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49. 숨결
작은아이하고 둘이 여러 고장을 돌다가 경북 어느 냇물에서 실컷 놀았습니다. 이때에 ‘물고기’를 잔뜩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 켕겼습니다. 이날 켕긴 응어리는 며칠 뒤에 슬며시 목소리가 되어 나타났어요. 냇물살을 가르는 아이들이, 또 바닷물살을 헤엄치는 동무들이, 또 골짝물살을 누리는 이웃들이, “너는 ‘사람고기’이니?” 하고 묻는 말을 마음으로 들려주더군요. 이리하여 골짝물이랑 냇물이랑 바닷물에서 마주하는 숨결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옮겨적었어요. 우리는 흔히 물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 이렇게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을 ‘고기’로 일컫곤 합니다. 사람이라는 몸으로 이들 몸을 먹어야 한다고 여기니 ‘고기’라는 이름으로 가리킬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몸일까요? 주검이 된 사람이라면, 이 죽은 몸은 개미나 파리나 ‘물고기’가 하루 만에라도 남김없이 먹어치워서 없앱니다. 이 별에 쓰레기가 남지 않게끔 ‘죽은 사람 몸’을 온갖 이웃들이 갉아먹어서 치워 놓지요. 산 채로 먹기에 ‘날고기’라 따로 일컫습니다. 으레 죽은 몸으로 먹기에 그저 ‘고기’라 해요. 그러니까 사람눈으로만 바라보지 않고서, 이웃눈으로 함께 바라보려는 마음이 된다면, 물에서도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고기’란 없겠지요. ‘주검(죽은 몸)이라는 고기’를 먹어야만 우리들 사람몸을 건사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우리가 쓰는 말이 안 바뀔 뿐 아니라, 우리가 나누는 마음도 안 바뀌리라 느낍니다. ㅅㄴㄹ
숨결
골짝물에서 발 담그며 놀다
작고 예쁜 송사리 봤지
“물고기야, 너 참 곱다.”
“첵! 날 ‘고기’로 부르지 마!”
냇물에서 물장구를 치다
주먹만 한 어름치 봤네
“저기, 너 아주 멋스럽다.”
“칫! 내 ‘이름’을 모르는군!”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데
팔뚝보다 큰 삼치가 펄쩍
“어어, 바다동무야 반가워.”
“흠, 너 쪼끔은 나아졌구나.”
내 곁으로 쪼르르 모여서
톡 쏘듯 들려주는 말
“너희를 ‘사람고기’로 부르면 좋니?”
“우리는 ‘물숨결’ 너희는 ‘뭍숨결’이야.”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