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숟가락 16
오자와 마리 지음, 노미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푸른책

- 함께 뛰어넘을 언덕



《은빛 숟가락 16》

 오자와 마리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9.7.15.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윗자리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고단한 살림이 되기 일쑤입니다. ‘윗자리’란 여럿입니다. 먼저, 나이가 많은 자리입니다. 둘째, 돈이 많은 자리입니다. 셋째, 이름이 높은 자리입니다. 넷째, 주먹힘이 센 자리입니다. 다섯째, 동무나 이웃을 많이 거느린 자리입니다. 여섯째, 벼슬이 높은 자리입니다.



‘난 마음속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안심했다. 왜냐면 지금까지 호토리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양심이 찔려서 괴로웠기 때문이다.’ (17쪽)


‘저녁은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가족은 내가 오디션에 떨어져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꺼림칙해서 괴로워하던 그 정보를, 호토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던 데다 거짓말까지 했다는 사실에 상처받았다.’ (31쪽)



  군대라는 곳에서는 벼슬이 높은 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위아래 틀을 깬다고 해서 무시무시하게 다그치는데, 싸움터에서는 그자리에서 바로 죽여도 된다고까지 하지요.


  삶터에서는 어떤가요?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든지, 장관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지자체에서는 시장이나 군수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교장·교감·교사가 시키는 대로 학생이 따르지 않는다면?


  가만히 생각해 봐요. 우리는 윗자리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윗자리이건 아랫자리이건 저마다 할 말을 할 줄 알아야 하고, 한쪽이 다른쪽을 밀어붙일 수 없어요. 서로 이야기를 해서 가장 슬기롭고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함께 나아갈 노릇이에요. ‘시킴질’ 아닌 ‘이야기’로 맺고 풀 노릇입니다.



“그냥이라니. 몇 시인지 알아? 이런 시간에 돌아다니는 초등학교 6학년은 없어.” “얼마든지 있어. 이 주변 애들은 전부 중학교 입시를 치러서 밤 10시 넘어서까지 학원에 가 있어.” (50쪽)



  시킴질이 판치기에 막질(갑질)이 판쳐요. 시킴질이 드세니 바른소리나 바른말이 자꾸 막혀요. 더 생각해 볼까요? 어린이가 어른 곁에서 바른소리나 바른말을 할 적에 ‘어린이가 들려주는 바른소리나 바른말을 고분고분 듣고 따르면서 바르게 살림을 가다듬거나 추스르려고 하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아주 없거나 아예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생각보다 참으로 적습니다만, 이제는 조금씩 ‘어린이 바른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마음을 열어 삶을 바꾸려는 어른’이 늘어난다고 느껴요.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묻고 싶어요. 어린이나 푸름이 여러분이 바른소리나 바른말을 마음껏 펼 수 있는 나라이거나 집이거나 마을이거나 배움터인가요?


  어른한테 묻고 싶습니다. 어른이 말하니까 어린이나 푸름이는 잠자코 있거나 따르기만 해야 하는가요? 어른으로서 바른소리나 바른말에 어느 만큼 마음을 열면서 스스로 새길을 즐겁게 나아가는가요?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여러 가지로 최악이었어. 그 베란다에서 형이 나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최악이었을지 몰라. 그래도 엄마를 많이 좋아했는데, 난 그무렵의 일을, 분명 잊지 않고 있어.” (66쪽)



  여러 아이하고 어른이 얼크러지는 삶자리를 오롯이 사랑으로 그려내는 《은빛 숟가락 16》(오자와 마리/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9)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무척 긴 만화가 될 테고, 앞으로 어떤 마무리가 될는지 지켜보는 만화이기도 한데, 혼자 먹든 함께 먹든 서로 따사로운 손길로 지은 밥차림을 서로 즐거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터뜨리면서 서로 사랑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뜻을 줄거리로 삼습니다.


  더없이 따스한 삶을 그리지만, 이 따스한 삶 곁에서 맴도는 아이나 어른이 많다지요. 사랑받지 못한 집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있고, 사랑받지 못한 생채기나 멍울이나 응어리를 그대로 품은 채 어른 몸이 된 뒤에 아이를 낳으니, 도무지 제 아이한테 사랑을 어떻게 펴야 좋을는지 몰라 헤매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이런 여러 사람 곁에서 가없이 너른 마음이 되는 사람이 있고, 이냥저냥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있어요.



“엄마는 분명 루카보다 더 상처받았을 거야.” “그런데도 질리지도 않나 봐.” “텟짱하고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번엔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텟짱하고 헤어지고 나서 엄마는 무척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일 관련된 자격증을 따고. 집에서도 그래. 네가 없어졌을 때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너도 기억하잖아?” “결국 형도 엄마 편이구나.” “형은 언제나 네 편이야.” “그럼 만일 엄마가 시게키랑 결혼하게 되면, 나 형이랑 산다?” “응, 그래.” (71∼72쪽)



  마음이 아픈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요? 사랑이 가득한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요? 집에서 받은 생채기를 학교에서 더 받아야 한다면,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클까요? 집에서 받은 사랑을 학교에서 더욱 받는다면, 이 아이는 또 앞으로 어떤 삶길을 그릴 만할까요?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삶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이기보다는, 대학교나 회사에 어떻게 더 잘 붙이는가에 사로잡힌 자리라고 느낍니다. 앞으로 이 나라 학교는 삶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로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대학교에 가고 싶으면 누구나 갈 수 있어야겠고,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고 싶으면 누구나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어 새롭게 하루를 열 수 있어야겠어요.


