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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한구석에 - 하
코노 후미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을까요
《이 세상의 한구석에 下》
코노 후미요
강동욱 옮김
미우
2017.10.31.
저는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죽음이 최악의 불행인지 어떤지 알지 못합니다. 다른 이가 되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모든 생명의 존엄함이니 훌륭함이니 하는 것도 엄밀히는 여전히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탓인지 가끔 ‘이 사람 저 사람’의 ‘죽음’의 숫자로 비극의 무게를 재야만 하는 ‘전쟁물’을, 도무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1943년부터 1946년까지의 작은 이야기를 실을 자리가 있었던 것, 태평하게 오른손으로 만화를 그릴 수 있는 평화,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지켜봐 주시는 독자 분들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57쪽/그린이 말)
열아홉 살 무렵부터 손빨래를 하며 살았습니다. 마흔을 훌쩍 넘기고 쉰을 바라보는 나이를 살아가니 손빨래로 누빈 나날이 꽤 길구나 싶지만, 곰곰이 보면 열아홉 살 무렵까지는 ‘어머니가 해준 빨래’로 살았던 셈입니다.
어린 나날을 돌아보면 우리 집에 빨래틀이 들어온 지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열 살인가 열한 살 즈음에 우리 집에도 빨래틀이 들어왔지 싶은데, 빨래틀을 들였어도 이불은 형이랑 저랑 발로 북북 밟아서 빨았어요. 집안에 사내가 둘 있으니 이불빨래를 도맡았는데, 형하고 이불을 밟아서 빨아 바깥마루에 척 널면 이웃집이 몹시 부러워했어요. “이야, 저 집에는 아들이 둘이나 있으니 이불빨래도 쉽게 하네!”
‘그것은 분명 누군가의 꿈. 누군가의 꿈이자, 동시에 누군가의 악몽이기도 하다.’ (16∼17쪽)
형하고 이불빨래를 하기 앞서는 어머니가 홀로 밟아서 빨래하셨겠지요. 지난날 거의 모든 집처럼 우리 집에서도 어머니가 밥살림에 옷살림에 집살림을 혼자 건사했습니다. 생각해 봐요. 오로지 두 손이랑 발로 도맡는 집살림이란 새벽부터 밤까지 일이 잇달지요.
게다가 지난날에는 어느 집이건 천기저귀를 썼어요. 더 옛날에는 집마다 밭자락에서 밥살림을 갈무리했으니 집에서 할 일은 훨씬 많았어요. 그리고 아이를 보살피면서 가르치는 몫도 으레 가시내인 어머니 몫이었습니다.
간추려 보자면, 지난날에는 살림빛이자 길잡이 노릇을 오롯이 맡은 가시내였다는 뜻입니다.
이때에 사내는 무슨 일을 했을까요? 사내란 자리에서는 얼마나 크거나 바쁜 일이 많아서 집살림이며 아이돌봄을 오롯이 가시내한테 맡기면서 바깥에 눈을 돌려야 했을까요.
“미안하다, 스즈. 쟤도 많이 놀라서 그래. 쟤도 진심으로 하는 소리가 아닐 거야. 우리는 네가 살아난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저기요, 린 씨. 그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였을까요? 그래, 반대편 울타리. 판자가 몇 개나 떨어져 나갔을, 폭풍을 타고 거기로 날아 들어가면, 그 너머, 그 너머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었을까?” (44∼45쪽)
저는 우리 집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며 모든 집안일을 도맡았습니다. 이 가운데 빨래만 이야기해 본다면, 큰아이는 온날(100일)이 될 무렵까지 날마다 기저귀를 52자락씩 내놓았어요. 날마다 기저귀만 이만큼 빨았고, 아기가 덮는 이불이며 포대기는 거의 날마다 빨았고, 배냇저고리에 바지에 하루에 몇 벌씩 빨았어요. 모두 손으로요.
