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풀이하기 어려운 낱말이 있나요?



[물어봅니다]

  국어사전을 쓰시면서 기억에 남거나, 뭔가 뜻을 풀이하기 어려운 낱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이야기합니다]

  ㅅ(시옷) 이야기를 해볼까 싶네요. 저는 처음에 ㅅ이라고 하는 닿소리로 여는 낱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시골에서 살고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물려줄 수 있어야 어버이다운가를 생각하다 보니까 여러모로 ㅅ하고 얽힌 말이 자꾸 들어오더군요. ‘시골’에서도 시옷이 들어가는데요, 시골이 어떤 곳인가를 생각해 보니까, 다른 사전에 나오는 시골 뜻풀이가 아닌 나 스스로 시골이라는 낱말에 새롭게 뜻풀이를 붙이자고 생각해 보니 두 가지가 있어요. 시골이라고 한다면 첫째는 숲이 있어야 돼요. 숲이 없으면 시골이라고 할 수 없어요. 둘째로는 골, 골짜기, 멧골, 멧갓, 봉우리, 그러니까 산이 있어야 하고요. 숲하고 갓(메·산)이 어우러진 곳이 시골이라 할 만하지 싶더군요. 숲이 있으면 저절로 샘물이 솟아서 냇물이 흐를 테니, 시골이라는 곳은 누구나 스스로 땅을 일구어 밥옷집을 얻거나 살림을 가꿀 수 있는 터전인 셈이지요. 이러면서 온갖 짐승하고 푸나무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고요. 예전에는 생각도 못한 뜻풀이요 얼거리였습니다만, 삶터를 바꾸고 살림을 새로 가꾸면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고 마음으로 느낀 뜻풀이예요.


  서울 같은 도시에 너른 공원이나 높은 산이 함께 있어도 이곳은 시골이 되지 못해요. 집하고 길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저마다 제 땅을 못 누리거든요. 마당이든 텃밭이든 말이지요. 그런데 여느 사전을 살피면 ‘시골’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풀이하고 그쳐요. 오늘날 우리는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잖아요? 시골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시골에 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작 시골이 어떠한 곳인가를 사전 뜻풀이부터 제대로 못 밝히니, 사람들은 시골을 더더구나 알 수 없겠구나 싶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돈이 많든 적든 학교를 오래 다녔든 아니든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나 제 땅에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지을 수 있으면서 맑은 물하고 바람을 누리는 곳이 ‘시골’일 텐데,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라는 뜻을 사전에서 못 밝히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저는 사전 뜻풀이가 어렵다고 여긴 적은 없지만, 바로 이 대목을 늘 느껴요. 저처럼 사전을 새로 쓰고 뜻풀이하고 보기글까지 새로 붙이는 몫을 맡은 사람이 낱말 하나를 놓고서 제대로 짚거나 다루거나 풀이하거나 이야기를 붙이지 못한다면, 또 낱말 하나하고 얽힌 보기글을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고 뜻있게 달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어느 낱말 하나만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그 낱말하고 얽힌 삶이며 생각이며 꿈이며 사랑이며 이야기를 모두 모를 수 있어요. 어느 모로 보면 무섭거나 무시무시한 일이 될 만해요. 고작 사전에서 낱말 하나를 엉성하게 다루고 그치는 일이 아니더군요. 바로 그 엉성하게 다룬 낱말풀이를 읽는 분들이 생각이 고이거나 갇혀 버리기 쉬워요.


[표준국어대사전]

어린이문학 : 1. [문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들의 교육과 정서를 위하여 창작한 문학. 동요, 동시, 동화, 아동극 따위이다 2. [문학] 어린이가 지은 문학 작품

그림책 : 1. 그림을 모아 놓은 책 2. 어린이를 위하여 주로 그림으로 꾸민 책 3. 그림본으로 쓰는 책 4. ‘화투’를 속되게 이르는 말

동시 : 1. [문학]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 2. [문학] 어린이가 지은 시


  푸름이 여러분은 동시나 동화를 요즈음 읽는가요? 이제는 안 읽고 소설과 어른시만 읽나요? 어때요? 동시나 동화 같은 어린이문학은, 또 그림책은 푸름이 나이에는 멀리하거나 안 읽을 이야기나 책일까요? 어린이만 읽어야 하는 어린이문학이거나 그림책일까요?


