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돌개바람하고 놀기 : “너, 곧 이 나라에 온다며?” “응? 넌 어느 나라에 사는 누구야?” “난 한국이란 나라에서 사는 숲노래라고 해. 오늘은 고흥 아닌 다른 고장에 나왔어.” “그래, 반갑구나. 네가 사는 나라에서 나한테 말 건 사람은 꽤 오랜만인데?” “어. 내가 고흥을 비운 사이에 네 동무가 찾아와서 비를 흠뻑 뿌렸다더라. 이레쯤 뒤에 네가 온다고 해서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찾아왔어.” “그래? 무슨 일인데?” “넌 네 이름을 어떻게 생각해?” “무슨 이름?” “왜, 사람들이 네가 찾아오면 ‘물폭탄’을 내린다고들 하잖아?” “아, 그 짜증나는 이름! 어쩜 너희는 그러니? 내가 어떻게 폭탄이니? 너희가 나를 폭탄으로 여기니까 너희한테는 그저 폭탄이 되어 줄 수밖에 없어. 그렇잖아? 너희가 나더러 폭탄이 되기를 바라니 나는 기꺼이 폭탄이 되어 주겠다는 말씀이야.” “그렇구나. 그래서 난 너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 “그래? 그럼 넌 어떻게 부르는데?” “이 나라에는 예부터 함박꽃이라는 꽃이 있어. 그 함박꽃은 매우 크고 아름답고 향긋한데, 겨울에 오는 눈을 놓고서 함박눈이라고도 해.” “그 이름 좋네.” “그래서 나는 네가 이끌고 잔뜩 베푸는 비를 놓고서 ‘함박비’라는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하고 싶어.” “아, 함박비! 좋은걸!” “그렇지만, 난 네가 이레 뒤에 찾아올 적에 네가 베풀 함박비 말고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뭘?” “나는 돌개바람, 또는 회오리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네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멋진 구름인 줄 알아.” “그래, 우리가 구름으로 그림을 멋지게 그리지. 그런데 너희들은 내가 아무리 하늘에 멋지게 구름 그림을 그려도 안 쳐다보더라.” “다른 사람은 이야기하지 말아 주지 않겠니? 난 너랑 이야기하는걸.” “아차, 그렇지. 미안해.”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너하고 이야기할 줄 다 알았는데 다 잊었을 뿐이야,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아니 아니. 그런데 넌 어디에 사니?” “아까 말했을 텐데? 난 고흥이란 고장에 살고, 우리 집에서 살아.” “그 ‘우리 집’이 어디야?” “고흥에서 도화면이란 데가 있고, 동백마을이란 데에서도 후박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란, 또 뒤꼍에 뽕나무랑 모과나무랑 매화나무랑 유자나무랑 석류나무랑 감나무랑 흰민들레랑 온갖 푸나무가 어우러진 조그마한 보금자리이지.” “그래, 너희 보금자리를 잘 알아두겠어. 고마워.” “그런데, 내가 너한테 말을 건 까닭은 하나야. 난 너한테 마음으로 찾아가서 말을 걸 수 있고, 참말로 말을 걸고 싶어. 네가 비를 뿌리고 싶다면 비를, 네가 바람을 날리고 싶다면 바람을, 네가 구름을 그리고 싶다면 구름을, 모두 오롯이 마주하고 싶어. 다만, 내가 고흥에 있을 때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 “그래그래. 그러면 너한테는 구름 그림을 보여주지.” “그래도 될까?” “뭐 어때. 그리고 너희 보금자리 언저리만 그럴 테고, 다른 곳은 그러지 않겠어.” “왜?” “왜냐니? 너도 듣잖아?” “뭘?” “네가 사는 그 마을에도 방송이 나오더군. 내(태풍)가 찾아가면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고 방송이 흐르던데?” “아, 군청이란 데에서 날마다 숱하게 내보내는 그 방송?” “그래. 그 방송대로 너희 보금자리를 뺀 다른 곳에는 너희들 사람이 바라는 그 말대로 ‘막대한 피해’를 입혀 주지. 그리고 네가 사는 그곳에는 구름 그림을 보여주고.” “왜? 왜 그렇게 가르는데?” “왜냐니? 너희가 나한테 그걸 바라잖아? 넌 나한테 구름 그림을 바라고, 딴 녀석은 물폭탄을 바라고, 딴 녀석은 막대한 피해를 바라지. 나한테 바라는 그대로 주고 싶을 뿐이야.” “아, 그래. 그렇구나. 알았어. 아무튼 난 네가 보여줄 엄청난 구름 그림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볼게.” 2019.10.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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