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별빛을 머금는 이야기 (2019.12.7.)

― 강원 원주 〈터득골북샵〉

033.762.7140.

강원 원주시 흥업면 대안로 511-42

http://tudeukgol.com/

https://band.us/@tdgbook



  강원도 원주는 강원도이면서 경기도하고 충청북도하고 맞닿습니다. 조금 더 가면 경상북도하고도 닿아요. 여러 고장하고 이어지는구나 싶은 이곳은 길그림으로 보자면 이 나라 뭍에서 아주 한복판입니다. 이리 가나 저리 가나 바다하고 참 멀어요. 이런 만큼 둘레는 멧자락이 감쌉니다.


  시내는 서울하고 매한가지일 테지만, 한 시간마다 지나가는 버스를 타면 멧골에 깃든 마을책집이요 찻집인 〈터득골북샵〉으로 마실할 수 있습니다. 굽이굽이 달리는 버스를 타고서 숲이 베푸는 빛깔하고 냄새를 누리며 고즈넉한 책터로 나아가는 셈이랄까요, 낮에는 숲내음을 머금는 길이고, 밤에는 별빛을 맞이하는 길이랄까요.


  서울이나 부산이나 광주라면 5분 사이로 다니는 버스가 있습니다. 때로는 2∼3분 사이로 다니는 버스까지 있더군요. 이런 찻길을 생각한다면 한 시간마다 다니는 버스는 드물구나 싶지만, 고흥 같은 시골에서는 두 시간마다 다니는 버스가 흔하고, 하루에 한 판 지나는 버스길도 있어요.


  터득골이 터득골스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땀씩 손보면서 자라나는 마을책집 〈터득골북샵〉이라고 느낍니다. 나무로 지은 걸상에 나무로 세운 바깥마루입니다. 나무로 우거진 숲을 조금 걸으면 노래도 춤도 마당놀이도 펼 너른터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하루를 묵으면 밤에는 밤무지개를, 새벽에는 새벽무지개를 만나요.


  종이에 얹는 책이기 앞서 마음에 담는 책을 만나는 곳이지 싶습니다. 종이가 되어 준 숲을 먼저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우리 모두 언제나 푸른 숨결인 줄 느끼자고 속삭이는 자리이지 싶어요.


  이 책터에서 하루를 묵기로 하면서 느긋느긋한 걸음이 됩니다. 바삐 돌아가야 하지 않으니 여느 때보다 한결 차분히 여러 책을 바라봅니다. 어느 마을책집에서나 놓기 무섭게 잘 팔린다는 《여행의 이유》라는 책 옆에 《나는 초민감자입니다》(주디스 올로프/최지원 옮김, 라이팅하우스, 2019)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난밤을 〈터득골북샵〉에서 묵은 터라, 밤새 《여행의 이유》를 읽어 보았습니다. 이때에 한 가지를 느꼈어요. ‘아, 나는 김영하라는 분이 쓴 책에서 밑줄을 그으면서 생각을 살찌울 만한 대목을 하나도 못 찾네?’ 이렇게 느끼면서 이 대목을 배웠어요. ‘이름값이라는 허울을 쓴 사람이 글을 쓰면 이렇게 빈껍데기일 뿐인 글을 쓰고, 바로 이러한 빈껍데기가 오늘날 이 나라 서울(도시)을 이루는 옷이 아닌가?’ 싶어요. 아침연속극 같은 글, 한일 두 나라가 맞붙는 축구 경기 같은 글, 편의점에서 다루는 세모김밥 같은 글, 그런 글은 저랑 안 맞는다고 다시금 배웁니다.


  이와 달리 《나는 초민감자입니다》는 아주 빈틈없는 줄거리는 아닙니다만, 우리가 스스로 깨어나서 즐겁게 노래하는 길을 살몃살몃 밝힐 뿐더러, 우리가 스스로 고운 사랑이 되자면 ‘의사소통이 아닌 마음으로 보고 느끼기’를 하는 눈을 떠야 한다는 줄거리를 누립니다. 이런 줄거리를 찬찬히 읽으면서 여러 곳에 밑줄을 긋습니다.


  잡지 《귀농통문》(전국귀농운동본부) 89호(2019년 봄)는 곡성이란 고장을 다룹니다. 전남 곡성은 참 흐벅지지요. 곡성이 좋아 곡성에 깃든 사람들 목소리를 들으려고 이 잡지를 집습니다.


  카레를 다룬 책을 장만할까 어쩔까 하고 망설이다가 《식물의 책》(이소영, 책읽는수요일, 2019)을 장만하기로 합니다. 카레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이야기도 재미나지 싶지만, 풀포기를 찬찬히 바라보고 그림으로 옮긴 이야기가 조금 더 끌렸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식물의 책》을 장만해서 느긋이 시외버스에서 읽는데, 썩 재미가 없네요. 그림으로 풀포기를 담기는 하되, 풀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더군요. 다른 책이나 자료에 나온 줄거리를 그냥그냥 옮겨붙여요.


  눈앞에서 보는 풀은 책이나 자료에 나오는 풀이 아닌, 우리가 오직 하나인 숨결로 마주하는 풀입니다. 눈앞에 있는 풀을 다른 도감이나 책에 나오듯 그려야 할 까닭이 없어요. 우리가 눈앞에서 보는 대로 그리면 되어요. 우리가 보는 제비꽃이랑 도감에 나오는 제비꽃이랑 다르게 생겼다면, 우리가 본 대로 그리면 되어요.


  이와 매한가지로 풀소리를 듣고서 이야기를 엮을 적에 ‘우리가 만난 풀하고 노닐며 지은 새로운 책’이 태어납니다. 정보나 지식에 치우친 틀에 박힌 책이 아닌, 우리 나름대로 이 별에서 살림을 지으면서 하나하나 깨닫고 웃으며 노래한 책을 지어요.


  풀한테는 사람하고 닮은 입이나 귀나 눈은 없지만, 사람하고 똑같이 마음이 있어요. 이 마음으로 풀이랑 이야기를 합니다. 풀한테도 사람한테도 나무한테도 숨소리라고 하는 빛길이 있어요. 이 숨소리 빛길로 느끼고 배우며 함께하는 살림으로 거듭납니다.


  별빛을 머금는 멧골책집에서 별빛을 가슴에 담습니다. 숲빛을 사랑하는 마을책집에서 숲노래를 두 손이며 다리에 듬뿍 바릅니다. 원주라는 고장이 이 책집 하나로 환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마을책집 한 곳이 있기에 제가 사는 고장하고 다른 이웃 고장에서 흐르는 별노래를 듣고 별살림을 만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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