  사전 뜻풀이를 보면 어린이문학이든 그림책이든 동시이든 다 ‘어린이만 보는’ 틀로 담습니다. 자, 이 뜻풀이를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만, 무척 많은 분들이 이 뜻풀이가 알맞지 않다고 여겨요.


  그런데 무척 많은 분들이 이 뜻풀이가 알맞지 않다고 여겨도 정작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이런 뜻풀이를 바로잡거나 손질하거나 고치려고 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적잖은 어른들이 어린이문학을 안 읽거나 그림책을 안 들여다보는 탓일 수 있어요. 푸름이 여러분 같은 딸아들을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 자리에 서서 어린이문학이나 그림책을 가까이한 어른이라면 흔히 이렇게 말한답니다. “와!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난 책이 어린이문학이었네? 어쩜 이렇게 눈물겹고 웃음나며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다 있을까? 그야말로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화이고 그림책이네!” 이리하여 ‘동화읽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이 있답니다. 동화나 동시나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누리고 즐기고 나누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랑을 배운다’는 마음을 주고받으려고 해요.


[숲노래 사전]

어린이문학 :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로 담아서 누구나 읽고 누리고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글. 어른이 쓰기도 하고 어린이가 쓰기도 한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만 읽는 글이 아닌 어린이부터 다같이 읽고 누리며 나누는 글이다

그림책 : 1. 그림을 모으거나 엮거나 담은 책 2.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이야기를 그림을 바탕으로 엮은 책. 그림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엮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아기나 어린이도 쉽게 알아보거나 느끼도록 엮기 마련이고, 아기나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책

동시 (= 노래꽃)

: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노래. 어린이 스스로 쓰는 동시가 있고, 어른이 써서 어린이하고 함께 읽는 동시가 있다. 동시는 누가 쓰든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인데, 시란 우리가 나누는 말을 마치 노래처럼 누리는 글이기에, 따로 ‘노래꽃’이라 해볼 수 있다. 동시도 시도 ‘노래꽃’이라 할 만하다


  제가 쓰는 사전은 이렇게 ‘어린이문학·그림책·동시’ 같은 낱말을 아주 새롭게, 또 오늘날 흐름이나 결에 맞추어서 풀이하려고 합니다. 푸름이 여러분을 만나는 이 자리뿐 아니라 여느 어른을 마주하는 자리에서도 이런 새 뜻풀이를 이야기하지요.


  거듭 말씀을 하겠습니다만, 저는 뜻풀이를 붙이면서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다만 여느 사전이 여태까지 무척 엉성하거나 한켠으로 기울어진 뜻풀이를 참으로 많이 했다고 느껴요. 저로서는 이런 엉성한 여느 사전 뜻풀이나 한켠으로 기울어진 뜻풀이를 가다듬거나 확 뜯어고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즐겁고 새로운 빛이 될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즐겁게 붙이자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렇게도 이야기할 만해요. 제가 어느 낱말 하나에 뜻을 제대로 붙일 수 있다면, 이리하여 제대로 붙인 뜻풀이를 찬찬히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우리는 어느 낱말 하나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삶과 살림과 사람과 사랑을 모두 새롭게 바라보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는 힘을 찾아내거나 키울 수 있답니다.


  그나저나 푸름이 여러분이 궁금해 하는 대목은 이런 얘기가 아닐 수 있을 텐데요, 제가 말풀이를 달기 어려웠던 낱말을 굳이 꼽아 보라면 ‘생각’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다’라든지 ‘있다’처럼, 아주 쉽고 흔한 낱말이에요. ‘보다’나 ‘주다’나 ‘가다’ 같은 낱말도 섣불리 뜻풀이를 마무리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저로서는 어렵지는 않았고 좀 품이 들었을 뿐이에요. 이를테면 ‘생각’이나 ‘사랑’ 같은 낱말은 뜻풀이를 붙여서 마무리하기까지 적어도 여섯 달이 걸렸어요. 여섯 달을 써서 낱말 하나를 풀이했답니다. ‘보다’나 ‘주다’는 석 달쯤 걸렸고요.


