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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 - 1인 출판사 5년 동안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알게 된 것들 ㅣ 스토리닷 글쓰기 공작소 시리즈 3
이정하 지음 / 스토리닷 / 2020년 1월
평점 :
숲노래 푸른책
- 푸른 나날·꿈·사랑을 고스란히 책으로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
이정하
슬리퍼 사진
스토리닷
2020.1.23.
담을 마주하는 이웃집으로 우리 집 나무가 곧잘 가지를 뻗습니다. 나무야 해바라기를 하면서 하늘로 뻗으니 담벼락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웃집에서는 나뭇가지가 뻗으면 싫어하기에 나무줄기에 손을 대고서 속삭입니다. “얘야, 네가 잘 자라니 반갑고 고마워. 그런데 이웃집으로 넘어가면 이웃집에서 싫어하네. 우리 집에서는 마음껏 자라면 되니까, 담 너머로 가지는 말아 주렴. 담을 넘어간 가지는 톱으로 자를게.”
무화과나무 가지를 치고서 며칠 뒤에는 뽕나무 가지를 칩니다. 뽕나무 가지에는 싹이 텄습니다. 뽕싹을 가만히 보니 꽃하고 잎이 나란히 돋아요. 뽕꽃은 풀빛으로 조그마니 내밀고는 조금씩 굵습니다. 조금씩 굵는 동안에도 풀빛이요, 어느 만큼 굵으면 이제부터 바알갛게 거듭나고, 어느덧 까맣게 익습니다.
나는 출판을 취미로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나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딸인 이 복잡한 역할 중에서도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고도 계속 손에서 일을 놓고 싶지 않았다. (229쪽)
여린 뽕싹을 보다가 하나 톡 훑어서 손바닥에 얹습니다. 이토록 보드랍고 작은 싹이 아름드리로 자라는 나무가 되네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고는 입에 넣습니다. 뽕싹에서는 오디 냄새가 납니다. 아무렴, 오디라는 열매도 뽕꽃도 뽕잎도 모두 하나인걸요. 잘린 뽕나무 가지에서 나오는 하얀물도 오디 내음이 돌아요. 가지를 토막으로 내어 잘 말린 뒤에 달이면, 이 뽕물에서도 오디 내음이 퍼지겠지요.
아이들하고 뽕싹을 누리면서 올여름 오디잼을 두근두근 기다립니다. 올여름에도 오디를 잔뜩 줍거나 훑어서 오디잼을 실컷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월을 마무르면서 오월을 바라보다가 생각합니다. 오늘 이처럼 누린 하루는 어버이인 제 몸이며 마음에 스미고, 아이들 몸이며 마음으로 번지겠지요.
우리 출판사 첫 책 《카메라 들고 느릿느릿》이란 책이 있는데, 정말 느릿느릿 팔린다. 그러니 책 제목을 지을 때 이 또한 꼭 기억할 일이다. 부정적인 단어나 부정적인 이미지는 금물이다. (188쪽)
2020년은 삼월에도 사월에도 학교를 열지 않습니다. 오월에는 열까요? 학교를 열지 않도록 온누리에 돌림앓이가 뻗는데, 돌림앓이가 뻗는 사이에 하늘길도 바닷길도 멈추고, 하늘도 바다도 조용하니 하늘빛이며 바다빛은 더없이 상큼한 파랑이 됩니다. 이러면서 기름값이 뚝 떨어져요.
매캐했던 하늘이란 지나치도록 하늘하고 바다를 더럽힌 빛깔이었겠지요. 새파란 하늘이며 바다란 우리 삶을 싱그러우면서 튼튼하게 보듬는 사랑어린 빛깔일 테지요.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퍽 오래 집에 머무는 이러한 삶을 저마다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바라볼까요? 이동안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하루하루를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여미어 보려나요?
혼자서 책을 엮고 짓고 내놓고 알리고 파는 작은 출판사 책지기님이 빚은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이정하, 스토리닷, 2020)를 읽었습니다. 요즈막에 이 책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이른바 집콕을 하는 어린이·푸름이하고 어버이가 이 책을, ‘손수 책을 엮어서 펴내어 알리고 파는 길’을 다룬 이런 책을 읽으면 꽤 뜻있고 재미있겠구나 싶습니다. 신문이며 방송에 가득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들여다보면서, 오늘날 같은 돌림앓이 이야기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달라진 삶을 글로 써 보고, 이렇게 스스로 쓴 글을 스스로 엮어서, 마침내 스스로 책 하나로 꾸려 보면 좋겠다고 봅니다.
내가 만들 책은 이력서에 한 줄 더 넣기 위해서 만드는 첵이 아니다. 어렸을 적 출판사를 해보고 싶었던 로망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요즘처럼 차고 넘치는 정보 속에서 단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나올 이유, 그 앞에 당당할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90쪽)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어버이랑 함께 책을 짓는다면 바로 ‘온누리에 딱 하나 있는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남이 살아낸 이야기가 아닌, 우리 스스로 살아낸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삶터를 우리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앞으로 이 삶터를 어떻게 일구면 아름답고 즐거울까 하는 꿈을 우리 손으로 옮기는 책이 태어날 만합니다.
