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별빛을 머금은 밤 (2018.4.1.)

― 도쿄 진보초 〈書泉〉


  며칠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고, 책집에 들고, 다시 걷고, 책집에 들고, 묵직하게 장만한 책을 길손집에 부린 다음, 다시 걷고, 책집에 들고 했습니다. 이렇게 쉬잖고 책집마실을 하노라니 온몸이 뻑적지근합니다. 1분이며 1초를 알뜰히 누리고 싶기는 하지만 몸이 들려주는 소리를 받아들여 길손집에서 두 시간쯤 뻗기로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깜깜합니다. 몸은 개운한데 진보초 책집은 모두 닫았으려나 걱정스럽습니다. ‘아직 모르는 일이야’ 하고 여기면서 사진기랑 등짐을 챙겨 부랴부랴 책집골목을 걷습니다. 생각대로 거의 닫았는데 꼭 한 곳은 불빛이 환합니다. 늦게까지 손님을 받는다는 〈書泉〉이 있군요. 여러 층짜리 커다란 책집입니다. 별이 뜬 저녁에 이 거리에서 책을 만난다니 새삼스럽습니다. 층마다 달리 갖춘 숱한 책을 봅니다. 기차즐김이를 헤아린 ‘기차 책’만 모은 칸에는 기찻칸에 있었다는 걸상까지 있습니다. 기차 걸상을 모으는 사람이 꽤 있는 듯합니다.


  2층은 오로지 만화책만 있습니다. 헌책은 없고 새책만 있기에 예전 만화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갓 나와 널리 팔리는 만화책을 갖추었습니다. 한글로 옮기지 않은 ‘오자와 마리’나 ‘타카하시 루미코’ 만화책이 있나 하고 살피지만, 아쉽게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테즈카 오사무 님 큼직한 그림판이며, 후지코 후지오 님 《チンプイ》랑 코노 후미오 님 《ぼおるぺん 古事記》를 보고는 냉큼 집어듭니다. 오늘 이곳에서가 아니라면 만나기 어렵겠지요. 아마존 누리책집에서 살 수 있는지 모르나 눈앞에서 살살 쓰다듬으며 고르는 책일 적에 한결 애틋합니다. 질끈 동여매어 우리 집까지 나르는 사이에 더 마음으로 스미는 셈일까요.


  책집인 만큼 〈書泉〉 책시렁 곳곳에는 글쓴님이나 그린님이 남긴 손글씨가 붙습니다. 지은이·읽는이가 만나는 자리에서‘책집에 남기는 글씨·그림’으로 써 주었을 테지요. 마을책집에서는 이 같은 손글씨를 자랑할 만하고, 척 붙이거나 걸어서 즐겁게 나눌 만합니다. 책은 줄거리로만 읽지 않아요. 줄거리를 엮는 손끝에 흐르는 상냥하면서 사랑스레 피어나는 즐거운 눈빛을 함께 읽습니다. 우리말로 ‘책샘’인 〈書泉〉이 불을 끄고 여닫이를 잠글 무렵 책값을 셈하고 나옵니다.


《手塚治蟲 文庫全集 143 空氣の低》(手塚治蟲, 講談社, 2011)

《日本發狂》(手塚治蟲, 秋田書店, 1999)

《手塚治蟲 ヴィンテ-ジ·ア-トワ-クス 漫畵編》(手塚治蟲, 立東舍, 2017)

《チンプイ 1》(藤子·F·不二雄, 小學館, 2017)

《チンプイ 2》(藤子·F·不二雄, 小學館, 2017)

《チンプイ 3》(藤子·F·不二雄, 小學館, 2018)

《チンプイ 4》(藤子·F·不二雄, 小學館, 2018)

《ぼおるぺん 古事記 1 天の卷》(こうの史代, 平凡社, 2011)

《ぼおるぺん 古事記 2 地の卷》(こうの史代, 平凡社, 2012)

《ぼおるぺん 古事記 3 海の卷》(こうの史代, 平凡社, 2013)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