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살아온 자취가 고운 책마을 (2019.6.8.)
― 인천 배다리 〈모갈1호〉
인천 동구 금곡로 3
https://www.instagram.com/mogul1ho
인천 배다리에는 헌책방거리가 있습니다. 2007년까지는 이 이름이 어울렸습니다. 길거리 왼켠 오른켠으로 헌책집이 줄지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바로 이해 2007년부터 인천 배다리는 달라집니다. 2006년부터 인천시에서 배다리 한켠 마을을 싹 밀면서 산업도로라고 하는 널찍한 찻길을 깔려고 할 적부터 ‘헌책방거리’에서 ‘책방골목’으로, 또 ‘책방마을’이나 ‘배다리 책방마을’로 이름이 바뀌어요.
고만고만 책집이 모이던 거리였고, 따로 책잔치가 열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배다리 한켠에서 〈아벨서점〉이 2003년 무렵 ‘아벨전시관’을 처음 열고서 사진잔치하고 전시회를 조촐하고 조용하게 열곤 했지만, 참말 조촐하고 조용하게 흘렀습니다. 시에서 막삽질을 밀어붙일 즈음 하나둘 눈을 뜨고 마음을 열면서 ‘거리’를 ‘골목’으로, 또 ‘마을’로 가꾸려는 몸짓이 조금씩 일어났어요.
‘거리’일 적에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앞섭니다. ‘골목’일 적에는 비로소 사람이 드러납니다. ‘마을’이라면 사람이며 텃밭이며 풀숲이 가만가만 어우러지는 터전이 됩니다.
바야흐로 배다리에서 책잔치이며 사진잔치이며 만국시장 같은 어울림잔치가 퍼집니다. 이러한 잔칫자리에 인천시장도 시청 문화부 일꾼을 이끌고 배다리로 마실을 해서 책을 장만합니다. 그렇지요. 행정을 맡은 꼭두지기이며 일꾼이 바로 마을책집으로 즐겁게 마실을 하면서 책 하나를 장만할 적에, 어쩌다 들르고 마치는 길이 아닌, 꾸준히 드나들며 책내음을 나눌 적에, 이 나라도 조금은 푸른 숨결이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배다리 쉼터에 ‘읽는 사진잔치’가 되도록 사진을 벌여 놓습니다. 1999년부터 2019년 사이에 바로 이곳 인천 배다리에서 찍은 사진을 여미어 ‘작은 사진책을 펼쳐서 읽는 전시마당’을 꾸몄습니다. 이렇게 하고서 〈모갈 1호〉를 찾아갑니다. 책집고양이한테 잘 지내느냐고 묻습니다. 책집고양이는 ‘난 언제나 잘 지내니, 넌 너대로 잘 지내게’ 하고 마음으로 대꾸합니다.
어제 찾아왔을 적에는 눈으로만 보고 지나간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음악》(박재현, 안목, 2017)을 집습니다. 이제 여느 새책집에서는 더 팔지 않는 사진책이지만, 〈모갈 1호〉는 안목 출판사 사진책을 곱게 갖추어 놓았습니다. 여느 새책집에 없는 사진책을 만날 수 있는 대목도 즐겁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동화책 《뉴욕에 간 귀뚜라미 체스터》(조지 셀던 톰프슨/김연수 옮김, 시공주니어, 1998)를 새로 고릅니다. 저는 진작에 읽었고 책숲에 건사한 책이라, 선물하려고 골랐습니다. 오늘 만날 이웃님한테 이 이쁜 줄거리를 담은 동화책을 마음에 품어 보시기를 바라면서 건넬 생각입니다.
뜨겁게 여름바람이 불어도 책 곁에 있으면 그리 덥지 않습니다. 여름숲에서도 그렇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도 책 품에 안기면 그리 춥지 않습니다. 겨울숲에서도 그래요. 높직한 건물이 빼곡한 도시에서는 여름이 더 덥고 겨울이 더 춥다고 느낍니다. 건물 사이 골바람 탓이기도 하고, 건물마다 에어컨에서 밖으로 빼내는 뜨거운 기운 탓이기도 합니다.
책마을은 우리 마음을 시원하면서 푸근하게 어루만지는 쉼터 아닐까요. 한 손에는 종이책을, 다른 한 손에는 바람결이나 햇살이나 빗방울을 품도록 알려주는 터전이 책마을이기도 할 테고요.
오늘날 나라 어디에나 자동차는 대단히 많고, 찻길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이제는 거꾸로 찻길을 줄이고 자동차도 줄일 때이지 싶습니다. 마을을 밀어서 산업도로를 내는 행정이 아닌, 조용조용 오래오래 흘러온 마을 자취를 다사롭게 돌볼 줄 아는 행정이 서면 좋겠어요. 살아온 자취가 흐르기에 마을이 아름답고, 슬기로운 자취가 남기에 책이 사랑스럽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