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어린이문학 비평을 어떻게 쓸까 :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가 읽어서 길잡이가 되도록 할 적에 ‘어린이문학 비평’이라 할 수 있다. 이 비평이란 글을 읽고서 ‘비평하는 눈’을 따라가라고 알린다면 참다운 비평이 될 수 없다. 비평이란 이름에 걸맞는 글이라면 ‘어느 책이나 작품이나 글이나 그림을 놓고 비평하는 눈’은 모름지기 누구나 스스로 키우고 다르게 가꾸기 마련이라는 빛을 밝힌다. ‘무엇을 어떻게 읽으라’고 가르치거나 이끌지 말 노릇이다. ‘무엇을 어떻게 읽을까’ 하는 눈·마음·생각·사랑·살림·숲·우주라는 테두리에서 우리가 어느 책이나 작품이나 글이나 그림을 스스로 풀어내어서, 우리 오늘이 새롭게 나아가도록 짚을 적에 비로소 비평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숱한 어린이문학 비평이나 어른문학 비평은 ‘비평이란 이름만 갖다 붙인 거짓 비평’인 셈이다. 다들 소개글이나 보도자료나 어려운 말잔치나 친목도모나 책장사에 파묻히지 않나? 그리고 비평은 비평일 뿐, 해설도 설명도 아니다. 줄거리를 하나하나 따지거나 들추는 일이란 해설이나 설명이다. 비평은 줄거리를 다루거나 짚거나 따지 않는다. 비평은 오로지 ‘보는 눈을 키워서 살아가는 몸짓을 스스로 새롭게 지어서 빛나는 하루가 되도록 이끄는 이야기’로 쓸 뿐이다. 마땅하지만, 비평가란 실천가이다. 비평가는 교수나 교사가 아니다. 비평가는 스스로 삶을 지어서 웃고 노래하고 꿈꾸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비평은 전문가 노릇이나 아는척하고도 동떨어진다. 비평은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음을 주고받는 숨결이다. 비평을 하고 싶다면, 사랑하고 살아가고 생각하면 된다. 비평을 읽어서 무언가 배우고 싶다면, 비평가처럼 사랑하고 살아가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면서 ‘저 비평가 눈은 저렇구나’ 하고 깨달아 ‘내 눈은 어떠하지? 내 삶은 어떠하지? 내 길은 어떠하지?’ 하고 차근차근 짚는다면, 우리도 누구나 새로운 비평가로 거듭나면서 스스로 삶을 짓는 슬기로운 숲빛 눈썰미로 활짝 웃고 노래할 수 있다. 2004.11.3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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