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포근한 냥이집 (2018.4.1.)

― 도쿄 진보초 姉川書店



  며칠 동안 도쿄 진보초에 머물면서 〈책거리〉를 바탕으로 죽 돌았고, 두 시간이 조금 못 되게 바깥으로 나가는 전철을 달려 ‘도쿄 하치오지 블루룸(RISING BLU https://www.risingblu.jp)’에도 다녀왔습니다. 도쿄마실 막바지에 이른 오늘은 〈アム-ル〉를 거쳐 〈姉川書店〉에서 불꽃처럼 힘을 더 내보기로 합니다. 등이며 손에 쥔 책짐으로도 걷기가 힘든 마당이지만, 살몃살몃 기울려고 하는 해를 바라보자니, 이 해거름에 책골목 모습도 사진으로 담고,‘神保町にゃこ堂’이라고 책집에 붙인 이곳을 누리고서야 길손집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합니다.


  길가에서 보아도, 책집으로 들어서도, 참말 이곳은 ‘냥이집’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고양이하고 얽힌 책이며 살림을 다룹니다. 책집 한켠에는 이 냥이집을 아끼는 분들이 여기저기에서 보낸 고양이 사진도 붙었습니다.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며, 석 바퀴째 돌며 여러 가지 사진책을 고릅니다. 고른 책을 손에 쥔 채 일본말로 “この美しい本屋を寫眞で撮っても良いでしょうか?” 하고 여쭙니다. 책집지기 아저씨가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셔서 종이에 적은 일본글을 보여드립니다. 냥이 아저씨는 활짝 웃음짓는 얼굴로 얼마든지 찍으라고 말씀합니다. 꾸벅 절을 하고서 다시 골마루를 돌고 돌면서 여러 고양이 사진책을 돌아봅니다. 《ちよつとネコぼけ》(岩合光昭, 小學館, 2005)처럼 그동안 장만한 이와고 미츠아키 님 사진책도 이 냥이집에 잔뜩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동안 ‘해외배송’으로 달포를 기다려서 겨우 장만하던 이런 사진책을 이곳에서 모조리 사들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다른 책집에서 장만한 책으로도 무게가 넘쳐서 이튿날 비행기를 탈 적에 아슬아슬합니다.


  한국에서도 제법 사랑받은 《みさお と ふくまる》(伊原美代子, little more, 2011)를 봅니다. 첫벌은 2011년 10월 28일에 찍고, 열세벌을 2016년 10월 27일에 찍었다고 합니다. 대단하군요. 《描のことぼ》(鹽田正幸, 池田書店, 2014)을 고릅니다. 낯빛·몸짓으로 읽는 고양이 마음말을 적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일라(Ylla) 님 여러 사진책을 새삼스레 봅니다. 한국에서는 이일라 님 사진책을 찾기가 매우 어렵지만, 여기에서는 참 흔하군요. 한국에서 꽤나 웃돈을 주고 장만했던 낡은 사진책을 이곳에서는 그냥그냥 ‘여느 새책값’으로 가볍게 만날 수 있어요.


  냥이집 〈姉川書店〉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이 조촐한 책집은 빈틈이 하나도 없습니다. 고양이를 바탕으로 모든 숨결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담은 글책하고 사진책하고 그림책을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이러한 책은 모두 일본글로 나왔지요. 일본사람이 손수 지은 책이 있고, 여러 나라에서 지은 책을 옮기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고양이 책이 꽤 나오기는 합니다만, 여기 〈姉川書店〉이 건사한 뭇책을 돌아보자니 꽤 멀었네 싶습니다. 이만큼 오래 깊이 널리, 무엇보다도 사랑스럽고 포근하게, 그리고 차분하면서 참하게 어깨동무하는 삶벗으로 마주하는 눈빛으로 담아내는 글·그림·사진이 되기까지는 열 해나 스무 해라는 나날로는, 아니 쉰 해쯤 되는 나날로도 어림이 없으리라 봅니다.


  일본마실을 하며 이곳을 일찌감치 들렀다면 아마 주머니를 다 털었겠네 싶습니다. 마지막날에 들러서 그나마 다른 여러 책집을 들를 수 있었네 싶어요. 다만, 조금 앞서 다리쉼을 했어도 졸음이 쏟아집니다. 〈姉川書店〉이 품은 아름다운 책을 더 읽고 사진으로도 옮기고 싶으나, 사진기를 쥔 손에 기운이 없고 자꾸 덜덜 떱니다.


  책값을 셈하면서 책집지기 손을 찍습니다. 책집을 나선 다음 길을 건너서 책집을 바라보며 사진을 마저 찍습니다. 둘레에 커다란 책집도 가게도 잔뜩 있으니, 냥이집 하나는 무척 작아 보입니다. 밖에서 보면 이렇게 작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도 쉬울 테지만, 문득 이 냥이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깨알같은 글씨를 슬쩍 읽은 다음에, 가만히 문을 열고 들어선다면, 마음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는 빛살을 누릴 만하지 싶습니다. 일본 도쿄 진보초가 대단하다면 커다란 책집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이 냥이집 〈姉川書店〉처럼 단출한 책집이 사이좋게 어깨를 겯고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 때문이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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