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의 나라 9
이치카와 하루코 지음 / YNK MEDIA(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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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우리는 모두 빛나는 돌



《보석의 나라 9》

 이치카와 하루코

 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10.25.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서 건넌다는 옛말이 있어요. 돌다리라고 하면 튼튼한 다리를 떠올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나 걷는 길이 이 돌다리나 돌길처럼 언제나 튼튼하면 좋겠다고 꿈꿀 만합니다.


  돌머리라고 하면 굳어버린 머리를 떠올려요. 스스로 새롭게 생각하려 하지 않을 적에 이런 말을 씁니다. 다리가 되어 누구나 홀가분하게 건너도록 하는 돌다리라면 듬직하다고 여기고, 머리가 돌처럼 굳어버리면 꿈도 사랑도 모두 멀어지고 만다고 여겨요.



“걱정 마. 너한테 책임을 전가하진 않을 테니까. 자신의 의지로 정한 일이야.” (10쪽)



  모든 돌은 다릅니다. 모래가 굳었다는 돌이 있고, 흙이 굳었다는 돌이 있어요. 불을 뿜는 멧꼭대기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물이 굳은 돌이 있다지요. 그런데 돌은 이렇게 다른 무엇이 굳을 적에 태어날까요? 어느 모로 보면 야무진 굳음이나 굳셈이라면, 다른 눈으로 보면 멈추거나 고이거나 갑갑한 굳음이나 버팀인 돌이로구나 싶어요.


  이런 갖은 돌 가운데 빛나는 돌이 있습니다. ‘빛돌’이에요. 이 빛돌이 아니어도 모든 돌은 서로 다른 빛이 흘러요. 조약돌이든 몽돌이든 참말로 다르면서 새삼스러운 빛결입니다. 온갖 빛결인 돌인데, 그러한 빛결 사이에서 한결 눈부신 빛돌이 있어요. 이 빛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값있다’고도 생각하고요.



“이 가루가 선배들이라는 건가요?” “맞아.” (35쪽)



  아홉걸음째에 이르며 이야기가 처음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새롭게 앞으로 뻗는 《보석의 나라 9》(이치카와 하루코/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을 읽다가 생각을 기울입니다. 다 다른 빛돌은 다 다른 굳기와 세기입니다. 다 다른 빛돌이기에 이 빛돌에 서린 넋이며 숨결이 다르기 마련이에요. 다 다른 빛돌인 터라 빛돌마다 좋아하는 길이 다르고, 바라는 삶이 달라요.


  이때에 고개를 갸웃할 수 있어요. 아니, 빛돌은 사람도 아닌데 무슨 넋이나 숨결이 있느냐고 말이지요. 어떤 분은 풀이나 나무한테는 넋이나 숨결이 없다고 여기기도 해요. 짐승을 고기로 삼을 수 없어서 풀이나 열매만 밥으로 삼는 분이 있는데, 풀하고 나무도 짐승하고 똑같이 넋이며 숨결이 있어요. 개나 고양이나 소나 돼지나 닭도 아픈 줄 느낄 뿐 아니라, 풀꽃이며 나무도 아픈 줄 느껴요.


  돌도 그렇습니다. 돌도 아픈 줄 느껴요. 돌은 딱딱할 뿐더러 목숨이 없겠거니 여기며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많으나, 돌한테 흐르는 넋을 읽고 숨결을 느끼며 마음을 만난다면, 그 어느 곳에 있는 돌도 마구 걷어차거나 밟지 않겠지요.



“나에게 행복을 준 너희에게 깨끗하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지금껏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제약을 가진 나로선 계속되는 투쟁에 너희를 희생시키면서 이상과 거리가 먼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지. 정말로 미안하구나. 이제부터는 나를 두고 떠나거라. 아름다운 보석 생명체여.” (64∼65쪽)



  돌을 돌 그대로 바라볼 줄 모르기에 나무를 나무 그대로 바라볼 줄 몰라요. 돌빛을 돌빛대로 마주할 줄 모르기에 풀빛을 풀빛대로 마주할 줄 모릅니다. 자, 사람 사이에서는 어떨까요? 사람마다 다른 마음이 흐르며 다른 사랑이 샘솟는 줄 느낀다면, 우리는 나라를 어떻게 가르더라도 군대나 전쟁무기를 키울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면서 아름다운 넋이며 숨결인 줄 읽는다면 위아래로 가른다든지 괴롭힌다든지 따돌린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는 마음이기에 짐승이며 푸나무이며 바다벗이며 돌을 마구마구 다룹니다. 사람마다 다른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사랑할 줄 알기에 이 별을 이룬 모든 빛을 고루고루 아끼면서 손을 맞잡는 길로 나아가요.



“내가 너희에게 저지른 짓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 다시 시작할 수는 없어.” “비틀렸다는 이유로 과거를 버리면, 앞으로도 저희는 성장할 수 없어요. 이제부터는 서로 다른 존재로서 각자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터. 어떻게 생각하세요?” “관용과 평등은 고대에 이상적으로 여겨졌으나 오랫동안 지속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78쪽)



  만화책 《보석의 나라》는 내내 싸움판 이야기입니다. 빛돌은 처음 태어날 적에 싸울 마음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 빛돌을 둘러싼 사람이며 문명이며 기계이며 다들 제 눈앞만 바라보고 말아요. 제 눈앞만 바라보니 제 앞가림만 따지고, 제 앞가림만 따지니, 빛돌은 처음부터 언제나 빛돌일 뿐이었지만, 더없이 솜씨좋은 싸울아비로 바뀝니다.


  빛돌은 빛돌스러운 길을 찾을까요? 사람이나 기계나 문명이 빛돌한테 새길을 찾아 줄까요? 아니면 빛돌마다 스스로 생각하고 부대끼고 알아보면서 새길을 찾을까요?



“자유다. 금강은 너희를 아끼면서도 가둬두진 않았어. 금강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에서 가장 괜찮은 것이었지. 엄격한 제약에 묶인 자신에 대한 반동심 때문이었거나, 혹은 너희가 과거 주인이었던 인간과 비슷한 존재가 되길 바란 건지도 모르겠군.” (103쪽)



  우리는 모두 빛나는 돌입니다. 우리는 모두 눈부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꿈입니다. 야무진 마음이 되어 빛나면 좋겠어요. 눈부신 사랑 그대로 활짝 웃으며 깨어나면 좋겠어요. 맑은 꿈이 되어 어깨동무하는 하루를 지으면 좋겠어요.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리는 기술력이 있었으면 우리의 문제도 이미 해결했겠지.” (119쪽)



  남보다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남이 누리는 살림을 빼앗거나 가로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흐르는 빛을 알면 되어요. 우리한테서 샘솟는 빛을 둘레에 넉넉히 흩뿌리면 되어요.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 한 톨이 첫걸음이 되어 앞으로 새롭게 깨어날 숲을 그립니다. 우리 스스로 빛돌이면서 씨앗이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빛나면서 이야기꽃을 이룹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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