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을 생각한다
숲노래 우리말꽃 : 초등학생 국어사전 추천
[물어봅니다]
초등학생 국어사전 추천받을 수 있을까요. 7세입니다.
[이야기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책을 그닥 안 읽었어요. 1975년에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그무렵에는 바깥에서 뛰놀기에 바쁘기도 했고, 저희 집이나 둘레 이웃집에서도 딱히 어린이한테 책을 사서 읽히는 어버이는 거의 못 봤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둘레 어른은 동화책을 사서 읽히는 일이 없다시피 했고, 그때에는 그림책이 아예 없다시피 했지만, 만화책만큼은 스스로 소꿉돈을 모아서 사읽곤 했습니다.
1980년대나 1990년대를 돌아본다면, 그무렵에 ‘어린이 국어사전’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전과 말풀이’하고 똑같았어요. 이 흐름은 2000년대로 넘어서고 2020년대에 이르도록 거의 안 바뀌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어린이한테 맞춤한 사전을 고르거나 살피거나 이야기하기란 참 힘들어요. 먼저 ‘사전’이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기로 해요.
[표준국어대사전]
사전(辭典) :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
사전(事典) : 여러 가지 사항을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고 그 각각에 해설을 붙인 책
나라에서 선보인 《표준국어대사전》은 한자가 다른 두 가지 ‘사전’을 풀이합니다. 이 풀이를 읽고서 어린이가 얼마나 알아들을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어른 가운데에서도 아리송하다고 여길 분이 있겠지요.
[보리 국어사전]
사전(辭典) : 여러 낱말을 차례대로 늘어놓고 풀이한 책. 낱말의 뜻, 소리, 쓰임새 들을 찾아보는 데 쓴다
사전(事典) : 어떤 내용을 차례대로 늘어놓고 풀이한 책. 그림이나 사진을 곁들이기도 한다
초등학교 도서관에 많이 있고, 아이를 둔 어버이가 많이 사읽힌다는 《보리 국어사전》 뜻풀이는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를 조금 줄이고, 한자말을 한국말로 손질했구나 싶습니다. 아마 우리는 ‘사전’이라는 책을 이처럼 “낱말을 늘어놓고 풀이한 책”으로 여기지 싶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사전 = 낱말책’으로 바라보는 셈입니다.
자, 그렇다면 더 생각해 보기로 해요. 낱말을 풀이한 책이 사전이라면, ‘낱말풀이’는 어버이인 우리 스스로 아이한테 들려주어도 되지 않을까요? 어느 사전을 펴더라도 ‘낱말풀이’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더구나 ‘돌림풀이·겹말풀이’가 수두룩합니다. 우리 어버이나 어른이 아는 만큼 그때그때 스스로 풀이를 해서 아이한테 이야기하는 길이 한결 나을 만하다고 여겨요.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사전이 갇히고 만 ‘돌림풀이·겹말풀이’를 들여다보시면 좋겠습니다.
몇 가지 보기를 들면서 이 대목을 짚겠습니다. ‘사전 추천’을 그냥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한국에서 어떻게 무슨 사전을 추천해야 할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불우·어렵다·힘들다’를 놓고서 어린이 사전인 《보리 국어사전》을 살펴볼게요. 어른이라면 그냥 지나가겠지만, 어린이라면 ‘불우이웃돕기’란 말씨에서 ‘불우’가 뭔지 모르기 마련입니다. 동화책이나 그림책에 곧잘 “불우한 어린 시절” 같은 말씨가 나오는데요, ‘불우’ 같은 한자말을 굳이 써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만, 아무튼, 어린이한테 참 어려운 이 낱말을 사전은 어떻게 다뤘을까요?