  졸업장으로 금긋는 터전은 이제 끝내면 좋겠습니다. 기쁘게 어울리는 터전이 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푼푼이 살림을 나누는 마을이 되면 좋겠어요. 집이나 땅을 돈으로 사고파는 나라가 아니라,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꿈을 키우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길을 이룰 만할까요?



“(너희) 엄마가 그랬어. 자기는 엄마로서는 실격이었기에, 루카의 마음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대. 난 루카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더는 만날 수 없대. 내 시간을 낭비시킬 수는 없다고 했어. 전혀 낭비가 아닌데 말이지.” (94쪽)



  엄마답지 못한 엄마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낳은 뒤에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에 섣불리 ‘잘못’이라 못박기보다는, 낳은 사랑을 찬찬히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비록 기르는 사랑을 아직 모른다 하더라도, 오늘부터 기르는 사랑을 배우면 되어요. 둘레에서 나긋나긋 기르는 사랑을 알려주면 참으로 좋겠어요.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서 다루는 밥차림에도 익히 나오는데, 아주 놀랍거나 대단한 밥차림이 아니어도 됩니다. 같이 부엌에 모여서 같이 반죽을 하고 그릇을 다루며 설거지를 합니다. 같이 자리를 펴고 같이 앉아서 마주봅니다. 곁밥이 많아도 좋으나, 곁밥이 하나여도 좋아요.


  때로는 집에서 차리지 못하고 사다 먹을 수 있어요. 사다 먹는 밥차림이어도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이 된다면 무엇을 먹더라도 웃음꽃이 피어나고 수다판이 벌어집니다. 가게에서 파는 과자 한 조각으로도 즐거이 저녁자리를 누릴 만해요. 잔칫밥을 차렸어도 사랑스러운 기운이 흐르지 않으면 답답하고 더부룩하고 괴롭고 힘들 테지요.



“확인해 볼래? 루카랑 형의 친부가 엄청난 쓰레기인지 어떤지. 찾으려고 생각하면 찾을 수 있어.” “혹시 형은 이미 만난 적 있어?” “없어. 방금 루카가 한 말이랑 똑같이, 찾아도 어차피 대미지를 입을 뿐이라고 생각했거든.” (104∼105쪽)


‘사는 세계가 너무 다르다는 걸 루카도 알아챘다. 부인은 국내 유수의 호텔 그룹 총재의 손녀에 다도 종갓집 딸이기도 했다. 부인을 버리고 우리를 낳아준 어머니와 맺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그는 14살 때 만나던 같은 상대와 같은 일을 반복해서, 일순간이나마 친모에게 꿈을 꾸게 했을까.’ (139쪽)



  집안을 잇는 길이란 어느 일을 돈이 오래오래 되거나 이름이 널리널리 퍼지도록 붙잡는 길이 아니지 싶습니다. 예부터 흐르고 흐르던 포근한 사랑을 오늘 새롭게 가꾸어서 한결 밝히기에 집안길이 되지 싶어요. 먼먼 옛날부터 숱한 어버이가 숱한 아이한테 나누어 주면서 새롭게 받은 사랑을 오늘 되새기면서 앞으로 활짝 피어나도록 북돋우기에 집안길이 된다고 느낍니다.



“아니, 아직 모르겠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꼭 뛰어넘을 거야.” “응, 알겠어.” “형은?” “형은 루카를 응원할게.” “응? 형도 뛰어넘어.” (154쪽)



  어제를 뛰어넘어 오늘에 이릅니다. 아쉽거나 서운했던 어제를 내려놓고서 오늘을 맞이합니다. 즐겁게 누린 어제였으면 오늘은 새로 찾을 즐거운 길을 생각하면서 아침에 기지개를 켭니다.


  더 잘 하고 싶기에 뛰어넘지 않아요. 껑충껑충 자라는 키처럼 깡총깡총 뛰놀면서 홀가분하게 하늘로 두 팔을 뻗는 신바람을 누리려고 뛰어넘습니다. 어떤 울타리가 코앞에 있어도 가뿐히 뛰어넘어요. 어떤 담벼락이 둘레에 높다랗다지만 사뿐히 뛰어넘지요.


  사랑은 울타리로 둘러쳐서 막지 못합니다. 사랑은 담벼락으로 꽁꽁 싸매어 가두지 못합니다. 모든 응어리도 멍울도 생채기도 달래면서 녹이는 사랑이에요. 모든 미움도 시샘도 짜증도 가볍게 다독이면서 활활 태우는 사랑이에요.


  바람을 타는 새처럼 날아오르고 싶기에 뛰어넘습니다. 온누리를 가르는 별똥처럼 별하고 별 사이를 나들이하고 싶기에 뛰어넘어요.


  우리 함께 뛰어넘어 볼까요? 나이로 금을 긋는 어른들 판에서 사랑으로 손을 잡는 아이들 판으로 바꾸어 볼까요? 돈이나 이름이나 주먹으로 금을 가르는 어른들 나라에서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푸른 놀이마당으로 고쳐 볼까요? 벼슬을 내세워 억누르거나 시킴질에 막질을 일삼는 어른들 마을에서 사랑으로 뛰놀고 웃음꽃을 피우는 맑은 보금자리를 지어 볼까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