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파운드의 복음 4 - 완결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김명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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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무엇 때문에 그 길을 가나요



《1파운드의 복음 4》

 타카하시 루미코

 김명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6.30.



  학교나 도서관에 이야기꽃을 펴러 가면 으레 물어보는 말 가운데 ‘읽을 만한 책을 골라 주셔요’입니다. 저는 이때에 곧잘 만화책을 꼽습니다. 그러나 ‘어느 작품’을 꼽는 일은 드물어요. 테즈카 오사무, 타카하시 루미코, 오자와 마리, 오제 아키라, 이런 만화님 책이라면 모조리 장만해 두시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요새는 한 분이 늘어 오시기리 렌스케 님 만화책도 나란히 들어요.



“얘들아, 노력하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면 안 돼. 저 도시락집 점원은 일하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 사람,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쓸데없이 노력한다는 느낌이랄까.” “결코 그렇지 않아.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 그건 남이 정할 게 아니란다.” (60∼61쪽)



  흔히들 테즈카 오사무 님을 놓고서 ‘만화 하느님(만화의 신)’이라고 합니다. 이녁이 살던 무렵부터 이렇게들 가리켰어요. 예나 이제나 이녁처럼 만화를 그린 사람은 여태 아무도 없습니다. 한꺼번에 열두어 가지 다 다른 만화를 잇달아 그리며 주간잡지에 월간잡지에 보내고, 만화영화까지 그렸거든요. 테즈카 오사무 님이 빚는 만화를 거드는 일꾼은 틈틈이 쉬거나 잠들기도 하지만, 테즈카 오사무 님이 잠드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지요.


  테즈카 오사무 님이 ‘이 땅을 떠난 만화 하느님’이라면, 타카하시 루미코 님은 ‘이 땅에 살아 기운차게 만화를 그리는 하느님’이라고 느낍니다. 제가 느끼기로 그렇습니다. 이분이 짧게 끝맺으며 그린 만화를 놓고서 일본에서는 “루미코 극장”이란 이름으로 만화영화에 연속극에 영화까지 나오지요.



“하타나카 씨, 제가 늦었죠.” “수, 수녀님. 오셨어요? 어째서.” “그야, 오라고 하셨으니까.” “이제 못 만나는 줄 알았는데.” (53쪽)



  《란마 1/2》이나 《이누야샤》나 《경계의 린네》는 더없이 엄청나면서 훌륭한 만화라고 느낍니다. 어쩜 그렇게 생각힘을 끝없이 길어올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단한 얼개에 재미에 눈물웃음에 이야기꽃을 지피는가 싶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만화를 사랑하기에 온마음을 만화에 바쳐서 하루를 살아내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전 당신과 정반대예요. 전 당신과의 시합에서, 복싱을 계속하기 위해 싸울 겁니다.” (84쪽)



  《1파운드의 복음 4》을 반가이 읽었습니다. 1980년대에 처음 나온 이 만화책은 한국에 해적판이 살짝 나왔다가 2019년에 이르러 새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줄거리를 단출히 들자면, 미련퉁이 사내하고 상냥한 가시내가 어우러지는데요, 미련퉁이 사내는 권투선수이고, 상냥한 가시내는 수녀입니다. 미련퉁이 사내는 고등학교를 집어치우고 일찌감치 권투선수가 되었고, 상냥한 가시내는 앳된 나이에 일찌감치 수녀원에 들어갔습니다.



“돈이 아깝지도 않아?” “아깝지 않아요. 그걸로 수녀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난 그것만으로 기뻐요.” (149쪽)



  만날 길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만납니다. 아마 하느님 뜻 아닐까요? 어울릴 길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자꾸 어울립니다. 이는 무슨 뜻일까요? 아마 꿈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사랑이 아닐까요?


  생각해 봐요. 초·중·고등학교를 착착 다니며 졸업장을 따면, 또 대학교까지 척척 다니며 졸업장을 더 모으면, 그리고 이런저런 자격증을 차곡차곡 건사하면, 돈을 버는 일자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만합니다. 이와 달리 오직 몸뚱이 하나만 믿고서 어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하나도 안 모은다면? 그리고 오로지 마음 하나만 바라보면서 졸업장이건 자격증이건 ‘사회에서 말하는 이름이며 돈이며 힘’을 모조리 내려놓는다면?