작은아이는 사내로 태어난 터라 하루에 기저귀를 30자락씩 내놓았어요. 일손이 확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작은아이는 오줌을 몰아서 누다 보니 작은아이를 돌볼 적에는 이불이며 포대기를 더 자주 빨았습니다. 큰 빨랫감이 늘고 작은 빨랫감인 기저귀만 줄었달까요.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고, 아이들 먹을 밥차림을 마련하고, 아이들한테 자장노래에 놀이노래를 불러 주는 하루를 보내며 고단하지 않았어요. 재미났습니다. 웃고 울며 곯아떨어지고 뒤집고 기고 서고 걷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보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오른손, (1945년) 6월에는 하루미와 잡았던 오른손. 5월에는 슈사쿠 씨의 잠든 얼굴을 그렸던 오른손. 4월에는 테루 씨의 연지를 집었던 오른손. 3월에는 히사오의 교과서를 베꼈던 오른손. 2월에는 도깨비 오빠의 뇌를 집어올렸던 오른손. 1월에는 열심히 카루타 놀이를 했던 오른손. 작년 12월에는 미즈하라의 손을 잡았던 오른손. 작년 11월에는 형님의 옷을 잘못 재단했던 오른손. 작년 10월에는 떨면서 서랍을 열었던 오른손. 작년 9월에는 슈사쿠 씨를 찰싹찰싹 때렸던 오른손. 작년 8월에는 린 씨에게 수박을 그려 줬던 오른손 …… 작년 4월에는 민들레 솜털을 땄던 오른손. 작년 3월에는 고향을 그려 남겼던 오른손 …… 재작년 연말에는 김 뜨기를 너무 좋아했던 오른손. 7년 전 2월에는 토끼를 몇 마리나 그렸던 오른손. 10년 전 8월에는 스미를 위해 모래에 엄마를 그렸던 오른손. (58∼59쪽)
만화책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바로 이 대목을 차근차근 그립니다.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살림을 가꾸는 여느 사람이 그 모질었다는 때에, 한국으로서는 ‘일제강점기’요, 일본으로서는 ‘태평양전쟁기’에 무엇을 먹고 입고 어떻게 자면서 하루를 누렸는지, 날마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하면서 보냈는가를 고스란히 옮깁니다.
참말로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우리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요. ‘어머니하고 아버지’도 어린이로 살던 나날이 틀림없이 있을 텐데, 두 어버이는 어버이 아닌 아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살림을 맡아야 했고, 겨울에 얼마나 손이 꽁꽁 얼면서 집안일을 해야 했으며, 여름에 얼마나 온몸이 후끈후끈 더운 채 집살림을 나누어 맡았을까요.
“다만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올케 돌보고 집안일 하는 거 다 괜찮아. 오히려 무료하지 않아서 좋은걸. 이것저것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올케 본인이 싫어지지 않는 한 올케가 있을 곳은 여기야. 괜히 쓸데없이 마음쓰지 말고 스스로 결정해.” (77쪽)
오늘날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책을 넘기면 언제나 임금님 이름이라든지 임금님 둘레에서 벌어진 일이나, 벼슬아치하고 먹물붙이 이야기가 잔뜩 흐릅니다. 어느 학교 어느 역사책에서도 수수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어디에서 자면서 하루를 보냈나 하는 이야기가 없어요. 우두머리하고 벼슬아치하고 먹물붙이는 ‘조선왕조실록’이란 책을 써서 남겼습니다만, ‘마을살림 이야기’는 한 마디로도 옮기지 않았어요.
그들 힘자리에 선 이들은 ‘씨앗을 어떻게 묻’는지, ‘베틀은 어떻게 밟’는지 ‘바느질은 어떻게 하’는지, ‘실은 어떻게 얻’는지, ‘아이한테 자장노래는 어떻게 부르’는지, ‘빨래터에서 옷을 어떻게 빨’았는지, ‘낫을 어떻게 긋’는지, ‘풀벌레하고 개구리하고 새가 들려주는 노랫소리가 어떠한’지 같은, 수수한 사람들 수수한 마을에서 늘 벌어지는 이야기는 한 줄로도 그리지 않았어요.
