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일각 신장판 7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김동욱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たかはしるみこ #高橋留美子 #めぞん一刻


숲노래 만화책/숲노래 푸른책

눈치 보거나 부끄러울 겨를



《메종 일각 7》

 타카하시 루미코

 김동욱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3.30.



  열 살이란 나이를 살아가는 작은아이를 샛자전거에 태우고 함께 마실을 합니다. 2020년에는 열 살인데, 앞으로 열다섯 살도 스무 살도 살아가겠지요. 머잖아 맞이할 작은아이 열다섯 살은 오직 그 한 해뿐입니다. 스무 살도 바로 그 한 해뿐이에요. 더 지나 서른 살이나 마흔 살도 딱 한 해뿐이요, 쉰 살이며 예순 살도 그저 한 해뿐입니다.


  흔히들 푸릇푸릇한 열 살이나 스무 살만 ‘한 해뿐’이라 여기지만, 무르익는 서른 마흔 쉰도, 깊이 물드는 예순 일흔 여든도 오롯이 ‘한 해뿐’입니다. 우리는 열 살 어린이로 살든 아흔 살 어른으로 살든 언제나 ‘한 해뿐’인 나날을 처음으로 맞아들이면서 새롭고 즐겁게 누릴 숨결입니다.



“유사쿠, 고맙구나.” “아…….” “정말 즐거웠다.” (6쪽)



  자전거 발판을 구르는 아이는 졸거나 잠들지 않습니다. 눈이 반짝반짝 이마에 땀이 비질비질 온몸은 이리저리 춤추어요. 이와 달리 자가용을 얻어타는 아이는 이내 졸거나 잠들지요. 어른도 매한가지입니다. 시외버스를 한나절 달린다든지 비행기를 하룻내 날 적에 신나서 바깥구경을 하거나 춤출 만할까요?


  나라 곳곳을 꿰뚫거나 가로지르는 빠른길이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만, 그 빠른길을 달리며 얼마나 즐겁거나 신나서 춤추고 노래할 만할까 궁금해요. 빠른길을 200킬로미터로 달리며 노래할 수 있는지요? 이렇게 달리다가는 딱종이를 뗄 텐데, 딱종이는 둘째치고 200∼300킬로미터로 달리면 아슬아슬해서 노래고 춤이고 생각할 겨를이 없겠지요. 120킬로미터로 달려도 마찬가지입니다.


  빠른길 아닌 여느 찻길에서도 골목이라면 30킬로미터조차 대단히 빠른 셈이라, 샛골목에서 나올 사람을 눈을 밝혀 살펴야겠지요. 자, 더 생각해 보기로 해요. 자가용 손잡이를 잡고 싱싱 달리면서 콧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만한가요?



“정 그러시다면 먼저 들어가서 쉬시는 게…….” “그럴 수는 없어요.” ‘여기서 내가 없어졌다간 분명 밤을 새서 놀 거야. 하지만 내가 있어도 딱히 다르진.’ (11쪽)



  아버지 뒤에서 샛자전거에 앉은 작은아이더러 “얘야, 넌 손잡이 안 잡아도 돼. 아버지가 앞에서 든든히 달리잖니. 너희 누나랑 아버지랑 이 자전거를 탈 적에 너희 누나는 거의 손잡이를 안 잡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바람을 먹고 구름하고 놀았단다.” 하고 들려줍니다.


  튼튼자전거에 샛자전거를 달아 세바퀴로 달립니다. 작은아이가 갓난쟁이일 적에는 수레를 더 붙여서 수레에 누여 다녔어요. 이제 두 아이 모두 의젓하게 자랐으니 수레는 작아서 못 쓰지만, 작은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제법 멀리 마실을 다닐 만합니다. 눈을 감고 팔을 벌립니다. 큰고장 찻길이라면 엄두를 못 낼 노릇이지만, 시골 들길에서는 그저 자전거만 있으니 홀가분히 팔을 벌려 바람을 안습니다. 눈을 뜨고서 구름을 같이 품습니다. 멧자락에 내려앉은 구름처럼, 구름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빛처럼, 우리 두 다리는 오늘 새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



“잘 챙겨 드리시네요.” “이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내일부터는 나도 집에서 놀면서 술이나 마실 수가 없잖아.” (40쪽)



  이웃 일본에서는 2500만이 넘도록 팔린 만화책이라는 《메종 일각 7》(타카하시 루미코/김동욱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을 읽습니다. 제법 긴 꾸러미라지만 2500만이라면 장난이 아니지요. 이 만화를 그린 분이 선보인 다른 만화책 《란마 1/2》이나 《이누야샤》는 그보다 더 팔렸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다루기에 이토록 읽힐까요. 《메종 일각》은 ‘일각관’이라는 낡은 나무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그냥그냥 흔한 살림살이입니다. 오래된 나무집에 깃든 다 다른 사람들은 마을 아저씨요 아줌마이고, 마을 어린이에 마을 젊은이입니다. 이뿐입니다.


