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촛불 한 자루 (2018.4.13.)

― 대구 〈서재를 탐하다〉



  어느 갈래이든 오래오래 파헤치면서 누린다면, 처음에는 풋내기였다 하더라도 시나브로 솜씨님으로 거듭나요. 깊은 눈길도, 너른 손길도, 고운 마음길도, 갓 태어날 적부터 품을 수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차근차근 가다듬거나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번쩍거리는 책집도 있으나, 꾸준꾸준 어루만지면서 차츰 빛나는 책집도 있어요. 하루아침에 날개돋친 듯이 팔리는 책이 있다면, 오래오래 천천히 피어나듯 읽히는 책이 있어요. 마을책집이란 ‘reflections’라는 만화영화 노래에 나오듯 ‘늦꽃’이기 마련이지 싶습니다. 늦게 피는 꽃이 한결 짙으면서 곱다고, 조금씩 책시렁을 늘리고 차분히 책모임을 펴면서 마을에 뿌리내리는 이 조촐한 터전이야말로 그 고장을 사랑하는 샘터이지 싶어요.


  〈서재를 탐하다〉에 찾아왔고, ‘우주지감’ 모임 분을 만납니다. 작은 일 하나를 바탕으로 이야기 하나를 엮어 찬찬히 들려주고 듣습니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이야기가 볼 만해요. 아이를 돌보면서 배운 살림을 들려주고, 아이랑 그림책을 읽는 동안 새롭게 되새기는 말넋으로 엮는 사전이란 책을 밝힙니다.


  스스로 찾아보거나 살펴보기에 깨닫습니다.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해서는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 겪거나 마주하기에 알아차립니다. 남이 쓴 글을 읽기만 해서는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책모임이란 자리는 스스로 찾아나서며 깨닫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펴면서 기꺼이 듣는 수다마당이라고 느낍니다.


  봄날 하늘빛이라면, 스스로 이 봄날에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어떠한 빛깔인가를 느껴요. 여름날 구름빛도 여름날에 스스로 구름을 바라보아야 어떠한 무늬인가를 느끼지요.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이라든지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도 가을빛이나 겨울빛을 헤아릴 만하지만, 스스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온몸으로 부대낀다면 봄빛과 여름빛과 가을빛과 겨울빛을 제대로 알아보리라 생각해요.


  책에 깃든 줄거리도 스스로 온마음으로 만지며 넘기니 하나하나 헤아릴 테지요. 남들이 줄거리를 간추려 적은 글을 읽는다고 책을 알 수 있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 눈길에 따라 우리 책을 읽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비추어 우리 책을 읽습니다. 우리가 읽은 책은 천천히 우리 삶으로 녹아듭니다.


  애써 장만했는데 미처 못 읽는 책이 있을까요. 이런 책도 더러 있을 테고, 가끔은 이런 책이 쌓일는지 몰라요. 그런데 쌓이면 어떤가요. 미처 못 읽으면 어떻지요? 우리가 읽을 책은 언제라도 읽으면 됩니다. 오늘 못 읽었으면 다음에 읽고, 끝끝내 못 읽은 책은 나중에 아이들이 물려받아 읽어도 됩니다.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못 읽는 책은 먼먼 뒷날 누가 즐겁게 읽으면 되고요.


  책마루는 열린 책집이 됩니다. 책마루는 트인 책수다가 됩니다. 책마루는 다같이 만나는 놀이터가 되고, 대구라는 이 고장을 밝히는 촛불 한 자루가 됩니다.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나승위, 파피에, 2015)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호리베 아쓰시/정문주 옮김, 민음사, 2018)

《할머니가 물려주신 요리책》(김숙년·김익선·김효순, 장영, 2013)

《あるかしい書店》(ヨシタケシンスケ, ポプラ,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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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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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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