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오래된 숲 (2020.6.25.)
― 대전 〈중도서점〉
2000년 첫무렵에 ‘북녘책을 누구나 사서 읽을 수 있는 길’을 나라에 여쭈어 처음으로 등록허가를 받고서, 서울역 곁에 ‘북한책 전문서점’을 연 〈대훈서적〉이 있습니다. 북녘책을 다루는 책집이라 하더라도, 북녘책을 사들일 길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대훈서적〉 지기님은 몸소 연변에 찾아가서 북녘책을 몇 꾸러미씩 장만해서 하나하나 날랐고, 이렇게 날라온 책을 팔았지요. 사전짓기를 하는 길에 제가 곁에 두는 《조선말 대사전》(1992)은 ‘대훈서적 북한책 전문서점’에서 그때 104만 원을 치르고서 장만했습니다. 이제 대전이며 서울역 곁이며 〈대훈서적〉 자취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대전을 밝히는 헌책집거리는 두 곳이고, 대전역에서 가까운 〈중도서점〉은 두 거리 가운데 하나인데, 이곳만 이쪽 거리에서 꾸준히 책살림을 잇습니다. 〈중도서점〉은 2·3·4층을 헌책집으로 꾸리는데요, 2층을 돌아보다가 “대전 동구 중동 27-7” 〈大訓書籍〉 책싸개를 보았습니다. 《韓國敎育의 社會的 課題》(차경수, 배영사, 1987)를 싼 종이에 흐르는 옛자취를 쓰다듬습니다. 이 곁에는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윤재근, 둥지, 1990)를 감싼 “대전 중동318 홍명상가 1층 103호” 〈홍명서림〉 책싸개가 있어요. 책보다 책싸개가 값질 때가 있습니다.
대전 동구는 오랜골목이 깃든 터전입니다. 빈집이 수두룩하고 빈가게도 많습니다. 저잣거리를 북돋우려는 물결이 있구나 싶으면서도 대전시에서 실타래를 잘 못 잡네 하고 느낍니다. 오랜골목에 75층짜리 아파트를 세우면 젊은이가 찾아들고 나아지는 터가 될까요? 《대전 태평국민학교》 18회(1988) 졸업사진책을 보면서 1987년에 6학년이던 대전 어린이를 빛깔사진으로 만납니다. 제 또래 모습을 담은 졸업사진책은 처음인데, 그즈음 대전 어린이는 이런 옷차림이었네 싶어 새삼스럽습니다. 그때 인천 어린이도 옷차림이 비슷했습니다.
정갈하게 추스른 책꽂이마다 빈틈이 없습니다. 어제를 이은 오늘을 되새기고 앞날을 살피려는 눈썰미가 있다면, 이곳에서 새 발자국을 읽을 만합니다. 오래되기에 숲을 이룹니다. 새롭게 싹이 트기에 봄여름이 짙푸릅니다. 오래된 숲에서 푸나무가 새롭게 자라고, 새롭게 자란 푸나무는 오래된 숲을 새삼스레 북돋아요. 오랜골목을 살리는 슬기로운 길을 헌책집에서 엿봅니다.
《民族語의 將來》(김민수, 일조각, 1985)
《손에 손을 잡고, 노동자 소모임 활동사례》(이선영·김은숙, 풀빛, 1985)
《학위 수여자 명단, 1975학년도 전기》(고려대학교, 1976)
《호수돈여자고등학교》 졸업장(1975.1.10.)
《國漢 最新漢字玉篇》(文生 엮음, 인창서관, 1964)
《대전 태평국민학교》 18회(1988)
― 대전 〈중도서점〉
대전 동구 대전로797번길 40
042.253.4232.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