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35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
박세길 글
돌베개
1992.10.20.
1988년에 들어간 중학교에 ‘국사’란 갈래가 있고, 숫자랑 이름을 잔뜩 외워야 한다더군요. 책에 나오는 숫자랑 이름을 못 외우면 외울 때까지 얻어맞으면서 끝없이 깜종이를 써냈습니다. 벼슬아치가 쓴 글하고 나라지기가 편 길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워야 했는데 하나같이 한문이었어요. 역사는 숫자랑 이름이랑 네모칸에 넣은 통계일까요? ‘국사’는 일본 제국주의가 이 나라를 총칼로 누르면서 비로소 붙인 말이고, 한국·대만·중국에 일본사를 ‘국사’란 허울에 넣어 달달 외우도록 시키며 밀어붙인 말이더군요. 고등학교에서도 똑같은 외움질·몽둥이질이 그치지 않는데, 갑갑해 하는 저를 본 동무가 문득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란 책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학교에서 안 가르친 이야기가 잔뜩 흘러 놀랐어요. 고등학교 2학년일 무렵 세걸음으로 마무리가 된 이 책을 알려준 동무는 “‘다현사’는 좀 수다스럽지? 좀더 깊이 알고 싶다면 강만길이란 사람이 쓴 《한국근대사》하고 《한국현대사》가 있어.” 하고 더 귀띔했습니다. 동무한테는 누가 이런 책을 알려주었을까요. 학교에서 시험문제로 닦달하는 ‘국사’로는 사람내음이며 사람빛을 못 느꼈습니다. 우리가 걷는 오늘은 숫자도 이름도 힘도 아닌, 스스로 사랑하는 살림인걸요.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