[보리 국어사전]
불우 : 형편이 어려운 것
어렵다 : 1. 어떤 일을 하거나 이루기가 힘들다 2. 어떤 것을 알거나 풀기가 쉽지 않다 3. 형편이 넉넉지 않거나 사정이 좋지 않다 4. 윗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마음껏 행동하기 거북하거나 두렵다
힘들다 : 무엇을 하는 데 힘이 퍽 많이 들어서 하기가 어렵다
‘불우’를 찾으니 ‘어렵다’로 돌립니다. ‘어렵다’를 찾으니 ‘힘들다’로 돌립니다. ‘힘들다’를 찾으니 다시 ‘어렵다’로 돌립니다. 돌림풀이란 이런 뜻풀이를 가리킵니다. 낱말을 풀이하지 않고, 비슷한 다른 낱말로 슬쩍슬쩍 돌려서 끝내 뜻풀이를 안 하는 얼개가 돌림풀이예요.
‘힘들다’를 “힘이 들어서 어렵다”로 풀이하지요. 이런 뜻풀이는 ‘겹말풀이’입니다. 같은 풀이가 잇달아 나온 셈이거든요. 이러한 뜻풀이를 읽을 어린이가 낱말을 얼마나 헤아리거나 알거나 짚을 만할까요? 이 말이 저 말 같고, 저 말이 이 말 같은 사전을 읽으면서 말을 익힐까요?
아니지요. 이 말을 저 말로 풀고, 저 말은 그 말로 풀다가, 그 말은 이 말로 풀면, 어린이는 어느새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고 말 뿐 아니라, 비슷하지만 다른 여러 말을 뒤죽박죽으로 쓰고 맙니다.
[보리 국어사전]
불쌍하다 : 형편이 딱하다. 또는 남의 형편이 딱해서 가슴이 아프다
딱하다 : 1. 처지나 형편이 불쌍하다 2. 일을 어떻게 하기 어렵다
가엾다 : 딱하고 불쌍하다
안쓰럽다 :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이 가엾고 딱하다
아깝다 : 1. 소중한 것을 놓치거나 잃어서 섭섭하고 아쉽다 2. 어떤 것이 소중하고 귀해서 쓰거나 버리기 싫다 3. 사람이나 물건이 가치에 걸맞게 쓰이지 못해 안타깝다
안타깝다 :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보기에 딱하여 속이 타고 갑갑하다
‘불쌍하다·딱하다·가엾다·안쓰럽다·아깝다·안타깝다’ 이렇게 여섯 낱말을 잇달아 살펴볼게요. 여섯 낱말이 뒤죽박죽으로 돌고 돌 뿐 아니라, 겹말풀이까지 뒤섞여요. ‘안쓰럽다 = 힘들어서 가엾고 딱하다’라 하는데 ‘딱하다 = 불쌍하다 + 어렵다’요, ‘가엾다 = 딱하다 + 불쌍하다’라 합니다.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런 뒤죽박죽 겹말풀이·돌림풀이에 갇힌 사전을 어린이한테 읽혀도 될까요? 그런데 이 대목은 어른 사전도 모두 매한가지예요. 오늘날 한국에서 나온 거의 모든 사전은 낱말을 더 많이 실었다고 자랑하기만 할 뿐, 정작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을 제대로 갈라서 밝히지 못하고, 낱말 하나를 깊이 헤아리면서 알아보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이라고 거듭 이야기하는데요, 비슷한말은 비슷하다 싶으나 다른 말입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이러한 결을 찬찬히 보고 익혀야지 싶습니다. 우리 어버이·어른은 어린이한테 더 많다 싶은 낱말을 알도록 가르치기보다는, 몇 안 되는 낱말을 들려주어 가르치더라도 제대로 뜻·결·쓰임을 갈라서 밝히고 이야기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살아가면서 쓸 바탕이 될 말씨를 제대로 익힌다면, 앞으로 어린이가 자라 푸름이가 되고, 푸름이에서 싱그러이 자라 어른이란 자리로 나아가는 동안,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뿐 아니라, ‘새로 듣거나 마주하는’ 낱말도 스스로 헤아리면서 풀이하고 결하고 쓰임을 알아낸다고 느껴요.