3월 1일부터 5월 1일까지 날마다 이야기를 써 보았다면, 또는 아직 써 보지 않았다면, 여기에 올해가 저무는 12월 31일까지 이야기를 꾸준히 써 본다면, 또는 한 해치로는 아쉽구나 싶으면 두 해나 세 해치를 잇달아 꾸준히 써 본다면, 우리는 저마다 글쓴님이 되고 지음님이 됩니다. 이 이야기꾸러미를 손수 엮어서 책으로 선보인다면, 우리는 저마다 ‘1인 출판’을 하는 셈이기도 합니다.
좀 자세히 설명하자면, 책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첫 번째, 나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 물어보고 답을 얻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87쪽)
하루를 쓰는 일기란 오직 우리 한 사람 삶이자 이야기입니다. 오직 한 사람 삶이자 이야기는 그저 어느 고장 어느 마을 어느 집에서 겪거나 바라본 이야기일 텐데, 작은 발자취가 되지요. 굵직한 물결은 아니더라도 자그맣게 퍼지는 물결이 됩니다. 이름나거나 힘있거나 돈있어야만 글을 쓰거나 책을 내지 않아요. 오늘 하루를 스스로 즐겁거나 씩씩하거나 알차게 보내었다면, 또는 오늘 하루를 웃음이나 눈물로 보내었다면, 또는 오늘 하루를 홀가분하거나 아프게 보내었다면, 또는 오늘 하루를 꿈꾸거나 꿈없이 쳇바퀴질로 보내었다면, 이런 다 다른 한 사람 삶이 책 하나로 다 다르게 태어날 만합니다.
열 가지 스무 가지 일을 혼자서 다 해내야 하는 1인 출판일 텐데, 서둘러서 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마감을 세우되 마감에 얽매일 까닭도 없습니다. 이 나라에 오천만 사람이 살아간다면, 오천만 눈길로 오천만 가지 다 다른 꿈하고 사랑으로 오늘날 돌림앓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가꿀 앞날을 그리는 책을 써 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을 스스로 펴내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해요.
책 사기를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하지만 다 읽지 않는 남편과 어느 날 저녁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결론은 책이란 그 사람 삶이라는 것이었다. (68쪽)
1인 출판사와 같은 작은 출판사라 해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대형 출판사와 비교해서 자본력과 조직력에서 밀리지만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끌고 가는 힘은 1인 출판사가 훨씬 더 낫다고 본다. (33쪽)
푸른 나날·꿈·사랑을 고스란히 책으로 여미면서 푸른 나날이 그야말로 짙푸르도록 가꿀 수 있습니다. 푸르지 못하고 시든 나날이어도, 또 아픈 꿈이어도, 또 서러운 사랑이어도, 이 시든 빛이며 아픈 꿈이며 서러운 사랑도 차곡차곡 여미어 멍울을 스스로 달래어 천천히 일어서거나 기지개를 켜는 밑거름으로 삼을 만합니다.
아름다운 하루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아름답게 책으로 태어납니다. 슬프거나 아픈 하루는 슬프거나 아픈 이야기가 되어 새삼스레 아름다이 책으로 태어납니다. 아름다워도 아름다운 책이고, 아프거나 슬퍼도 아름다운 책입니다.
판매를 떠나서 작가의 태도를 보는 것도 중요해요. 그만큼 한 권의 책을 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다 보니 그 작가와 일을 하는데 몸과 마음이 황량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그 작가 원고를 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270쪽)
작은 출판사를 꾸리는 글쓴님은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에 앞서 두 가지 책을 선보였습니다. 하나는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이고, 둘은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입니다. 2016년에, 2018년에, 2020년에, 천천걸음으로 한 자락씩 책으로 여미었습니다. 출판사 대표이자, 곁님이자, 아이 어머니이자, 아줌마이자, 무엇보다 스스로 하루를 이야기로 갈무리하는 글님으로서 세 가지 책을 차근차근 쓰고 엮고 짓고 펴낸 셈입니다.
요즈음은 굳이 책이 아니어도 볼거리나 할거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굳이 책을, 더구나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맡아서 하는 책을, 더군다나 요즈음 돌림앓이를 둘러싸고서 달라진 우리 삶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는 책을, 저마다 하나씩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종이란 바로 숲에서 온 나무로구나 하는 숨결을 느껴 보자는 뜻입니다. 그냥 사서 쓰는 종이가 아닌, 여태까지 이 별을 푸르게 어루만진 숲에서 자란 나무가 종이라는 몸으로 달라져서 우리 곁에 있는 줄 느껴 보자는 뜻이에요.
바로 오늘부터 앞길을 푸르게 바라보자는 뜻입니다. 여태까지 살아온 대로 살아도 좋을는지, 앞으로는 모든 살림을 갈아엎듯 처음부터 새로 생각해서 짓는 길로 가야 좋을는지, 돌림앓이하고 보금자리하고 숲하고 사람을 사랑어린 슬기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글로 여미어 보자고 여쭙고 싶습니다. 같이 책을 지어 봐요. 아름다운 꿈을 그리면서.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