“너도 히로시마에서 왔니? 나는 강해지고 싶어. 다정해지고 싶어. 이 마을 사람들처럼. 아아, (B29 날아가는 소리) 시끄러워. 그런 폭력에 굴할 줄 알아?” (88쪽)
‘이 나라에서 정의가 날아가 버린다.’ “아아, 폭력으로 복종시켜 온 건가. 그러니까 폭력에 굴복하는 건가. 차라리 나도 모른 채 죽었으면 좋았을걸.” (96∼97쪽)
만화책 《멘발의 겐》이 있습니다. 《맨발의 겐》은 수수한 삶자리에서 수수한 사내라는 눈길로 ‘일본이 정치권력을 세워서 끔찍하게 사람을 길들이고 홀려서 바보구렁텅이로 몰아넣어 얼마나 엉터리짓을 일삼았는가’를 멱살잡이를 하듯이 그려냅니다. 일본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나 먹물붙이가 쉬쉬하거나 들여다보려 하지 않던 모습을 낱낱이 그려내어 밝히지요.
만화책 《이 세상의 한 구석에》는 수수한 삶자리에서 수수한 가시내라는 눈길로 ‘일본 정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언제나 집안일로 바쁘고 학교 문턱도 디딜랑 말랑 하면서 사느라, 나라가 시킨 엉터리짓이 엉터리짓인 줄 알 수도 없는 채 맴돌이를 한 끝에 맞이한 패전이란 때에, 마을 한켠에 아주 작게 올라온 아주 작고 낡은 태극기를 보고서 여태 일본이란 나라가 뭘 했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를 한달음에 모조리 깨우친’ 살림살이 이야기를 아줌마 눈길로 그립니다.
두 만화가 매우 닮았어요. 그저 두 만화는 ‘아저씨 눈길하고 목소리’하고 ‘아줌마 눈길하고 목소리’라는 결이 다를 뿐입니다. 여태껏 역사이건 정치이건 문화이건 교육이건 예술이건 으레 사내 눈길이나 목소리로 흘렀잖아요. 이 물결 한켠에 조그맣게 피어난 민들레꽃 같은 만화랄까요.
“살아 있든 죽었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이 있고, 저만이 갖고 있는 기억이 있어요. 저는 그 기억의 그릇으로서 이 세상에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겠죠.” (128쪽)
죽은 사람 곁에 산 사람이 있습니다. 산 사람 곁에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 곁에 다친 사람이 있고, 다친 사람 곁에 죽은 사람이 있어요. 저마다 다른 몸으로 이 땅에 와서는, 저마다 다른 삶으로 하루를 지내고는, 저마다 다른 숨결로 피어나거나 스러집니다.
살아남은 일이란 슬픔일까요. 살아남았으니 고마울까요. 팔 하나가 폭탄에 날아갔어도 살아남으니 기쁨일까요. 비록 어머니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길거리에 쓰러져 죽은 몸이 되었지만, 어머니가 사는 마을까지 가까스로 걸어와서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얼굴에 몸으로 숨이 끊어진 사내는 마지막 웃음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당신의 등을 쓰다듬는 태양의 손바닥. 당신을 감싸 주는 김 같은 땅거미. 머물렀다 날아가는 정의. 어디에나 깃드는 사랑. 그리고 언제든지 마련될 당신의 자리. 미안해요. 지금 이것을 읽은 당신은 죽을 거예요. 참새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민들레의 솜털도 맞지 못하고, 구름의 틈새가 만드는 양지에 들지 못하고, 옆에 잠든 사람의 꿈속조차 알지 못하고, 쏜살같은 속도로 차례차례 기억이 되어 가는 반짝이는 날들을, 당신은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며, 점점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이는 빠지고, 눈은 침침해지고, 귀는 멀고, 그런데도 그것을 행복이라고 웃음지으면서. 모두가 하는 말이니까 그럴지도 몰라요. 아니면 단순히 남의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당신은 이 세상의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하니까. (143∼148쪽)
만화책을 이끄는 젊은 아주머니 목소리에 “아아, 폭력으로 복종시켜 온 건가. 그러니까 폭력에 굴복하는 건가. 차라리 나도 모른 채 죽었으면 좋았을걸.” 같은 말을 얹은 《이 세상의 한 구석에》 마지막 자락입니다.