[보리 국어사전]
공간 : 1.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곳 2. 정해진 테두리가 없이 모든 방향으로 뻗어 있는 곳 3.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이 벌어지는 곳
장소 :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
데 : 1. 곳이나 장소를 뜻하는 말
곳 : 사물이 있는 자리.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
자리 : 1. 사람, 무건이 있거나 있을 만한 공간
어린이는 사전에서 어떤 낱말을 찾아볼까요? 아마 웬만한 어버이나 어른은 이 대목을 쉽게 놓치실 텐데, 어린이는 ‘어른이 생각하기에 아주 쉽거나 흔한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봅니다. 어른이라면 ‘공간’이나 ‘장소’ 같은 한자말을 굳이 사전에서 안 찾을 만해요. 그러나 어린이라면 마땅히 찾아본답니다. 그리고 ‘곳’이나 ‘자리’ 같은 낱말도 찾아보지요.
‘공간·장소·데·곳·자리’란 낱말을 《보리 국어사전》이 어떻게 풀이했나요? 다른 어린이 사전도 이와 비슷하고,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한 다른 어른 사전도 이와 비슷해요. 모두 겹말풀이에 돌림풀이입니다.
이제 ‘사전’은 어떤 책이어야 할까를 새롭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꾸준히 여러 사전을 새로 쓰는데요, 앞으로 언제 마무리할는 지 몰라도, 새롭게 엮을 《숲노래 사전》에 ‘사전’이란 낱말을 이렇게 풀이할 생각입니다.
[숲노래 사전]
사전 : 말에 담은 생각을 찾아보면서 삶·살림·사람·숲·사랑을 다시 바라보거나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새롭게 알거나 받아들이도록 돕는 책. 문득 내뱉을 수 있는 어느 한 자락 삶을 오직 한 마디로 그려내어서 늘 새로울 수 있는 살림으로 지피는 이야기가 되는 바탕이 되는 말을 엮어서, 그 한 마디 말을 마음에 생각으로 심고는 ‘오늘·사랑’을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한길로 이어서 즐겁게 나누도록 이바지하는 꾸러미. 나·우리 눈으로 온누리를 보고 느끼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엮은 말을 글로 담은 책. 새롭게 배우는 길에 말로 징검다리가 되는 책.
어린이한테 사전을 읽히려 한다면, 먼저 어버이·어른부터 사전을 곁에 두고 읽어야지 싶습니다. 어린이 사전만 곁에 둔다면, 어린이 사전에서 숱하게 드러나는 아쉽거나 엉성하거나 어설프거나 모자란 대목을 채우거나 보태거나 손질해서 들려주어야 할 텐데, 맞춤한 어른 사전을 어버이가 먼저 곁에 안 두다가는 힘들지요.
이런 아쉬운 얼거리를 헤아린다면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으로 비슷하면서 다른 말을 익힐 만합니다.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으로 겹말풀이를 벗어나는 길을 배울 만합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으로 사전을 스스로 어떻게 읽으면 되는가를 돌아볼 만합니다.
어린이가 스스로 사전을 읽도록 하기보다는, 일곱 살이든 열 살이든, 사전찾기는 나중에 시키면 좋겠어요. 적어도 열다섯 살 무렵까지는 어버이나 어른이 그때그때 이야기로 풀이해서 들려주기를 바랍니다. 어버이하고 어른이 어린이·푸름이 곁에서 함께 말을 새롭게 배우고 익히고 갈고닦고 가다듬고 갈무리하면서, 함께 생각을 키우면 좋겠어요.
어린이한테는 사전을 따로 장만해 주시기보다는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나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처럼, 이야기 얼개로 낱말 흐름을 짚는 책을 읽도록 하시면 좋겠고, 어린이 혼자서 읽도록 하기보다는 어버이하고 어른이 나란히 읽으면서 말씨가 왜 ‘말씨(말을 이루거나 말로 된 씨앗)’인가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