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집은 책집 (2018.4.1.)

― 도쿄 진보초 アム-ル



  2018년 4월 1일을 끝으로 이튿날에는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이른아침에 길손집에서 나온 뒤 하루 내내 곳곳을 걸었어요. 진보초에서 긴자라는 데까지 걸어 보았고, 이동안 소방박물관에서 다리쉼을 했고, 널따란 숲터에서 물을 마셨고, 긴자에서 진보초로 다시 걷자니 발바닥이 싫어하는구나 싶어 전철을 탔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진 데에서는 드문드문 한국말을 들었습니다.


  긴자에 있는 ‘키노구니야’에도 들르고 싶었지만 짬을 내기 어려워 바깥에서 우람한 모습만 훑었습니다. 책집이야 잔뜩 들렀으니 일본 ‘유니클로’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들어가 보니 겹겹이 높고 넓더군요. 옷을 사는 사람들 줄이 매우 길었습니다.


  걷고 전철을 타고 책집에 들르고 등짐이며 손짐은 온통 책인데, 이 짐더미를 이고 지기만 하지는 말자고 여기면서 볕받이 걸상을 찾아서 앉습니다. 그늘받이를 안 좋아하니 몸을 쉴 적에도 부러 볕밭이에 앉아서 고무신을 벗고 발바닥이며 발가락한테 해바라기를 시킵니다. 풀밭이 있으면 풀밭에 맨발로 서서 숨쉬기를 합니다.


  진보초로 돌아와서 책골목하고 가까우면서 조용한, 마을 한복판에 있는 가게에 들러서 주전부리를 장만하고는, 아침부터 돌아다니며 장만한 책을 읽다가 수첩을 꺼내어 동시를 새로 쓰다가, 코앞에 보이는 자전거집에 들어가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다시 책집으로 가자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일본마실을 할 적에는 키노구니야도, 자전거집도, 되살림가게도, 이런저런 수수한 마을가게에도 슬그머니 들어가자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책만 다루는 재미난 헌책집이 보였으나 앞에서 사진만 찍고 다음 마실을 꿈꾸면서 지나칩니다. 〈アム-ル〉란 책집이 보여 바깥에 놓은 책시렁을 돌아보는데 《日本のなかの外國人》(アラン·タ-ニ-, 三省堂, 1970)하고 《黑人大學留學記, テネツ-州の町にて》(靑柳淸孝, 中央公論社, 1964) 같은 재미난 손바닥책이 보입니다. 하나에 100엔이라 하기에 쇠돈을 둘 꺼냅니다. 안쪽도 구경할까 하고 들여다보는데 안쪽은 알몸 사진책하고 디브이디가 잔뜩 있습니다. 아, 이곳에는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하고서 들어가면 안 되겠다고 느껴, 얼른 목에서 풀어 어깨로 옮깁니다. 사진기를 멘 채 둘러볼 수는 없는 데로구나 싶어 200엔 책값만 치르고 나오려는데, 〈はじめての神保町步き 2018年 冬〉이라든지, 《JIMBOCHO vol.8.》(神保古書店聯盟, 2018)이라든지, 〈JIMBOCHO 古書店 MAP 2018〉(神保古書店聯盟, 2018) 같은 작은책하고 길그림을 ‘그냥’ 가져가도 좋다는 알림글이 보입니다.


  이 책집도 일본 책집으로서 재미난 얼거리이니 사진으로 담고 싶기는 하지만, 진보초를 말하는 작은책하고 길그림을 고맙게 얻고서 나가자고 생각합니다.


  다음 책집으로 걸어가며 이 〈アム-ル〉를 돌아봅니다. 100엔짜리 손바닥 인문책하고 알몸 사진책이 나란히 있는 책집이란, 일본이라는 나라를 잘 보여주는 모습일는지 모릅니다. 두 가지가 어우러진, 이를 아무렇지 않게 녹여낸, 또는 이 터에 맞게 다스려서 풀어낸 삶길이라 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