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노래 살림말


저들(검은이·the Darkness) : 저들은 우리를 조금도 못 건드린다. 그래서 저들은 우리를 살살 꾄다. 저들은 우리가 내는 빛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려고 살살 꾄다. 우리는 누구나 어마어마한 빛숨결인 터라, 게다가 끝없이 빛을 내뿜을 수 있는 넋인 터라, 야금야금 갉아먹힌들 대수롭지 않다. 새빛을 내쁨으면 되니까. 그렇지만 우리 둘레를 맴돌면서 우리 빛살을 갉아먹으려 하는 저들(검은이·the Darkness)은 스스로 빛을 내뿜지 못하기에 우리한테 달라붙어서 우리 빛살을 갉아먹으려 들지. 아이를 때렸든 아이한테 윽박질렀든 아이한테 막말(반말)을 했든, 이 모든 몸짓은 저들(검은이)이 우리 빛살을 갉아먹으면서 더 많이 갉아먹으려고 시킬 적에 멋모르고 따라하면서 불거진다. 우리가 저들(검은이) 귓속말을 듣지 않고서 그자리에서 멈추고서 우리 속마음(참나)을 들여다볼 줄 안다면, 이 모든 몸짓을 그치기 마련이요, 이때에 저들(검은이)은 우리 빛살을 더는 갉아먹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 우리가 스스로 멈추지 않고 ‘아이한테 막말을 한다(아이가 나이가 어려 보인다고 함부로 반말을 일삼는다)면’, 다시 말해 흔히들 어른이란 이들이 하는 바보짓 가운데 하나인, 아이한테 반말쓰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면, 우리는 끝없이 저들한테 우리 빛살을 갉아먹히는 짓을 한다는 뜻이요, 아이들 참소리를 들을 귀까지 닫힌다. 생각해 보면 된다. 왜 예전에 어른이란 이들, 이른바 나이먹은 이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사람을 그렇게 두들겨패면서 같이 살았을까? 어른은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스스로 큰다. 티끌만큼이라도 잘못 생각하면 안 된다. 어버이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아이는 스스로 크려고 이 땅에 태어났다.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말 노릇이다. 아이가 스스로 배우도록 지켜보면서 돌보기만 해야 할 뿐이다. 나아가, 나중에는 아이가 스스로 지켜보고 스스로 돌보는 살림을 스스로 익히도록 곁에서 가볍게 거들기만 할 노릇이다. 아무튼, 지난날 “나이먹은 이들”은 독재자(전두환, 박정희, 이승만)한테 굽실거리면서 아이를 두들겨패고 막말을 하는 짓으로 ‘스스로 허울을 뒤집어쓰거나 탈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이런 허울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나이먹은 이들” 스스로 조금씩 느꼈고, 이제 제법 이 허울이나 탈을 벗을까 말까 하고 망설이는 때가 되었기에, 이 삶터가 조금은 나아지는 듯 보인다. 이제 첫발을 뗄까 말까 하는 때에 이른 셈이다. 저들은 우리를 먹여살리지 않고, 저들은 스스로 빛을 뿜어서 스스로 기운을 얻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도 저들을 쉽게 따라하고 만다. 저들이 귓속말로 읊는 말이 얼핏 달콤해 보이니까. 저들은 흔히 “야, 쟤가 잘못했잖아. 얼른 쟤를 때려. 얼른 쟤를 꾸짖어. 얼른 쟤한테 반말을 해. 얼른 쟤를 훈계해.” 하고 부추긴다. 이 부추김질에 놀아난 줄 깨달은 “나이먹은 이들”이라면, 이 부추김질대로 따른 뒤에 바로 눈물을 쏟으면서 ‘아, 또 내가 안 할 일을 했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그러나 스스로 저들(검은이)을 떨쳐낸 몸이나 마음이 아니니, 똑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길은 쉽다.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안다. 그러나 스스로 허울이나 탈을 쓴 옷을 입기에, 스스로 아는 모든 것을 스스로 삶에서 밝히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이런 굴레를 스스로 자꾸 뒤집어쓰니, 처음에는 ‘밝히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나중에는 ‘밝히지 못하는’ 모습으로 치닫기도 한다. 우리는 알고 저들은 모르는 대목이 있으나, 이제는 우리도 저들도 똑같이 모르는 수렁으로 휩쓸린다고 할까. 우리 스스로 살리는 길을 차근차근 가면 저들은 우리 곁에 얼씬조차 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살리면 된다. 네가 웃기에 내가 웃을 까닭이 없다. 내가 스스로 웃고 싶으니 내가 스스로 웃을 뿐이다. 네가 울기에 내가 울 까닭이 없다. 내가 스스로 울고 싶으니 내가 스스로 울 뿐이다. 아름다운 책이나 영화를 볼 적이든, 어떤 일을 맞닥뜨리든 다 같다. 스스로 마음을 움직여 스스로 생각을 심고 스스로 몸을 다스리면 된다. 2019.9.2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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