  그저 수수한 사람들이 복닥이는 하루를 그릴 뿐이지만, 이 수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흐르는 ‘오늘 하루는 어제하고 다르니, 오늘을 오늘대로 즐겁게 살자’고 하는 마음을 차근차근 짚어냅니다.



“코즈에 씨가 떠준 거죠?” “아, 네.” “그렇게 살금살금 가릴 것 없는데.”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런 걸 보면 엄청나게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81쪽)



  낡은 나무집에 깃든 젊은이는 이 나무집을 돌보는 지기님, 이른바 ‘돌봄이(관리인)’를 짝사랑하면서, 대학교에서 만난 아가씨하고 만나는, 다시 말해 ‘두 다리’입니다. 돌봄이인 분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짝을 맺은 분이 있으나, 이분이 일찍 저승으로 갔다지요. 저승으로 일찍 떠난 님을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 짙으면서도, 앞으로 긴긴 나날을 어떻게 살아가면서 스스로 달래면 좋을는지 어지럽기도 합니다.


  이 두 사람이 얽히고 맺다가 풀어지고 다시 얼크러지는 줄거리가 복판에 있습니다만, 이 둘을 둘러싼 숱한 사람들이 새삼스레 얽히고 맺다가 풀어지고 다시 얼크러지는 줄거리가 거미줄처럼 튼튼하면서 부드럽게 이어갑니다.


  거미줄이라 할 만합니다. 끈끈하면서 가볍고, 튼튼하면서 쉬 끊어질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해맑은 빛살을 품은 끈이요, 이슬이 맺히면 이슬이 아롱다롱 빛나는 거미줄마냥 눈부시지요. 새가 푸드덕 지나가면 툭 끊어져 헐렁한 거미줄처럼 때로는 서로서로 으르렁대거나 툭탁거리면서 후줄근해요.



“저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신다면, 질투 같은 건 그만 좀 하세요!” “제, 제가 언제 질투를.” “실은, 실은 오늘요, 코즈에랑 헤어질 생각이었어요.” “그럼 왜 스웨터 같은 걸 받아온 거예요!” “그럼 거절하란 건가요? 관리인 님도 누군가에게 주려고 뜨개질을 한 적이 있을 거 아녜요?” (83쪽)


“이젠 눈치 보거나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나 봐.” “온 동네에 다 들리게 생겼네.” (83쪽)



  눈치를 봐야 할 삶이 아닙니다. 눈길을 다스릴 삶입니다. 눈치에 매여야 할 삶이 아니에요. 눈빛을 밝힐 삶입니다. 잘못을 저질러서 부끄러울 수 있어요. 그러나 잘못을 저질렀으니 깊이 뉘우치고서 새로 일어서면 됩니다. 잘못한 만큼 값을 치르고서 씩씩하게 거듭난다면 한결 어엿하면서 믿음직하기 마련입니다.


  눈치를 보니 달아납니다. 눈치에 매이니 굽신거립니다. 잘못을 감추려 드니 자꾸 감춤질이 잇달아요. 잘못을 뉘우치면서 값을 달게 치를 마음이 못 되니 다시금 새롭게 잘못을 저지르는 수렁에 사로잡힙니다.



“미타카 씨, 목발 좀 빌려 줘요.” “응? 어떻게 된 거야.” “아하하, 전철 안에서 깜빡했지 뭐예요.” “그랬군, 잘했어.” “우리∼, 꼭 한소리 해주자고요.” “후후후, 놀란 얼굴이 눈앞에 선한걸∼.” (205쪽)



  어디로 가든 길입니다. 자가용을 장만해서 씽씽 달려도 길이요, 자전거를 마련해서 아이를 태우고 느긋느긋 노래하며 숲길을 달려도 길입니다. 어느 길이 더 낫거나 훌륭하거나 좋다고 가를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우리 나름대로 맞아들이면서 겪어 보는 길일 뿐입니다.


  다만 하나는 말하고 싶어요. 어느 길을 가더라도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길을 가든 저 길을 보든 망설이지 않기를 바라요. 어느 쪽에 서면서 나아가든 온마음을 다하면서 신나게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을 달려 보았으면 이제 그 길은 접어도 좋아요. 다른 길을 스스로 찾아봐요. 새로운 길을 스스로 내기로 해요.


  똑같은 길에서 쳇바퀴질을 하지는 않으면 좋겠어요. 모든 길을 환한 노래로 맞이하면서 덩실덩실 춤추는 가벼운 걸음걸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웃고 노래하려고 이 땅에 태어난걸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