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일생 - 책 파는 일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에 관하여
야마시타 겐지 지음, 김승복 옮김 / 유유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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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95


《서점의 일생》

 야마시타 겐지

 김승복 옮김

 유유

 2019.2.14.



밤새 어두운 등불 밑에서 문고를 읽었다. 독서에 집중하고 있으니 하얗고 부들부들한 털을 가진 길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나에게 왔다. 고양이는 내 발밑에 달라붙어 기분 좋은 듯 그대로 발 사이에서 잠들어 버렸다. (49쪽)


제시된 가격으로 산다는 것은 속이거나 속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그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89쪽)


헌책의 커다란 특징은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떨어진 100엔 균일가 책을 빼고는 이 책들과의 만남이 모두 일생에 한 번뿐이라는 점이다. (155쪽)


아저씨도 아이들도, 스마트폰은 아주 간단하게 ‘책을 읽지 않는 층’에게도 심심풀이 아이템으로 보급되었다. (206쪽)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위한 틈은 대기업일수록 작아지고 개인일수록 커진다. (231쪽)


책방에서 산 책은 모두 선물이다. (250쪽)



  공장에서 똑같이 찍은 것을 다루는 가게는 나라 어느 곳을 가더라도 모두 똑같습니다. 이때에는 더 값싸면서 쓸 만한 것을 찾으려고 살필 수 있습니다. 겉보기로는 공장에서 똑같이 찍되, 언제나 다 다를 수밖에 없는 책이 있습니다. 커다란 책집은 조금씩 책꽂이를 달리하기는 하지만 어느 고장 큰책집에 가든 하나같이 똑같아 보입니다. 이와 달리 마을책집이나 작은책집은 책꽂이가 고장마다 다릅니다. 같은 서울이어도 책집마다 모두 달라요. 책집지기 스스로 눈썰미를 밝혀서 저마다 다를 뿐 아니라 새롭게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도록 책꽂이를 건사합니다.


  일본에서 책집을 열다가 단맛하고 쓴맛을 함께 본 분이 쓴 《서점의 일생》(야마시타 겐지/김승복 옮김, 유유, 2019)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 맛을 나란히 보고서 쓴 책이기에 두 맛이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느 대목에서 책집지기로서 단맛을 누렸는지, 또 어떻게 하여 쓴맛을 보아야 했는지를 찬찬히 밝힙니다.


  그런데 단맛하고 쓴맛은 책집지기로 살던 때에만 누리지 않았다지요. 어릴 적부터 언제나 두 맛을 누렸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대학교가 아닌 일자리를 찾아서 집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던 무렵에도 뼛속 깊이 누렸다고 해요. 마음에 맞는 짝을 만나고 아이를 낳으면서도 언제나 두 맛이 나란히 흐른다고 합니다.


  혼자 살아가는 사내나 가시내인 책집지기라면 이곳 책꽂이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인 책집지기가 꾸미는 책꽂이하고 다르기 마련입니다. 서울 사는 책집지기하고 시골 사는 책집지기도 책꽂이 꾸밈새가 다릅니다. 요즈음은 서울이나 제주뿐 아니라 작은고을이나 시골에도 마을책집이 하나둘 기지개를 켭니다. 이러면서 나라 곳곳 마을책집마다 다 다르면서 새롭고 아기자기한 멋이 한껏 흘러요.


  책집이 있는 마을하고 책집이 없는 마을은 다를 테지요. 그냥 누리책집에서 손쉽게 시켜서 받는 길하고, 아이 손을 잡고서 가볍게 나들이를 하듯 다녀올 수 있는 마을책집을 누리는 길은 참으로 다릅니다. 《서점의 일생》은 바로 뒤엣길을, 마을마다 작은 쉼터나 냇가 같은 곳이 있으면 마을이 한결 아름다우면서 빛나지 않겠느냐 하는 마음을 살며시 짚습니다. 굵직한 도시 이름으로 가르는 터전이 아닌, ‘오늘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는 마을’이라는 터전에서, 이 마을을 바탕으로 살림을 가꾸고 이야기를 함께하는 아기자기한 책집 하나가 있을 적에 얼마나 싱그러우면서 재미난가 하는 모습을 그린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을 옮긴 분도 책집지기입니다. 책집지기이자 출판사를 꾸리는 일꾼이기도 합니다.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한국문학을 일본사람한테 알리는 출판사일 뿐 아니라, 한글책을 일본사람한테 파는 책집을 나란히 꾸려 가지요. 꽤 재미난 길입니다. 앞으로 한국에 이런 마을책집이 태어날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일본문학을 일본글로 읽도록 판을 까는 마을책집, 영어문학을 영어로 읽도록 자리를 까는 마을책집, 스웨덴문학을 스웨덴말로 읽도록 마당을 펴는 마을책집, 이런 남다른 마을책집이 한국에서도 기지개를 켤 수 있을까요.


  장사가 잘되면 늘어나기도 하고, 장사가 안되면 닫기도 하는 가게 가운데 하나인 책집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숲에서 자라던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에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쁨슬픔을 이야기로 엮어서 담은 책 하나라 한다면, 이 책을 고이 품은 책집이 있는 마을이란, “서점 죽살이”를 넘어서 새삼스레 돌아볼 만한 뜻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은 마을책집 한 곳은 도시 한켠을 밝히는 조그마한 이야기숲일 테니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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