군함을 만들고 폭탄을 만들고 총칼을 만들어 숱한 나라로 쳐들어가니, 이렇게 전쟁무기를 갖춘 나라는 바로 더 센 전쟁무기에 짓밟힙니다. 더 센 전쟁무기는 더더 센 전쟁무기한테 짓밟히겠지요.
그렇다면 생각해 봐요. 호미 한 자루를 쥐어 일군 밭에서 거둔 남새를 내미는 손길이라면, 이 손길 앞에는 누가 무엇을 들고 설까요? 손을 잡고 뛰노는 아이들 곁에 선 옆마을 아이들은 어떤 얼굴하고 마음으로 다가설까요?
우리는 서로 이웃 사이가 될 만할까요, 이쪽하고 저쪽을 갈라서 더 센 주먹힘을 키워야 할까요? 주먹힘을 키우는 데에 돈을 옴팡 쓰느라 막상 호미 한 자루도 없이, 밭 한 뙈기조차 없이, 남새 한 포기를 나누는 사랑이 없이, 치고박고 다툴 적에 배부른 살림이 될까요?
“봐. 아홉 개의 봉우리가 지켜주고 있지. 그래서 쿠레라고 해. 뒤는 바다. 오른쪽은 야스미산. 왼쪽은 하치마키산. 그 너머가 히로시마야. 그리고 한가운데가 하이가미네 봉. 저 기슭이 우리 집이야.” (152∼153쪽)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우리는 오늘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각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살림길을 바랄 만한가를 꿈꿉니다. 죽은 사람을 숱하게 곁에 둔 작은 마을 작은 아줌마 아저씨 둘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집도 모조리 전쟁 불구덩이에서 잃고 혼자가 된 작은 아이’를 만납니다. 집도 절도 아무것도 없이 외톨이가 된 아이는 어느새 거지 꼴입니다. 작은 아줌마 아저씨는 외톨이 거지 꼴 아이를 상냥하게 쓰다듬고 어루만집니다. “저 기슭 우리 집”으로 가기로 합니다.
외톨이 거지 꼴 아이는 아버지가 징병으로 끌려가서 죽었고, 어머니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온몸에 유리조각이 박혀서 죽었습니다. 이 아이를 일본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나 먹물붙이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을 뿐더러 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를 품을 사람은 따로 있어요. 바로 살림꽃 아주머니하고 아저씨입니다.
이 땅에서 숱한 어른이란 이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라를 바로세우겠다고, 지식을 나누겠다고, 종교를 일으키겠다고, 경제발전을 이루겠다고, 온갖 목소리를 드높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치고 아기 오줌기저귀를 손빨래로 복복 비벼서 헹구어 삶고는 마당에 척척 널어 해바라기를 시킨 다음에, 아기를 품에 안고서 싱글벙글 노래를 불러 주는 살림을 꾸리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우두머리끼리는 평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작은 마을 작은 사람들이 되어야 비로소 어깨동무를 하면서 잔치마당을 폅니다. 벼슬아치끼리는 민주를 말하지 않습니다. 숲을 곁에 둔 조촐한 마을 수수한 사람들이 되어야 사랑을 노래하는 보금자리를 짓습니다. 먹물붙이끼리는 평등을 말하지 않습니다. 살림순이 살림돌이 이름을 스스럼없이 가슴에 달고서 하루를 새롭게 가꾸려는 아줌마 아저씨가 될 적에 언제나 꿈꾸고 노래하는 빛나는 하늘사람이 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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