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72


《농작물 따로풀이》

 문교부 엮음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54.3.31.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치고 책으로 흙살림을 배우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요즈음까지 매한가지예요. 흙살림은 흙을 만지면서 익힙니다. 집살림은 ‘살림책’이 아니라 온몸으로 이모저모 마주하고 부대끼면서 익혀요. 밥살림도 책이 없이 얼마든지 물려주거나 물려받지만, 때로는 ‘밥책’을 곁에 두고서 돌아보기도 합니다. 다만, 아무리 훌륭한 밥책이 있더라도 손끝으로 묻어나는 살림꽃이 있어야 해요. ‘흙책’이 없어도 흙살림을 얼마든지 갈무리하면서 이어온 터라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학교를 세워 ‘농업 교과서’로 가르치지 않았어도 스스로 살림을 다스렸습니다. 해방 뒤에는 어떠했을까요? 이 나라는 조선총독부 배움틀을 그대로 물려받아 농업학교를 꾸립니다. 이러면서 《농작물 따로풀이》 같은 흙책을 엮습니다. 이 책은 이럭저럭 쉬운 말씨로 풀어내려고 애썼는데, 줄거리는 모두 일본 교과서를 베꼈어요. 오늘날 ‘친환경·유기농·자연농’도 하나같이 일본 흙책을 옮기곤 합니다. ‘친환경·유기농·자연농’ 같은 이름조차 일본사람이 지었어요. 앞으로 새롭게 흙책을 엮는 살림을 지을 수 있을까요. 우리 사랑을, 삶을, 노래를, 하루를, 꿈을, 이야기를, 우리 손길로 여밀 때는 언제일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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