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말빛은 삶빛 (2018.3.31.)


― 도쿄 진보초 〈책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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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5244.5425.

101-0051 Chiyoda-ku, Tokyo, Japan

神田神保町1丁目7-3 三光堂ビル 3F エリア



  모든 일은 수수께끼라고 느낍니다. 일뿐 아니라, 놀이도 말도 사랑도 꿈도 밥도 옷도 몸도 수수께끼에다가, 마음까지 수수께끼이지 싶습니다. 저는 왜 말더듬이에 혀짤배기란 몸으로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더구나 코가 매우 나쁜 채 태어나 어릴 적부터 ‘코로 숨쉬기’를 거의 못하다시피 하면서 지낸데다가, 고삭부리였기에 골골대기 일쑤였지만, 이런 몸을 싫다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숨쉬기 힘들다’라든지 ‘숨을 쉰다는 생각을 안 하고도 마음껏 숨을 쉬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숨을 쉬기 어렵도록 안 좋은 코를 안고서 태어난 터라, ‘밥을 안 먹는대서 죽는 삶’이 아닌 ‘숨을 한 자락이라도 못 쉬면 바로 죽는 삶’인 줄 뼛속으로 새기며 자랐어요. 참말 그래요. 끼니는 굶어도 되어요. 그렇지만 숨을 안 쉬면 누구나 그냥 다 죽어요. 밥살림을 싱그럽고 푸르게 가꾸기도 할 노릇인데, 이에 앞서 우리가 늘 마시는 바람이며 하늘이며 숨부터 싱그럽게 푸르게 가꿀 노릇이라고 스스로 배운 셈이랄까요.


  코는 코대로 나쁘고, 혀는 혀대로 나쁘다고 할 만한 몸이었어요. 그런데 혀짤배기로 더듬질을 하던 열세 살 무렵에 “친구가 말을 더듬는다고 놀리면 안 돼!” 하고 저를 감싸 준 멋진 동무를 만났습니다. 제가 말더듬이나 혀짤배기가 아니었다면 그런 동무를 만나지 못했을 테고, 그 동무도 ‘마음으로 사귀는 사이’를 팔짱끼고 지나가지 않고 ‘말해야 할 적에 씩씩하게 나서는 몸짓’을 그때 비로소 하는 삶으로 가는 징검돌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왜 한국말사전이란 책을 쓰는 길을 걷느냐고 묻는 이웃님한테 언제나 제 어릴 적을 들려주곤 합니다. 저 스스로 말을 더듬는 혀짤배기였다 보니, 소리를 내기 어려운 말은 멀리하려 했어요. 열 살 무렵에 마을 할아버지가 천자문을 가르쳐 주셔서 천자문을 익히고 보니, 말더듬이 혀짤배기한테는 ‘일본 한자말’이건 ‘중국 한자말’이건 소리를 내어 쓰기가 어렵더군요. 쉬우며 수수한 한국말일 적에는 말더듬이 혀짤배기가 말도 안 더듬고 소리가 뒤엉키는 일이 없어요.


  ‘우리말 지킴이’라는 이름은 둘레에서 그냥 하는 소리일 뿐, 저로서는 ‘놀림받던 어린 날 살아남으려’고 ‘소리내기 쉬운 수수한 한국말’을 찾아내어 동시통역을 하듯 혀랑 손에 익힐 말씨를 스스로 캐내고 찾았습니다. 혀짤배기한테는 소리내기 힘든 한자말 ‘늠름’이 아닌, 소리내기 쉬운 ‘씩씩하다’나 ‘다부지다’란 낱말로 가려서 썼고, ‘고려·사려·배려’ 같은 한자말을 소리내기 까다로우니 ‘생각·살피다·마음쓰다’ 같은 낱말로 다듬어서 썼어요


  이렇게 살아온 길에서 ‘혀짤배기가 소리내기 쉽고 부드러운 말씨’는 ‘어린이가 알아듣기에 쉬우면서 즐거운 말씨’인 줄 깨달았습니다. 웬만한 인문책에서 쓰는 말이나, 문학한다는 분이 쓰는 ‘흔한 한자말’은 여느 마을살림이나 집살림하고 동떨어질 뿐더러, 삶을 슬기로이 사랑하며 상냥한 마음씨하고도 멀다고 느꼈어요.


