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르일로프 우화집 대산세계문학총서 46
이반 끄르일로프 지음, 정막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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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01 : 파리는 지구를 말끔히 치우는데, 너는?


《끄르일로프 우화집》

 이반 끄르일로프

 정막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6.2.7.



아무래도 폭풍 때문에 더욱 위험해지는 것은 바로 네가 아닐까! 물론 오늘날까지 자연의 악천후가 너를 굴복시키지도 못했고, 너의 고개를 숙이게 하지도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아직은 알 수 없잖아! (18쪽)


다른 신부들에게는 보물이 될 만한 신랑감들도 그녀가 보기에는 의젓한 신랑감이 아니라, 풋내 나는 젊은이에 불과했습니다! (30쪽)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어떤 유용한 물건이라도, 그 가치를 모르고 자신의 무식을 물건 탓으로만 돌립니다. 그 무식한 사람이 더 높은 직위에 있을수록 그는 그 물건을 못 쓰게 만들어버립니다. (67쪽)


질투 어린 사람들은 무엇을 보든지 간에 끊임없이 악담을 늘어놓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127쪽)



  옛 그리스 무렵에 숲살림 이야기를 사람살림 이야기에 빗대어 들려준 이솝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냥 사람살림 이야기를 해도 될 터이지만, 사람들 이름이나 집이나 마을을 고스란히 밝히면 싫어하거나 꺼리거나 미워할 수 있습니다. 슬쩍 숲살림으로 돌려서 이 짐승이나 저 새나 그 나무나 요 벌레하고 얽힌 이야기로 엮어서 들려주곤 해요.


  넌지시 알아채도록, 부드러이 깨닫도록, 조용조용 돌아보도록 이끄는 ‘숲살림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이렇게 뭇숨결에 빗대어 사람살림 이야기를 그린 이들이 꽤 많습니다. 가만 보면 이 나라 옛이야기도 하나같이 ‘숲살림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올챙이 이야기도, 풀개구리 이야기도, 참나무하고 대나무 이야기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를 둘러싼 숲에서 어떤 하루가 흐르는가를 찬찬히 지켜보고서 이를 사람살림에 견주어서 시나브로 익히도록 이끌었지 싶습니다.


  1769년에 태어나 1844년에 숨을 거든 러시아 분이 쓴 《끄르일로프 우화집》(이반 끄르일로프/정막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6)은 1800년대에 러시아가 어떤 터전이었나를 돌아보도록 하면서 이야기를 엮습니다. 그무렵 러시아는 썩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럽지 않았다더군요. 다만 수수한 마을이나 흙지기나 살림꾼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라지기에 벼슬아치 노릇을 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썩거나 비뚤어지거나 못났다지요.


  끄르일로프란 분이 쓴 숲살림 이야기는 모두 러시아 벼슬아치하고 나라지기를 나무라거나 꾸짖을 뜻으로 썼다고 합니다. 그때에 러시아 벼슬아치나 나라지기는 이 이야기를 얼마나 알아차렸을까요. 대놓고 따지지 않은 이야기라서, 슬쩍 눙치듯이 돌려서 밝힌 이야기라서, 숲에서 살아가는 짐승이며 푸나무이며 새를 빗댄 이야기라서 ‘내 이야기가 아니군’ 하고 지나가지는 않았을까요.


  이른바 ‘우화’란 이름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름을 까놓고 따지지 않을 테니 찬찬히 깨닫기를 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엮어서 들려줄 적에는 한 가지를 잘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이솝이란 분이 남긴 이야기를 읽으면서 숲짐승이나 새나 벌레나 푸나무가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솝이란 분은 숲살림을 곰곰이 보고서 알맞게 엮었어요. 누구를 미워하거나 나무라려는 뜻이 아니라, 이야기를 바탕으로 스스로 배우도록 이끌었구나 싶어요.


  이와 달리 끄르일로프라는 분은 엉터리 러시아 정치와 사회와 문화를 나무랄 뜻이 짙다 보니까, 이녁 이야기에 나오는 짐승이며 새이며 푸나무이며 얼결에 ‘나쁜 기운이 있는 숨결’인 듯 나타나곤 합니다. 참나무가 나쁜 나무가 아닐 터인데, 곰이 나쁜 짐승이 아닐 터인데, 혼인을 안 하고 나이를 먹는 분이 나쁜 뜻이 아닐 터인데, 어쩐지 ‘빗대는 이야기’가 좋고 나쁨을 싹 갈라서 매섭게 따지는 목소리가 되고 맙니다.


  무엇에 빗대어 이야기를 엮으려 한다면, 나무라거나 따지고 싶은 속내가 있더라도, 빗대어 말하려는 이웃 숨결을 조금 더 따사로이 들여다보면서 참하게 담아내야지 싶습니다. 이렇게 하기 어렵다면 그냥 정치비평 사회비판 문화평론을 하면 됩니다. 이를테면, 파리가 없는 지구를 떠올려 봐요. 매우 끔찍하겠지요. 파리는 사람한테 늘 놀림이나 손가락질을 받지만, 파리가 있기에 지구는 깨끗한 별이 되거든요. 엄청나게 말끔히 치워 주는 일꾼이 바로 파리이니까요. 그래서 “넌 파리만큼도 안 되는구나!”가 아닌 “파리는 지구를 말끔히 치우는데, 넌 사람 주제에 지구를 더럽히네?” 하고 따질 만하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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