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손길, 눈길, 마음길 (2020.2.13.)

― 전북 전주 〈잘 익은 언어들〉

전북 전주시 덕진구 두간11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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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가면 갈수록 우리 집 큰아이는 바깥마실을 꺼립니다. 면소재지나 읍내만 나가도 시끄러우면서 훍도 풀밭도 없을 뿐더러 숲은 볼 수 없어서 싫다고 합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좋으나,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새도 나비도 풀벌레도 없고 개구리도 뱀도 두꺼비도 돌아다니지 못하는 큰고장에는 있고 싶지 않다고 밝혀요.


  이 아이를 바라보면서 머리를 쓰다듬고서 속삭입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나무랑 풀이랑 숲을 등지면서 살지. 도시란 곳이 그 모두를 밀어없애거나 죽이면서 시멘트하고 아스팔트하고 자동차하고 화학약품으로 뒤덮지. 그렇지만 너랑 나가 남남이 아닌 모두 하나인 줄 너도 알지? 싫거나 밉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네가 스스로 마음을 바꾸면서 그 모두가 노래라고 여기면서 네 눈앞에 펼치는 모든 모습을 바꾸어 보렴.”


  함께 마실길에 올라 일산에 계신 할머니한테 찾아가려다가 혼자 마실길에 섭니다. 어쩌자 혼마실이 된 몸으로, 바야흐로 홀가분한 차림으로 순천을 거쳐 기차를 타고 전주에 내립니다. 전주 시내버스를 타고 〈잘 익은 언어들〉로 찾아갑니다. 시내버스가 대단히 빠릅니다. 아니, 버스일꾼이 씽씽 달립니다. 총알버스로군요.


  한참 걷다가 ‘아, 이 길이 아닌 듯한데?’ 하면서 손전화를 켜서 길그림을 살피니 엉뚱한 데로 갔습니다. 걸은 길을 거슬러서 낯익은 골목을 찾았고, 책집 앞에 섭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어떤 그림책을 만날까요.


  이 그림책 저 그림책 돌아보고, 이 책 저 책 만지작거립니다. 하나둘 살펴서 갖춘 손길을 느끼고, 곰곰이 생각하며 건사한 눈길을 만나며, 차근차근 읽고 새기면서 갈무리한 마음길을 받아먹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서 누리는 책집마실이란 ‘책을 지은 사람’하고 ‘책을 펴낸 사람’하고 ‘책을 읽을 사람’ 사이를 잇는 손길을 새삼스레 느끼는 하루이지 싶습니다.


  만화책 《평등은 개뿔》(신혜원·이은홍, 사계절, 2019)을 고릅니다. 어린이한테는 읽힐 수 없습니다. 그린이 두 분이 어린이 눈높이로 이 줄거리를 새롭게 담아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날씨는 물》(오치 노리코 글·메구 호소키 그림/김소연 옮김, 천개의바람, 2020)을 폅니다. 새해를 여는 낱말로 ‘물’을 마음에 놓아 봅니다. 올해에는 물을 얼마나 신나게 마셔 볼까 하고 그립니다. 고이거나 갇힌 물이 풀려나기를 빌고, 흐르면서 춤추는 물이 온누리를 적시면 좋겠어요. 《빨간 벽》(브리타 테켄트럽/김서정 옮김, 봄봄, 2018)을 넘깁니다. 담벼락이 빨갛군요. 바알간 울타리 이쪽하고 저쪽 사이에는 어떤 숨결이 도사릴까요.


  익산으로 건너가려다가 그만두기로 합니다. 익산마실은 다음에 하자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트라이다’라는 작은자전거를 새로 장만하자고도 생각합니다. 가볍게 착착 접어서 끌고 다니는 작은자전거가 있으면 총알버스를 안 타도 되겠지요. 바람을 먹고 마시면서 느긋하게 자전거로 여러 고장 여러 책집을 돌아다닐 날을 그립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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