에 실리지?’ 하고 놀랐어요. 이러고서 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펴는 사전에는 하나같이 일본 한자말이 그득합니다. 말이 아닌 글로 배운 분들이 엮은 사전이기에, 아무래도 우리 배움밭 곳곳에 퍼진 일본 말씨가 알게 모르게 사전에 스며들어요. 더욱이 우리 스스로 말을 새로 짓거나 가꾸자는 생각을 못했지요.


  자꾸 감추려 드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로 가리키면 어울릴까요? 처음에는 수수하게 ‘감춘다’고 하면 되고, 자꾸자꾸 감추니 ‘-쟁이’를 붙여 ‘감춤쟁이’라 할 만합니다. 숨긴다면? ‘숨긴다’고 하다가 ‘숨김쟁이’라 하면 되어요. 이 말씨하고 비슷하게 ‘꿍꿍이’가 있지요. 남몰래 뭔가 꾀하기에 ‘꿍꿍이’입니다. 아하, 그러면 재미나게 ‘꿍꿍쟁이’ 같은 말을 지을 만해요.


  이러다가 한 마디를 더 생각해 봅니다. 혼자서 앓는 사람이 있어요. 근심걱정을 나누지 못하고 끙끙거리지요. ‘끙끙쟁이’입니다. 혼자 토라지는 사람이 있어요. ‘꽁꽁쟁이’라 해도 어울리겠지요. 말끝 하나를 바꾸어 보려고 생각을 하노라면 어느새 온갖 말이 함박꽃처럼 피어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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