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말들 - 엑소포니, 모어 바깥으로 떠나는 여행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돌베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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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영어 잘하고 싶다면 한국말부터 잘하자



《여행하는 말들》

 다와다 요코

 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9.7.



어디에서나 통하는 얕은 영어로 하는 따분한 비즈니스 토크가 세계를 뒤덮으면 참 시시할 것이다. 나는 영어를 험담하고 싶지도 않고 프랑스어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장소성이, 농밀한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국경을 넘고 싶다고 느낀다. (55쪽)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푸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펴는 자리에 가면 저한테 곧잘 이런 말을 묻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어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고. 저는 푸름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되묻습니다. “여러분은 저한테 한국말로 물어보나요, 아니면 영어로 물어보나요? 여러분이 영어를 배울 적에 머리로 생각을 어떤 말로 갈무리를 하나요?”


  유럽에서 네덜란드사람은 영국사람‘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아마 덴마크사람도 비슷할 수 있어요. 그 나라 사람은 왜 영국사람‘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말을 흔히 들을까요?


  수수께끼는 하나입니다. 네덜란드에는 네덜란드말이 있고, 덴마크에는 덴마크말이 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어린이 나이에 여러 나라 말을 한꺼번에 배워요. 네덜란드라면, 어린이 나이에 ‘네덜란드말, 영어, 프랑스말’을, 덴마크라면 ‘덴마크말, 영어, 독일말’을 배운다고 하는데요, 여러 다른 말을 가르치는 틀이 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네덜란드에서는 네덜란드말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기 때문이에요. 덴마크도 그렇고요.



작은 언어를 보호하는 정책에서 중요한 사람은 시인이다. 시로 쓰이지 않는다면 그 언어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117쪽)


과거 동유럽에서 문화 통제하에 살았던 동년배 동료를 무의식중에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는데 어쩌면 동정해야 할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 속에서 치우친 지식만 몸에 익히며 자란 나일지도 모른다. (133쪽)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무엇보다 한국말을 어떻게 배울까요? ‘국어’라는 교과목이나 시험과목이 아닌, 이 땅에서 이웃하고 사귀면서 즐겁게 생각을 꽃피우는 이야기가 될 바탕인 말일까요, 아니면 머리에 달달 집어넣어야 하는 시험지식인 문법하고 띄어쓰기하고 맞춤법하고 표준말일까요?



한자도 결국 외래어다. 오히려 가타가나는 자기가 외부인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외래어지만 한자는 자기가 오리지널인 척 거짓말하는 외래어로 보인다. (135쪽)


모처럼 의욕을 가지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티브이, 컵, 버스, 타월, 테이블, 도어, 커튼, 볼펜만 배우고 있으면 당연히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영어를 변형한 말들로만 보일 뿐이다. 더구나 이 단어가 읽기 편하다면 괜찮은데 반대로 더 어렵다. (154쪽)



  일본말보다는 독일말로 문학을 한다는 어느 일본 이웃이 쓴 《여행하는 말들》(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이 일본 이웃이 ‘독일말로 쓴 문학’을 놓고서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갈팡질팡한다지요. 그러나 독일에서는 ‘독일문학’에도 넣고 ‘세계문학’에도 넣는대요. 다만 일본은 아직 갈팡질팡한다고 합니다.


  문득 우리 옛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한국에서 일제강점기라는 그 메마르고 차갑고 서슬퍼렇고 어둡던 무렵, 한국말 아닌 일본말로 문학을 편 분이 꽤 많습니다. 우리는 이 글, ‘일본말로 한국사람이 쓴 글’을 어느 문학에 넣어야 할까요? ‘일본문학’에도 넣고 한국문학에도 넣을까요, 아니면 한국문학하고 ‘세계문학’에 넣으면 될까요?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란 글씨가 태어났어도 굳이 한문으로 문학을 한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한글(훈민정음)이 아닌 한문으로 쓴 문학은 중국문학일까요, 한국문학일까요, 아니면 세계문학일까요?



사투리를 하는 방식도 재미있었다. 각자가 과거에 어디에서 살았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살아왔는지가 그 사람이 지금 하는 말 속에 남아 있다. (159쪽)



  나라 곳곳에서 중·고등학교 푸름이를 만나는 자리에 서면, 좀처럼 사투리를 못 듣습니다. 참말로 이제는 푸름이 나이쯤 되면 사투리를 아예 모르거나 높낮이(고저장단)만 살짝 남은 말씨입니다. ‘나락’ 같은 말조차 모르는 전라도 푸름이가 꽤 많습니다. 요새는 서울 이웃도 ‘싸목싸목’ 같은 전남 사투리를 고운 말씨라 여기며 받아들여 쓰기도 하지만, 막상 전라도 어린이나 푸름이는 ‘싸목싸목’이 뭔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고 아리송해 하기 일쑤입니다.


  이 책 《여행하는 말들》을 쓴 일본 이웃은, 독일에서 갖가지 독일 사투리를 들으면서 즐겁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또 미국이나 온누리 여러 나라에서도 ‘표준 독일말’이나 ‘표준 영어’나 ‘표준 일본말’이나 ‘표준 한국말’이 아닌, 고장마다 맛깔나게 다른 말씨를 귀로 들으면서 매우 즐거우면서 재미있다고 밝혀요. 그 사투리에는, 고장말에는, 고을말에는, 바로 그 고장이나 고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손수 지은 살림결이 고스란히 묻어나거든요.



번역가가 있으니 무엇이든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흐른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이 세계 대부분의 텍스트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거나 이미 오역이 됐거나 둘 중 하나다. (162쪽)



  한국말은 엉성하면서 영어만 잘한다면, 이이는 영어만 할밖에 없습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봐요. 한국이란 나라에서 살아가는데 ‘한국 이웃’하고 생각을 나눌 한국말이 엉성하다면, 어떤 이야기를 펼 만할까요? 우리 스스로도 우리 이웃한테 내 뜻이나 마음을 제대로 못 펴겠지만, 이웃이 우리한테 펴는 뜻이나 마음을 얼마나 알아듣거나 알아차릴까요?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한국말부터 잘해야 하는 까닭’은 한 줄로도 갈무리할 만합니다. 내 뜻을 제대로 펴고, 네 뜻을 제대로 읽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느 나라 어느 말이든 홀가분하게 날아다니고 싶습니다. 표준이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나 문법이라는 굴레가 아닌, 이야기라는 꽃이 되어 훨훨 날아다니면서 즐겁고 향긋한 내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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