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21


《'74 가계부》

 편집부 엮음

 저축추진중앙위원회·여성저축생활중앙회

 1974.1.1.



  살림하며 쓰는 돈을 적으라는 가계부인데 가계부 하나 장만하는 값이 만만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라에서는 통반장을 거쳐 반상회를 열도록 내몰고, 나라님 말씀을 고분고분 따르라고 다그치며 가계부를 쓰라 했어요. 나라가 가난하니 사람들이 허리띠를 죄며 1원 한 푼 아끼라 했고, 꾸준히 은행에 돈을 맡겨야 한다고 몰았어요. ‘家計簿’는 그저 일본말이지요. 일본사람은 무엇이든 꼼꼼하게 적고, 이 버릇이 알뜰한 길로 이어진다고 여겼을 텐데, 한국에서 《가계부》는 군사독재가 사람들을 집살림까지 옭아매려고 하는 뜻으로 퍼뜨렸습니다. 반상회·새마을운동을 바탕으로 ‘여느 집 속내를 들여다보는 길’로 가계부를 써서 통반장 ‘검사’를 받도록 했고, 어린이한테는 ‘용돈기입장’을 써서 학교에 내어 ‘검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카드로 긁으면 우리가 어디에 무엇을 얼마나 쓰는가 하는 자취가 줄줄이 떠요. 살림을 적거나 소꿉돈을 적는 책을 좋은 뜻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만, 참말로 좋은 뜻이라면 ‘검사·감시’를 하거나 ‘상’을 주지 않을 테고, 걷거나 들여다보지 않겠지요. 여느 살림님은 이 가계부를 일기장으로도 삼았어요. 어느 모로는 가계부가 ‘일에 벅찬 가시내 눈물을 아로새기는 책’이 되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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