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마리코 10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만화책

옛날을 오늘로 바꾸는 책



《80세 마리코 10》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12.31.



“부활한 뒤에 깨달았어. 독자는 작가의 가장 큰 힘의 근원이야! 내가 독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독자가 그걸 받아들여 준다면, 난 백만 마력이라고!” (65쪽)


“옛날 책이 재미있니?” “옛날 아니야. 책을 읽으면 거기에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지금이야. 아빠 책장은 모르는 지금이 가득 있어.” “아빠가 갔던 곳에 너도 가는 거구나.” ‘책은 속도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장소에서 천천히 시간을 뛰어넘는 거야.’ (74∼75쪽)


“있습니다. 미래는 저도 신도 선생님도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있다’고 믿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103쪽)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비슷한 처지겠지만 친해지려는 마음도 안 든다. 자신과 비슷한 영감을 보고 질색할 뿐이야. 책을 찾아볼 마음도 안 들어. 새로운 지식 따윈 내게 필요없으니까. 모든 게 다 귀찮다.’ (133쪽)


“여자들은 상대가 부자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하던데, 코다 씨도 신데렐라가 되고 싶진 않나요?” “돈이요? 음, 하지만 전 제가 벌어 부자가 되는 게 더 좋아요.” (163쪽)



  만화책을 같잖게 보는 눈길이 꽤 있습니다. 왜 만화책을 같잖게 볼까요? 만화책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지 않거나, 아름만화를 만난 일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만화책이라면 그저 안 좋다고만 여기면서 스스로 생각을 닫고 마음을 잠근 탓은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만화를 모르기에 같잖게 보는구나 싶어요.


  적잖은 사람들은 이웃을 옷차림이나 주머니나 생김새로 따지곤 합니다. 허름한 옷차림이면 마치 사람도 허름하다고 여기고, 자동차가 허름하면 그이도 허름하다고 여기며, 자동차가 없이 걸어다니면 어떻게 요즈음에 자동차도 못 굴리는 허름한 살림이냐 하고 여기기도 해요. 그런데 주머니가 돈으로 가득해야 안 허름할까요? 잘생기거나 예쁜 몸매이면 안 허름한 사람일까요? 겉훑기로 따지는 눈길이란 얼마나 아름답거나 알맞을까요?


  만화책 《80세 마리코 10》(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읽으며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책은 틀림없이 만화책이지만 소설 같구나 싶고, 소설을 넘어 고스란히 우리 삶인데다가, 인문책 백 자락이나 오백 자락을 한몫에 담았구나 싶은 이야기꾸러미이네 싶어요.


  열걸음째에 이른 《80세 마리코》에서는 여든 살이란 나이가 되도록 미처 제대로 헤아리지 않던, 또는 미처 몰랐던, 또는 새롭게 배우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마리코 할머니는 어느 날 ‘마리코 할머니가 예전에 쓴 소설책을 읽는 아이’를 만나요. 아이는 마리코 할머니 예전 소설이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여기에 있는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때로 나아가’고, ‘언제나 새롭게 생각을 키우는 꿈나라로 가는 징검다리’로 느낀다고 수수하게 말합니다.


  여든 살 소설쟁이 할머니는 가슴이 확 트이지요. 문득문득 마음으로 느꼈을 수 있지만 정작 말로 또렷하게 그려 본 적이 없던 ‘책이 맡은 일’을 깨달아요. ‘모든 책에는 아직 모르는 오늘이 가득하다’고, ‘모든 책은 앞으로 새로 나아갈 그야말로 새롭고 눈부신 오늘을 만날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된다’고 하는, 책읽기가 우리 삶에서 어떤 몫을 하는가를 가만히 되짚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외려 어리석은 몸이 되기도 하고, 한결 슬기로운 눈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기에 늙은 몸뿐 아니라 늙은 마음이 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반짝반짝 아름다이 빛나는 손길이 되어 이웃한테 어진 말씀을 조곤조곤 들려주기도 합니다. 자, 생각해 보기로 해요. 어느 길로 갈 적에 즐겁나요? 어느 갈래에 깃들면서 스스로 빛나면 신날까요? 어느 마음이 되고 어떤 몸이 되고 싶은가요?


  여든 살이기에 여든이란 고갯마루에서 새롭게 배우는 길로 가겠습니까? 여든이니 이제 죽을 생각을 해야겠구나 하고 모든 배움길을 스스로 막고서 폭삭 주저앉아 버리겠습니까?


  나이가 어리기에 모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기에 알지 않습니다. 알려고 마음을 먹기에 적은 나이에도 잘 알고, 알려는 마음을 틔우지 않으니 늙은 나이에 도무지 모르곤 합니다.


  솜씨꾼이라서 잘 배우지 않아요. 눈을 뜨고 마음을 열기에 잘 배워요. 재주가 없어서 못 하지 않아요. 눈을 안 뜨고 마음을 안 여니 못 해낼 뿐입니다.


  옛날을 오늘로 여는 책을 폅니다. 오늘 옛날로 나아갔다가 새날로 날아가 봅니다. 옛날을 살던 이웃을 책에서 만납니다. 오늘을 살며 새날을 꿈꾸는 동무를 책뿐 아니라 숲에서, 구름더미에서, 풀밭에서, 나뭇잎 끄트머리에서 만납니다. 싱그러이 웃으며 스스로 꽃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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