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일하고 있는 형이 어제 인천에 왔다고 합니다. 어제는 제가 잠깐 서울로 헌책방 나들이를 온 터라 못 만났고, 오늘 저녁 여섯 시쯤 일을 마친다고 해서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은 벌써 열 시. 다른 일로 많이 바쁜지 모르겠네요.

 몸이 고단해서 잠깐 4층 살림방으로 올라갑니다. 어제 사 온 만화책을 두 권 봅니다. 불을 끄고 가만히 드러눕습니다. 모기 한 마리가 턱밑에 다가왔길래 손으로 툭 쳐서 날려 보냅니다. 불을 껐어도 길가에 켜진 거리등 불빛이 방으로 스며듭니다. 4층인데에도 그러네요. 누워 있으니 온갖 소리가 잘 들립니다. 인천으로 오는 전철과 인천에서 빠져나가는 전철 소리가 들립니다. 제 어릴 적에는 제2부두에 배 들어오는 뱃고동 소리를 늘 들었습니다. 뚜우 하는 큰소리는 퍽 멀리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국민학교 옆에는 연탄공장이 있었고, 연탄공장으로는 부지런히 석탄이 들어와서 연탄으로 만들어진 뒤 기차에 실려 서울로 보내졌습니다. 국민학교에 있을 때에도 기차소리를 늘 익숙하게 들었습니다.

 술에 절은 듯한 아가씨인지 아주머니 목소리를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형이 많이 늦으려나. 아니면 오늘도 못 보려나. 설거지를 하고 밥을 안치고 빨래를 합니다.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시골집에서 물 구경을 못하며 빨래를 못했습니다. 인천으로 옮긴 이제는 물을 마음껏 쓸 수 있고, 빨래도 마음놓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퍽 차가운 물로 빨래를 하면서도 즐겁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동안 빨지 못하고 미뤄 둔 옷을 날마다 조금씩 빨고 있는데, 곧 이불도 빨려고 합니다. 이불을 널자면 대나무 하나 사 와서 마당에 빨랫대를 세우면 되려나.

 3층 도서관으로 내려옵니다. 3층을 온통 채우고 있는 끈으로 묶인 책들. 히유. 이 책을 어느 세월에 갈무리하려나. 어쨌든 도서관 문을 열고 조금씩 갈무리할밖에는. 그동안 찍어 놓은 수 만 장이 넘는 사진은 언제 갈무리하나. 히유. 써 놓은 글은 또. 아, 나한테도 곁에서 일을 거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 하나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내 곁에서 일을 거들어 주는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닌 ‘남 일을 해 주는 셈’인데, 나한테 쓸모있을 일을 거들어 줄 그이한테, ‘나라고 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 보탬이 될는지. 나야 거들어 주는 손길이 고맙지만, 그이가 내 일을 거들며 배우거나 얻는 것이 있을는지. 도와달라는 말을 하기란, 누군가를 도와주기보다 훨씬 어렵지 않을는지.

 술 한 병을 사러 나갈까. 그냥 물이나 마실까. 곧 밥이 다 될 텐데 밥반찬으로 무얼 먹을까. 술 한 병을 사고 밥을 안주로 삼을까.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고, 멀뚱멀뚱 잠 또한 오지 않는 저녁나절. 쌓인 책을 바라보니 혼자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그렇지만 이 책을 혼자힘으로 갈무리하지 못한다면 책 임자로서 내 몫을 못하는 셈이라는 생각이 들고. (4340.4.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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