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남이 지은 것 : 나는 책을 그냥 사는 일이 없다. 모름지기 책 하나를 사자면 그 책을 읽어 보아야 살 만한지 살 만하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무슨 뜻일까? 책을 빌릴 적에도 이와 매한가지이다. 빌려서 읽을 만한지 아닌가를 알려면 먼저 그 책을 읽어 보아야 한다. 아직 안 읽은 책이라면 살 수도 빌릴 수도 없다. 읽어 보지 않은 채 어떻게 사거나 빌리는가? 어쩌면 뜬금없는 소리로 여길 만한 말일 테지만, 살짝 바꾸어서 얘기해 보자. 그대는 무엇을 밥으로 삼아서 먹는가? 멋모르고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는가? 그대는 어떤 바람을 마시고, 어떤 햇볕을 쬐며, 어떤 풀이나 나무 곁에서 기운을 얻는가? 자동차 방귀나 공장 매연 같은, 아무 바람이나 그냥 마실 수 있는가? 햇볕 아닌 엘이디나 형광등을 그냥 쬐어도 되는가? 풀이나 나무 아닌 플라스틱이나 화학세제를 손에 댈 수 있는가? 그대는 누구하고 사귀고, 누구를 만나는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만 만나서,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하고 그대 모든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이야기를 하는가? 잘 생각해 보라. 우리는 무엇을 하든 ‘우리가 할 그 모든 일이나 놀이를 먼저 맛보거나 살피거나 어림하거나 헤아리거나 생각하거나 맞아들이기를 한 다음’에 그 일이나 놀이를 한다. ‘아직 안 읽은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는가? 이렇게 한다면 아마 아무것도 못 배우리라. 사든 빌리든 ‘미리읽기’나 ‘먼저읽기’를 해야 한다. 가장 좋기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서, 적어도 책집 한켠에 선 채로 다 읽고서 사야겠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다 읽은 책’을 ‘제대로 다시 읽고, 즐겁게 새로 읽으며, 사랑으로 거듭 읽으려고 사서 읽는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안 읽은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지 않는다. ‘한 벌 읽고서 뭔가 찡하게 울리는 책이기에 다시 읽고 새로 읽다가 사랑으로 거듭거듭 읽으려고 사거나 빌려서 읽는다’고 해야 옳다. 아직 누리책집이 없던 지난날에는 꽤 많은 이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따라 책을 그냥 사서 읽기 일쑤였다. 베스트셀러이든 아니든 스스로 책집에 서서 살핀 다음 읽어야 할 텐데, ‘베스트셀러란 이름에 갇혀’서 스스로 안 살피고서 사는 분이 너무 많았다. 누리책집이 퍼진 뒤로는 ‘엠디 추천’에 따라 책을 그냥 사서 읽는 분이 무척 많다. 누리책집에서 미리읽기를 해보고서 사는 분도 꽤 많을 테지만, 미리읽기를 안 하고 사는 분도 무척 많지 않을까? 여기에서 몇 가지를 알아야 한다. 어느 책 하나를 사서 제대로 읽고 싶다면 ‘그 어느 책 하나’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책을 나란히 놓고서 찬찬히 읽고서 ‘어느 책을 마지막으로 살는지를 스스로 생각하여 가리고 추리고 솎고 골라’야 한다. ‘그 책을 사기로 했으니 그 책만 산다’는 마음도 나쁘지 않으나, 스스로 날개돋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둘레 다른 책을 고루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무슨 말일까? 책 하나를 사자면, 적어도 백 자락에 이르는 다른 책을 죽 살피고서 ‘그래, 아무래도 이 책을 사야 할 만하군’ 하고 마음이 서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책 백 자락을 책집에 서서 읽고서야 비로소 책 한 자락을 살 만하다는 뜻이고, 이러다가 두어 자락이나 서너 자락 책을 더 손에 쥐어서 살 수 있겠지. 책 하나 사는 일이란 이렇다. 그렇다면 생각하자. 책 한 자락을 읽고서 쓰는 글은 어떠해야 할까? 책 한 자락을 살 적에 적어도 한두 벌은 그 책을 죽 읽고서 산다면, 이렇게 읽고서 산 책을 스스로 틈을 내어 깊고 넓게 읽은 뒤에 책느낌글을 써야 한다면, 책 하나를 놓고서 느낌글을 쓸 적에 그 책을 적어도 몇 벌을 되읽어야 한다는 뜻일까? 오늘날 온누리에 나도는 숱한 책느낌글은 그 책을 몇 벌이나 읽고서 쓴 셈일까? 적어도 통으로 두어 벌이나 대여섯 벌은 읽고서 쓴 책느낌글은 몇 꼭지나 될까? 영화느낌글도 이와 같다. 영화라면 모름지기 백 벌은 보고서야 영화느낌글을 써야 한다고 여긴다. 나는 이렇게 한다. 그런데 백 벌 아닌 이백 벌을 본 다음에도 따로 짬을 내지 못해서 영화느낌글을 못 쓰기도 한다. 서로서로 마음으로 나눌 만한 영화느낌글이라면, 이런 글은 적어도 같은 영화를 백 벌은 보고 나서야 써야 할 노릇이라고 본다. 거듭 말하지만, 책느낌글도, 그 책을 백 벌쯤은 되읽을 만하다고 여기는 글을 놓고서 별점을 100점 꾹꾹 눌러서 줄 만한 책을 이야기한다면, 어떤 책이어도 아름답고 어떤 글이어도 사랑스러우리라. 남이 지은 것을 놓고서 삭여서 우리 것으로 삼자면 백 벌이란 걸음을 걸을 노릇이다. 스스로 지은 것을 놓고서는?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짓는다면 아마 적어도 즈믄 걸음을 즈믄 벌쯤 지난 셈이겠지. 2000.12.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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