  배움끈 없는 젊은 권투선수 사내입니다. 아무런 이름도 돈도 힘도 없이 앳된 나이에 홀로 수녀원에 깃들어 모든 끈을 잊고 싶은 수녀원 가시내입니다.



“수녀님이 행복하게 웃어만 준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하타나카 씨.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당신은, 뭘 위해 복싱을 하는 거죠?” “저를 위해서라느니, 돈을 위해서라느니,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자신을 위해 싸워야죠!” (169∼170쪽)



  미련퉁이 권투선수라고 했어요. 이이는 그야말로 미련퉁이라서 권투선수인데 밥에 목을 매답니다. 밥먹기를 그치지 못해서 늘 몸무게가 불어요.


  상냥한 수녀라고 했어요. 이이는 그야말로 상냥해서 마음에 걸리는 일을 지나치지 못합니다. 길을 잃은 미련퉁이를 본 나머지 이이를 지나치지 못합니다. 상냥하게 말을 걸고, 상냥하게 도우며, 상냥하게 북돋웁니다.



“너, 역시 돈이냐? 그렇게 80만 엔이 아까워?” “돈이 아냐! 사랑이다!” (215∼216쪽)



  앞길이 아득하다고 여기는 푸름이를 만나면 선뜻 이 만화책 《1파운드의 복음》을 읽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중·고등학교라는 길에서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모르겠고, 대학입시란 짐이 벅차다고 하는 푸름이한테도 이 만화책을 읽어 보라고 말합니다.


  미련퉁이하고 상냥님 사이에 흐르는 숨결을 읽어 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미련퉁이입니다만 바탕이 상냥하기에 미련할 수 있어요. 상냥한 사람은 사회나 정치나 문화나 종교나 교육이나 예술로 보자면 ‘제 뱃속을 채우려 하지 않아 미련퉁이’처럼 보일 만합니다.


  이제 알 만할까요? 미련한 사람은 상냥합니다. 상냥한 사람은 미련합니다. 그래서 미련하고 상냥하기에 사랑을 스스로 심어서 키워요. 상냥하면서 미련하기에 사랑을 손수 돌보며 북돋웁니다.


  대수롭잖은 만화책으로 여기면서 《1파운드의 복음》을 읽지 않는다면 이 얼거리를 못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구태여 이 만화책을 읽지 않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마음눈을 켜서 바라본다면 이 얼거리쯤이야 너끈히 알아내겠지요.


  그런데 있지요, 오늘날 이 삶터는 다들 너무 바빠요. 너무 옥죄어요. 너무 갑갑해요. 그저 쳇바퀴에 굴레요 수렁판입니다.


  만화는 머리를 식힐 뜻으로 읽지 않습니다만, 머리를 식히면서 보기에 좋기도 해요. 자,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으니 만화책 하나를 한 손에 쥐어 볼까요?



“관장님, 또?” “네, 또입니다. 지금부터 이래서야, 방어전은 무리라고.” “알겠어요. 같이 찾아보죠.” “이 시기에는 식수대보다 식당이 중요합니다.” ‘안젤라 자매님, 가시밭길을 선택한 건가?’ (222쪽)



  우리가 가는 길에는 어떤 뜻이 있는지 스스로 물으며 스스로 빛을 찾아냅니다. 우리가 서는 길에는 어떤 꿈이 있는지 스스로 되물으며 스스로 사랑을 알아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스스로 물으며 스스로 찾고, 스스로 되묻는 사이에 스스로 알아요.


  밥 한 그릇에 헤매는 미련퉁이입니다만, 상냥한 웃음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깨닫습니다. 상냥하면서 미련한 아가씨입니다만, 미련한 바탕에 감도는 포근한 숨결을 느끼면서 다시 손을 내밀고 기꺼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아무래도 이 길은 서로서로 가시밭길일 수 있어요. 그런데 가시밭길이 꽃길이에요. 잘 봐요. 찔레꽃이며 장미꽃이며 그 엄청난 향긋꽃밭은 온통 가시투성이입니다. 한봄에 무르익는 딸기는 가시넝쿨입니다.


  언뜻 보자면 가시밭길이나, 깊이 보자면 꽃길이요 달콤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설 길이라면 바로 이러한 길이 아름답겠지요. 서로 얼크러지면서 빛나는 이 길에 선다면 더없이 기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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