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
우치다 햣켄 지음, 김재원 옮김 / 봄날의책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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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30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

 우치다 햣켄

 김재원 옮김

 봄날의책

 2020.4.20.



길고양이를 길고양이인 채로 키운다곤 해도 키우는 이상 이름은 있어야겠지. 길고양이니 노라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10쪽)


어제 아침에도 둑을 확인하러 가다가 구두가게에 들렀는데 그 집 줄무늬 고양이가 나흘간 집에 들어오지 않다가 오늘 아침에야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걱정이 많으시죠. 그때 남편 분도 아주머니와 함께 나와서 그렇게 말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해 주는 친절한 마음이 참 고맙다. 하지만 고양이 일로 그런 인사를 받는 게 조금은 이상하기도 하다. (42쪽)


길 잃고 헤매는 집고양이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 집으로 온 이상 배곯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94쪽)


노라가 사라진 3월 27일로부터 벌써 반년이 흘렀지만 그사이 한 번도 스시를 먹지 않았다. (147쪽)


숨이 끊어진 쿠루를 한동엔 품에 안아준다. 물론 여전히 따뜻하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얼굴이다. 그러나 앙상하게 말라 평소의 절반 정도로 가볍다. 몹쓸 짓을 했다. 이렇게 야윌 때까지 무엇 하나 해주질 못했다. (221쪽)



  보리똥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고, 대추꽃이 말간 노란빛으로 맺는 여름으로 깊이 접어드는 날입니다. 멧자락에 안개가 하얗게 퍼지고, 멧새는 밤에도 낮에도 바지런히 노래합니다. 메뚜기가 토실하고, 사마귀하고 거미가 서로 노려보다가 날렵하게 비껴 가는 풀숲입니다. 맨발로 풀밭에 서면 갖은 딱정벌레하고 하늘소가 어깨에 내려앉거나 발치에서 더듬이를 갖다 댑니다. “오늘 너희는 어떤 하루이니?” 이 모두한테 말을 겁니다. 나무한테, 꽃한테, 풀벌레한테, 멧새한테, 또 우리 스스로한테 오늘은 어떻게 다가온 새날일까요.


  지난 열 해 가운데 아홉 해 내내 우리 집 헛간에서 마을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돌보던데, 올해에는 새끼를 낳으려는 마을고양이가 없습니다. 지난해에 태어나 무럭무럭 자란 마을고양이 하나가 어째 사람손을 타려고 우리 집 마당에서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른 마을고양이는 그닥 얼씬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손을 타겠다며 찾아온 마을고양이는 처음에 배가 홀쪽하고 어설펐지만, 조금씩 기운을 찾더니 이내 쥐에 새를 곧잘 사냥하면서 제법 듬직한 몸꼴로 거듭나더군요. 이제는 마을 한 바퀴를 휘 돌고서 마당으로 돌아올 적에 이야옹이야옹 큰소리로 우리를 부르면서 “나 다녀왔어! 나 다녀왔다구!” 하면서 쓰다듬어 달라고 합니다.


  길고양이를 쓰담쓰담하면서 곁에 두고프던 나날을 적바림한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우치다 햣켄/김재원 옮김, 봄날의책, 2020)을 읽었습니다. 글쓴님은 처음에 마음이 끌린 길고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서 영 입맛을 잃고 하루하루 기운이 없었다고 합니다. 부디 이 길고양이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알림종이를 뿌리고 이곳저곳 찾아다녔다고 해요.


  집고양이 아닌 길고양이라면 어느 날 어느 집에 살며시 깃들어 보려는 몸짓이었다고 하더라도 새삼스레 집살이 아닌 들살이로 나아가기도 하겠지요. 매이지 않기에 들넋이고, 얽히지 않아서 길숨이거든요.


  어쩌면 그 길고양이는 들길로 새롭게 나아갔을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자동차에 치여서 이승을 떠났다든지, 다른 사람 손길을 타면서 꽤 멀리멀리 갔을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나아가는 삶길을 생각합니다. 아늑히 품는 보금자리도 좋고, 가시밭길이라 하더라도 씩씩히 나아가는 자리도 좋습니다. 낯설거나 힘들지만 스스로 이루고픈 꿈길로 걸어가는 자리도 좋고, 텃밭일 일구며 시골에서 조용히 보내는 자리도 좋아요.


  짧게 만났다가 헤어지고 만 길고양이라는데, 처음부터 이 아이 자리가 있지 않았다지만, 문득 찾아들어 생긴 자리가 텅 비니 새삼스레 집이 조용했고, 이렇게 한 해 두 해 흐르던 어느 날 새로운 길고양이가 찾아들었다고 해요.


  떠나간 아이가 있고, 찾아온 아이가 있습니다. 길바람을 탑니다. 길에서 흐르는 내음을 듬뿍 묻히고서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조용조용 보내던 집안에 길고양이 하나는 웃음이며 수다를 새로 베푸는 숨결이 됩니다. 사람들이 지내는 마을이 시끌벅적하거나 북적북적 즐거웁자면, 사람만 있기보다는 길고양이도, 멧새도, 풀벌레도, 벌나비도, 또 여러 숲짐승도 얼크러질 노릇이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은 “그대가 이 고양이를 만났기를”처럼 이름을 고쳐야 알맞겠다고 느껴요. 집고양이 아닌 길고양이를 “나의 고양이”라 하니 안 어울립니다. ‘나의’는 한말이 아닌 일본 말씨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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