  혀짤배기 말더듬이를 겪어 보지 못한 분이나, 그냥 웬만한 말소리는 쉽게 읊을 줄 아는 분은, ‘친구’ 같은 한자말조차 소리가 새거나 꼬이는 줄 모르곤 합니다. ‘동무’나 ‘벗’ 같은 낱말이 오랜 한국말이라서 이 말씨로 손질해서 쓴다기보다는, ‘동무’나 ‘벗’이란 낱말은 혀짤배기 말더듬이도 소리가 새는 일이 없이 부드럽고 쉽게 말할 만하기에 반가우면서 즐겁게 쓰는 말로 받아들였지요. 이렇게 스스로 동시통역하듯 말을 가리고 살피다가 말빛을 새롭게 북돋우면서 한결 곱게 가꾸는 길을 헤아리면 더 즐겁겠네 하고 느꼈어요. 어느새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엮거나 쓰는 어른이란 자리로 살아가더군요.


  그나저나 사전을 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분이 일본에 있습니다. 길삯을 마련하고 일본 도쿄에서 묵을 길손집삯까지 마련해서 일본 도쿄로 이야기마실이자 책집마실을 나섰습니다. ‘쿠온(CUON)’이란 출판사를 꾸리고, ‘책거리(CHEKCCORI)’란 마을책집을 꾸리는 김승복 님하고 끈이 닿아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습니다. 


  2017년에 낸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2 군더더기 한자말 떼어내기》라는 조그마한 사전을 펼쳐서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일본 이웃님’한테, 문학이나 인문을 하는 한국사람이 말치레를 너무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016년에 낸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같이 읽으면서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마다 어떤 숨결이 서리는가를 이야기합니다.


  한국문학 사랑이가 되려고 애써 한국말을 익혀 한국글로 된 한국문학을 즐겁게 읽는다는 일본 이웃님이 놀라면서 말씀을 잇습니다. “작가님이 이야기하기 앞서까지는 ‘불편’ 같은 말이 한국하고 일본이 똑같이 쓰는 말이로구나 하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번거롭다·성가시다·귀찮다’라는 비슷하면서 다른 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불편’이란 한자말로는 담아내지 못하고 담아낼 수 없는 깊은 삶이 흐르는 ‘비슷하면서 다른 말’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는데, 그런 말까지 생각하며 문학을 읽어야 문학에 흐르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오늘 고맙게 배웠습니다.” 이런 말씀은 오히려 저를 일깨우면서 이끄는 이야기예요. ‘강사’라고 해서 혼자 떠들거나 가르칠 수 없거든요. 그동안 스스로 익힌 살림을 한결 쉽고 부드러이 들려주면서, 아직 모르거나 낯선 새로운 눈길하고 눈썰미를 기쁘게 배우기에 강사나 교사라는 자리에 설 만하지 싶어요.


  이야기판을 마치고 조용한 〈책거리〉에서 여러 가지 책을 호젓하게 둘러봅니다. 한국말로 나온 《부디 계속해 주세요》(마음산책, 2018)하고, 쿠온 출판사에서 일본말로 낸 《今, 何かを表そうとしている10人の日本と韓國の若手對談》(クオン, 2018)을 나란히 장만합니다. 엊그제 도쿄 책집골목에서 찾아낸 사진책 《朝鮮民族》(山本將文, 新潮社, 1998)은 이곳 〈책거리〉에 빌려주기로 합니다. 이다음에 도쿄로 다시 이야기마실이자 책집마실을 오면 그때 돌려받기로 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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