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나무그늘 나무걸상 (2020.5.7.)


― 전북 익산 〈두번째집〉

전북 익산시 평동로 11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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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빨리 가서 좋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더 느리게 가니 좋구나 싶지 않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갈 적에 비로소 마음이 넉넉해요. 신나게 춤추면서 갈 적에, 이러다가 맴돌이라든지 제자리뛰기라든지 빙글빙글 돌기를 해보니 재미나요.


  다 다른 어버이를 찾아서 다 다르게 태어난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짓습니다. 뒤집기는커녕 고개도 가누지 못하던 아기는 내리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크더니 어느새 걸음질에 뜀박질에 글씨질에 소꿉질을 하나하나 피워냅니다. 아이는 그냥 자라지 않아요. 저를 사랑으로 맞이한 어버이한테 치사랑을 살며시 돌려주어요.


  서울마실을 가볍게 하는 길에 여러 이웃님을 만납니다. 그림책 《하루거리》를 빚은 분도 서울에서 만났어요. 둘이서 마을쉼터를 걷다가 이런 풀잎을 훑어서 봄맛을 즐기고, 저런 풀꽃을 따서 봄결을 누려 보았습니다. 천천히 햇빛을 맞아들이고, 가만히 바람을 마시다가 영등포역으로 옮겨 기차를 탑니다. 기차는 홍성 군산을 돌고돌아 익산에 닿습니다.


  한달음에 달리는 기차가 아닌, 굽이굽이 돌아가는 기차에는 손님이 적습니다. 앉은 자리에 스미는 햇살을 누리면서 이팝나무 이야기를 동시로 적고, 팥배나무 이야기도 동시로 그립니다. 나무는 첫째 둘째를 가리지 않아요. 풀꽃은 셋째 넷째를 따지지 않아요. 언니 동생을 굳이 갈라야 하지 않습니다. 위랑 아래를 애써 벌려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 모든 곳은 한복판이자 빛입니다. 우리가 가는 모든 길은 마을이면서 보금자리입니다.


  익산역에 내립니다. 그리 멀잖은 길을 네 시간 남짓 달렸습니다. 기지개를 켭니다. 걸어서 남부시장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택시를 탑니다. 택시일꾼은 “여행 다니시나 보네요?” 하고 묻습니다만, 제 등짐이며 끌짐은 책하고 무릎셈틀하고 사진기를 채울 뿐입니다. 마실이라면 책집마실이니 ‘여행’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로서는 온나라에 고루고루 곱게 뿌리를 내려 마을빛을 나누는 책집으로 이야기밭을 누리려고 찾아간다고 해야 알맞습니다. “남부시장 안쪽에 〈두번째집〉이라는 어여쁜 책집이 있거든요. 그곳에 가는 길입니다.” “네? 남부시장에 책방이 있다고요? 처음 듣는데요?” “아직 모르는 분도 많지만, 익산이란 고장을 새롭게 바꾸는 작은 손길로 태어난 데예요.”


  오랜 저잣길을 걷습니다. 크게 한 바퀴를 돈 끝에 〈두번째집〉을 찾습니다. 저잣길에서 장사하는 이웃 분은 이곳에서 커피를 시켜서 마시기도 합니다. 뭐, 마을책집에서 꼭 책만 사서 읽어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때로는 마을찻집이 되고, 마을쉼터가 될 테니까요.


  묵직한 짐을 나르고 끌어 준 몸을 홀가분하게 하고서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우치다 햣켄/김재원 옮김, 봄날의책, 2020)을 집습니다. 길고양이한테 바치는 사랑노래가 책으로 태어났네요. 《엄마, 잠깐만!》(앙트아네트 포티스/노경실 옮김, 한솔수북, 2015)을 몇 해 만에 다시 만납니다. 몇 해 앞서 이 그림책을 다른 마을책집에서 만났을 적에는 즐거이 읽고서 제자리에 꽂아 놓았는데, 오늘 새롭게 펼치고 보니 장만해서 우리 집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 더 좋겠구나 싶습니다.


  그림책을 한 자락 더 품고 싶어서 돌아본 끝에 《토끼의 의자》(고우야마 요시코 글·가키모토 고우조 그림/김숙 옮김, 북뱅크, 2010)를 고릅니다. 토끼는 토끼다운 걸상을 나무그늘에 놓았고, 나무그늘에 놓인 걸상은 숲이웃한테 너그러우면서 상냥한 쉼터가 되었다지요.


  마을책집이란 나무그늘에 둔 나무걸상이지 않을까요. 마을책집이란 나무로 우거진 숲에 가만히 피어난 들꽃이지 않을까요. 마을책집이란 우리 스스로 새롭게 이름을 붙이면서 만나는 동무가 되도록 다리를 놓는 징검다리이지 않을까요.


  책집 〈두번째집〉을 나서고서 ‘솜리맥주’란 가게에 들러 보리술 한 모금을 마십니다. 이제 길손집을 찾으러 큰길을 건넙니다. 그런데 들어가는 길손집마다 지기가 안 보입니다. 어떻게 묵어야 하나 아리송해서 두리번거리니 ‘무인자판기’가 있군요. 아하, 무인자판기에 맞돈을 넣어 열쇠를 받으라는 뜻이로군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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