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50. 루



  아직 한국말 가운데 ‘루’로 첫머리를 여는 낱말은 없지 싶습니다. 한국말은 어쩐지 ㄹ로 첫머리를 그리 안 열려고 해요. 그러나 사이나 끝에 깃드는 ‘루’는 꽤 많습니다. “미루나무 한 그루”를, 그루잠을, “머루를 먹는 마루”를, 그늘나루에 버스나루에 기차나루를, 여러 루를 혀에 얹다가, ‘루루’처럼 내는 소리도 한국말로 삼을 만할 텐데 싶습니다. 굳이 서양말 ‘lu-lu’만 생각하기보다, 새나 풀벌레가 내는 소리로 떠올릴 수 있고, 휘파람을 불며 나오는 소리로 여길 수 있습니다. 고루 나누고 두루 펴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루’를 돌려서 ‘로’로 오면, 서로서로 반갑습니다. 이대로도 좋고 그대로 가도 나쁘지 않은데, 아무래도 마음대로 하는 길이 한결 나으리라 느껴요. 하나하나 따진다면, 여는 소리가 있고, 받치는 소리가 있으며, 몸을 이루는 소리가 있다가, 마무르는 소리가 있어요. 우리 몸에 손이며 발이 따로 있고, 머리카락하고 온갖 털에다가 손발톱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처음이거나 복판이라고 여길 수 없습니다. 여는 소리로는 드문 ‘루’라 하더라도, 갖가지 소리로 어우러지는 ‘루’이기에, 우리는 하루를 더욱 즐겁게 누리고, 오늘을 새로 가다듬는 슬기로운 마음을 가꿀 만하지 싶습니다. 한 마디에 두 마디를 엮고, 두 마디에 석 마디를 맺으면서 말이 태어나고 생각이 자랍니다. 무럭무럭 크는 마음이 되어 모루처럼 듬직하고 단단한 길을 이루자고 다짐합니다. ㅅㄴㄹ




한 그루 심었더니

꽃피고 씨맺고 퍼져서

석 그루 서른 그루 퍼져

두루두루 푸른 고을


마루에선 뛰지 말라지만

고갯마루는 뛰어넘고

물마루는 넘실 타고

하늘마루는 깡총 날아


미루기보다는 제꺽 하지

후루룩 먹어도 맛있어

도루묵 아니도록 힘껏 하고

호로록 빨고서 방울 뿜어


오늘 하루는 어떤 날?

어제 하루는 무슨 빛?

앞골 들마루에 가면

새까만 머루 한창이야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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