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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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이 드넓던 고장인데 (2015.11.28.)

― 인천 〈삼성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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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책집이 있어서 마을을 찾습니다. 이웃 여러 고을에 어여쁜 책집이 있으니 사뿐사뿐 나들이를 갑니다. 마을·고을이라는 터전은 사람이 모이면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마을은 숲정이를 품는 손길이 있어 푸르게 일렁이지 싶습니다.


옹기종기 담을 마주하는 보금자리가 있고, 집하고 집 사이에 작은가게가 들어섭니다. 가게가 하나둘 모여 저자가 생기고, 저잣거리에는 마을사람을 비롯해 어깨동무하는 다른 고을에서 찾아옵니다. 복닥복닥 발걸음이 늘고 속닥속닥 이야기꽃이 피면서 마을살이를 아로새기는 책집이 살며시 싹을 틔웁니다.


2015년 가을날 〈삼성서림〉을 찾아가면서 이 책집이 인천 배다리에서 걸어온 길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인천 배다리에는 한국전쟁 뒤로 헌책집이 하나둘 모였다고 하지요. 처음에는 옛 축현초등학교 담벼락을 마주하는 자리에서 길장사로, 차츰 그곳에서 옮기거나 밀리며 창영동 쪽으로 왔다고 해요. 저는 1975년에 태어났으니 예전 일을 두 눈으로 지켜보지는 못했고, 여러 헌책집지기님들 말씀으로 지난날을 어림합니다. 다만 동인천 굴다리 곁에 살던 동무한테 놀러가며 “어? 이런 데에 책방이 있네?” 했더니 동무는 “넌 몰랐냐? 하긴 너네 집은 신흥동이니까. 저쪽으로 줄줄이 더 많아.” 하고 대꾸한 일은 떠올라요. 1983년 즈음입니다. 그땐 헌책집 둘레로 책손이 우글우글했습니다.


인천은 갯벌이 넓습니다. 엄청나요. 썰물에 갯벌을 한 시간쯤 걸어도 끝이 안 보여요. 그런데 갯벌이 넓은 인천은 여태껏 이 갯벌을 파헤쳐 공장을 짓거나 아파트를 세우는 일만 벌였어요. 갯벌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살피지 않고, 갯벌을 어떻게 살리거나 사랑해야 하는 줄 깨닫지 않아요. 죽음바다가 된 시화호가 있어도 새만금에서 똑같은 짓을 벌였고, 송도나 영종섬도 매한가지예요. 갯벌이 있어야 뭍도 숲도 깨끗할 텐데, 이를 살피지 않고 드넓은 갯벌을 ‘돈’으로 바꾸는 데에만 힘을 쏟았어요. 그러고 보면, 갯벌을 올바로 알려주는 책은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 함께 읽혀야 하는구나 싶어요. 어른부터 갯벌 이야기책을 읽어야 하는구나 싶어요. 대통령한테 읽히고, 국회의원과 시장·도지사한테 읽혀야지 싶어요. 공무원한테도 읽히고 개발업체 사람들한테도 읽혀야지 싶어요.


글길을 생각해 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 하나 오롯이 일구기까지 오랜 나날을 기울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모두 그렇지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도 그래. 모두 오래오래 품을 들이고 땀을 들입니다. 사랑을 쏟고 꿈을 그립니다. 책이란, 품이며 사랑을 들일 길을 찾는 일이 아닐까요. 책을 찾아나서는 책집마실은 사랑길을 헤아리려는 발걸음이 아닐까요.


이야기가 노래하는 책을 마음으로 읽습니다. 마음을 살찌우고 싶어 책을 손에 쥡니다. 하루를 씩씩하게 일구고 싶기에 책마실을 다닙니다. 사랑을 따사로이 품고 싶어 책에 깃든 빛살과 볕을 받아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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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개》(니콜라이 칼라시니코프/문무연 옮김, 학원출판공사, 1987)

《수정의 상자》(아젤라 투우린 글·델라 보스니아 그림/박지동 옮김, 문선사, 1984)

《소피가 학교 가는 날》(딕 킹 스미스 글·데이비드 파킨스 그림/엄혜숙 옮김, 웅진닷컴, 2004)

《the drama Bums》(Jack Kerouak, penguin books,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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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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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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