  이렇게 말해도 되겠는데요, 우리가 ‘흔히 어렵다고 여기는 낱말’은 오히려 뜻풀이가 쉽습니다. 우리가 ‘으레 쉽다고 여겨서 사전을 거의 안 찾아보는 낱말’이 도리어 뜻풀이가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이 대목이 참 재미있어요. 생각해 봐요. 푸름이 여러분이 한국말사전에서 ‘있다·보다·주다’나 ‘생각’ 같은 낱말을 찾아보나요? ‘시골’ 같은 낱말도 그렇고요. 그런데 오히려 이런 낱말, 사람들이 사전에서 잘 안 찾아볼 듯한 낱말이야말로 뜻풀이를 제대로 붙이기까지 훨씬 긴 나날에 오랜 품을 들여야 한답니다. 전문용어 같은 낱말은 뜻풀이가 대단히 쉬워요. 삶말이나 살림말은 뜻풀이에 오래오래 마음을 써야 하고요.

  ‘시골’이란 이름을 놓고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제가 시골을 풀이할 적에는, 시골은 ‘숲’하고 ‘살림’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느꼈고, 둘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있으면 안 어울리겠다고 여겼어요. 둘이 같이 있어야 되고 둘을 사람이 만지지요. 사람이 숲하고 살림 사이에서 둘을 만지는 셈이에요. 이러면서 숲하고 살림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슬기로울 수 있어야겠지요. 사람이 있되 그냥 아무 사람이나 있어야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슬기로운 사람이 있어야겠지요. 그런데 ‘슬기롭다’고 하는 이 말은 ‘똑똑하다’하고도 이어지거든요. 머리가 좋기만 해서는 슬기롭거나 똑똑하지 않아요. 머리가 좋기만 하면 ‘꾀부리는’ 길로 빠질 수 있답니다. ‘꿍꿍이’를 꾸밀 수 있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슬기롭게 살림을 살펴서 새롭게 살아가는 숲이 사랑스러워서 시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느껴요. 집이 숲이 되고, 숲이 집이 되는 터전이 시골이라고 해도 좋고요.


  저는 사람들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생각이 밝고 마음이 상냥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더 많은 지식을 머리에 쌓기보다는, 한 가지 지식이라도 즐겁고 상냥하면서 밝고 따스하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쁜 텃말을 더 많이 알지 않아도 되어요. 말 한 마디에 깃든 고운 넋을 삶으로 받아들여서 즐겁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이란 그렇거든요. 우리 생각을 말에 담는 대로 우리 하루가 달라질 수 있어요.


  우리는 ‘사람’이 되어서 살아야 할 텐데, 이 사람이란 슬기롭기만 해서는 안 되겠고 사랑이 있어야겠더라고요. 좋은 머리를 사랑으로 보듬을 줄 알아야 되겠더라고요. 머리만 좋아서는 망가지는 사람이 되고요. 이 좋은 머리를 사랑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추스를 수 있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줄 느껴서, “시골 = 숲 + 살림”인데 여기에 ‘사람’이 있고 사람마다 ‘슬기’가 더 있으며, 슬기는 다시 사람으로 이어져, 여기에는 이제 삶이 태어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삶이 태어나는 곳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새로운 생각이 자랄 수 있어요. 새로운 생각은 우리 목숨, 숨을 살리는 결이라고 해서 ‘숨결’이 되고요. 바로 이 숨결은 오늘 내가 이곳에 있는 ‘씨앗’이 되는구나 싶더군요. 이렇게 해서 저는 ㅅ으로 여는 말을 아주 좋아해요. ㅅ을 좋아해서 ㅅ 낱말을 틈틈이 다시 읽어 보기도 하는데요. 뜻풀이를 마무리했어도 ‘삶’이나 ‘사람’이나 ‘생각’이나 ‘슬기’ 같은 낱말에 붙인 풀이를 꾸준히 보태거나 새로 이어 보려고 하기도 합니다.


  뜻풀이 붙이기란 한 벌로 그치지 않거든요. 어느 낱말 하나를 어느 때에 새롭게 쓰기도 하고요. 새로운 쓰임새가 나타나면 이 새로운 쓰임새를 뜻풀이에 더 담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이 대목을 어렵게 여기면 사전짓기는 끝내 할 수 없는 일이 되지만, 늘 새롭게 쓰임새가 늘어나는 말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말풀이는 끝날 수 없어서 한결 즐겁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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