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천사 - 가람 햇살동화 2
오카다 준 지음, 손미선 옮김 / 가람문학사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책읽기

맑은책시렁 214


《꼴찌천사》

 오카다 준

 손미선 옮김

 가람문학사

 2001.11.20.



‘뭐가라니. 이렇게 바보 취급당하는 건 네가 꼴찌라서 그런 거라구.’ ‘괜찮아.’ ‘뭐가 괜찮아. 분하지 않아?’ ‘물론 기분은 좋지 않아. 하지만 그보다는 너랑 얘기하는 것이 더 좋아.’ ‘좋다고?’ 꼴찌천사는 눈을 깜박이며 하지메를 쳐다보았다. ‘하, 하지만 성적이 떨어지면 너희 아빠 엄마가 실망하실 텐데.’ (49쪽)


하지메는 심장이 오므라드는 듯했다. 반에서 성적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 하지메에게, 두 번째로 못하는 미유키가 자기 답안지를 보고 쓰라며, 0점이 아닌 점수를 받게 해 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56쪽)


꼴찌천사가 공중에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미유키, 너 정말 착하구나. 네가 계속 꼴찌를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과연 너를 불쌍하게 생각했었을까?’ 정말 그렇다며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유를 마시고 있던 선생님이 움찔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럼, 미유키,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하지메의 질문에 미유키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선생님께도 꼴찌천사에 대해서 가르쳐 드리면 되지 않을까 싶어.’ (118쪽)


“그게 좀 달라. 우리는 점수를 잘 받으려고 가르쳐 준 것이 아니거든. 함께 꼴찌를 하려고 서로 가르쳐 준 것이니까.” (124쪽)



  우리가 어깨동무를 한다면 모든 사람이 첫째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막째가 되기도 합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로 달리면 딱히 첫째나 막째로 가를 수 없으니, 다같이 첫째도 되고 막째도 되지만, 무엇보다도 숫자라는 틀을 뛰어넘어서 함께 웃고 놀면서 신나는 나날을 누릴 만합니다.


  어깨를 풀고 먼저 뛰쳐나가는 이가 있다면 이이는 첫째를 하겠지요. 맨 나중까지 뛰쳐나가지 않는 이는 막째가 될 테고요. 이때부터 서로서로 줄서기가 되고, 위랑 아래를 가르는 자리가 생깁니다.


  우리한테는 어떤 길이 아름다울까요? 굳이 줄을 세우거나 숫자를 붙이는 길이 아름다울까요? 구태여 으뜸이나 버금이나 딸림이나 막째를 가르는 이름이 즐거울까요? 위아래도 숫자도 없이 서로 얼크러지면서 새롭게 배우고 웃고 노래하는 잔치마당이나 놀이마당을 열 적에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요?


  어린이문학 《꼴찌천사》(오카다 준/손미선 옮김, 가람문학사, 2001)는 첫째나 둘째, 또 셋째나 넷째 자리에서는 볼 수 없는 앙증맞은(?) 천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름이 ‘꼴찌천사’인 만큼 오직 꼴찌인 자리에서만 만날 뿐 아니라, 말을 섞고 서로 바라보며 마음으로 속삭일 수 있어요. 서른 사람이 있을 적에 스물아홉째라 하더라도 꼴찌천사를 못 봐요. 오직 서른째일 적에만 봅니다. 다만, 스물일곱째부터 서른째까지 ‘같이 막째 점수’를 받으면 나란히 꼴찌이니, 이때에는 여러 아이가 꼴찌천사를 만나서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즐겁게 하루를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마땅한 노릇이지만, 꼴찌천사는 첫째나 둘째, 더구나 셋째나 넷째도 못 봐요. 열째나 열다섯째도 못 보지요.


  우리는 오늘 어느 자리에 있는가요? 우리는 오늘 어느 자리에 있고 싶나요? 오늘 스물하나나 스물셋 같은 자리에 있으니 열하나나 열셋 같은 자리로 ‘올라서’려고 동무나 이웃을 밀치거나 밟으려고 하지는 않나요? ‘올라서기’가 너무 끔찍한 줄 온몸으로 느끼면서 느긋하면서 차분하게 맨 뒤쪽 자리에서 조용조용 천사를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으로 웃음수다를 누릴 수 있을까요?


  이야기책 《꼴찌천사》가 다루기도 합니다만, 서른 아이가 있을 적에 서른 아이가 모두 ‘나란히 꼴찌’가 되면, 모든 아이는 꼴찌천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자, 생각해 봐요. 서른 아이가 ‘나란히 꼴찌’라면, 거꾸로 ‘나란히 첫째’가 되는 셈이에요. 뒤처지거나 뒤떨어지는 길이 아니라 어깨동무하는 길입니다. 나란히 한걸음이 되면서 서로 돕고 이끌며 돌보는 눈빛을 밝힐 수 있어요.


  생각해 봐요. 막째에 있는 이더러 첫째로 달려오라고 어떻게 부르나요? 첫째에 있는 이가 걸음을 멈추고 막째한테 다가가서 돕고 이끌며 돌보는 길이 맞지 않을까요? 아이는 어른 걸음을 좇을 수 없어요. 아이는 어른 팔심을 따를 수 없어요. 아이더러 어른처럼 몸을 써서 일하라고 시켜도 될까요? 아닙니다. 아이더러 어른이 쓰는 모든 말을 다 알아들으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어른이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수월한 길을 찾아야지요. 어른이 아이 눈높이를 살펴서 쉽고 부드러운 말을 고르고 가려서 써야지요.


  경제성장율 아닌 ‘기쁨’이나 ‘즐거움’이나 ‘웃음’이나 ‘노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길을 헤아려서 나아가야지 싶어요. 더 높은 시험점수는 이제 걷어치우고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살펴서 아름다운 마을이며 보금자리를 가꿀 노릇이지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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