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노래] 마음 1994-2019

..

..

2020년에 <우리말 책읽기 사전>이란 책을 써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런 책이 태어나자면, 2019년 올해 7월에 텀블벅으로 <우리말 글쓰기 사전>부터 씩씩하게 태어나야겠지.


https://tumblbug.com/writing0603


이 텀블벅에 즐겁게 힘을 실어 주셔요.

<우리말 책읽기 사전>이란 책을 낸다면 실을 '마음'이란 꼭지에 담을 글자락을 그럭저럭 추스른 아침입니다.


++

++

++


숲노래책노래. 마음


1994.6.5. 우리가 읽어야 하는 책은 없다고 느낀다. 우리 마음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가를 읽으면서 책을 만난다고 느낀다. 우리 마음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읽는 동안 책을 알아차린다고 느낀다. 여느 때에 늘 숲을 마음에 담은 사람은 어느 곳에 가든 숲을 다루는 책을 한눈에 알아보더라. 언제나 시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서관에서든 학교에서든 시를 노래하는 책을 시나브로 알아내고. 구름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서울을 벗어나 너른 들녘을 마주하더라도 구름을 알아보지 못해. 들꽃을 마음에 심지 않으면 골목에서나 숲에서나 들꽃을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꽃집 옆에 서더라도 꽃내음을 못 맡아. 마음 가는 곳을 읽는다. 마음으로 읽기에 줄거리 아닌 글쓴이 넋과 얼을 책에서 헤아린다. 마음으로 읽으니까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아닌 책을, 말 그대로 책을 읽는다. 인기도서나 비인기도서를 읽을 까닭이 없다. 인문책이나 처세책을 읽을 까닭도 없다. 그저 책을 읽는다. 오롯이 책을 만난다. 마음이 사랑스레 피어나도록 책을 읽는다. 


1998.12.21.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다르다. 아무리 훌륭하다는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짓궂거나 얄궂은 마음이라면 읽지 않는만 못할 수조차 있다. 성경을 읽어야 착해지지 않더라. 착하게 살면서 성경을 읽어야지. 동화책을 읽어야 맑은 마음 되지 않아. 맑은 마음으로 살면서 동화책을 읽어야지. 시집을 읽어야 문학을 알거나 소설책을 읽어야 문학을 누리지 않더군. 삶이 언제나 시처럼 흐르면서 시집을 읽고, 삶을 늘 소설처럼 이야기샘 솟도록 가꾸면서 소설책을 읽어야 아름답더라. 눈으로도 읽지만, 눈과 함께 마음으로 읽는 책. 눈으로도 꽃을 바라보고 나무를 헤아리지만, 눈과 함께 마음으로 바라보는 꽃이요 마음으로 헤아리는 나무. 밥 한 그릇을 혀와 입으로 먹지만, 혀와 입과 함께 마음으로 먹는다. 밥을 지은 사람 마음을 느끼고, 밥으로 차리기까지 흙을 보살핀 흙지기 손길을 나란히 누린다.


1999.12.18.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펼치기 앞서 마음을 펼쳐야지 싶다. 마음이 어떤 모습인지 가만히 헤아리면서, 마음자락을 책 앞에 펼쳐야지 싶다. 맑고 싱그러운 숨을 들이마시고 싶다면, 먼저 몸에 깃든 바람을 바깥으로 내보내야겠지. 핏톨에 얹혀 온몸 구석구석 돌고 난 바람을 살그마니 바깥으로 내보낸 뒤에라야 맑고 싱그러운 숨이 몸으로 보드랍게 스며들어 새 기운이 솟을 수 있도록 북돋운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꼬옥 안자면 두 팔을 벌려야 한다. 두 팔을 벌려야 안지, 두 팔을 안 벌려서는 아이를 안지 못해. 콩씨를 심어야 콩을 거두고, 팥씨를 심어야 팥을 거두어. 숲에 깃들어야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고, 흙을 일구어야 맛난 밥을 얻어. 마음을 열 적에 책이 가슴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열고 책을 손에 쥐어 한 쪽 두 쪽 넘길 적에 비로소 이야기 한 자락 가슴으로 스며들어.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겉훑기로 그쳐.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책을 손에 쥐면 지식이나 정보는 얻더라도 꿈과 사랑은 누리지 못해. 마음을 열어 책을 읽으면, 지식이나 정보는 잘 모른다 하더라도 꿈과 사랑을 따사로이 누려. 꿈과 사랑을 따사로이 누리는 사람은, 책으로 지식이나 정보를 못 얻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삶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찾아내.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잖아.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면서 밥을 짓잖아.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면서 지은 밥을 먹고 기운을 내어 흙을 일구고 나무와 풀을 돌보잖아.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면서 지은 밥을 먹고 기운을 내어 흙을 일구고 나무와 풀을 돌보던 손길로 곁님과 아이를 곱게 안으면서 하루를 즐겁게 누리잖아. 책은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있는데.


2003.11.18. 모든 책은 마음으로 들어온다.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은 책은 삶으로 들어오지 못한 책. 마음으로 들어온 책일 적에 사랑씨앗 한 톨 두 톨 드리우면서 우리 마음밭에서 사랑나무가 자란다. 사랑나무가 자랄 적에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사랑말 되고, 우리 손으로 쓰는 글은 사랑글 되며, 우리 목청으로 부르는 노래는 사랑노래가 된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 하나 곱게 건사할 수 있다면, 밥을 지으며 사랑밥을 나누지. 집을 돌보며 사랑집을 가꾸지. 옷을 기우며 사랑옷을 입어. 일은 사랑일 되고, 놀이는 사랑놀이 될 테지. 마실은 사랑마실이 될 테며, 이야기는 언제나 사랑이야기 되겠지. 책을 마음으로 담지 않는다면, 마음밭에 사랑씨앗을 못 뿌린다. 사랑씨앗을 못 뿌렸으니 마음밭에서 사랑나무가 자랄 수 없고, 다른 나무도 자랄 수 없네. 책을 읽는다고 한다면, 스스로 마음밭에 씨앗을 뿌리고 싶기 때문 아닐까. 책은 길이 아니다. 책은 스스로 삶길을 열도록 북돋우는 길동무 아닐까. 책을 읽으며 마음밭에 스스로 뿌릴 씨앗이 무엇인가 하고 알아차린다. 책을 읽는 사이 삶길을 어떻게 다스릴 적에 아름다운가 하고 깨닫는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을 차근차근 아끼고 사랑하면 그 책이 누구 손으로 돌아가든 아름답게 읽힐 수 있으리라. 곧, 내가 읽은 책은 이 삶을 살찌우는 밑거름이 되고, 내가 읽은 책으로 오늘 삶을 아름답게 다스리면, 이 삶에서 흐르는 오늘 빛이 둘레로 찬찬히 퍼져 이웃들이 저마다 이녁 삶을 아름답게 다스리도록 돕기도 하리라. 내가 읽은 아름다운 책을 이웃한테 건네주어도 좋다. 헌책집이라는 곳이 있으니, 내가 읽은 책을 가만히 내놓으면, 누가 이 헌책집으로 찾아와서 내가 내놓은 책을 기쁘게 장만하겠지. 또는, 내가 읽은 책에서 얻은 아름다운 빛으로 오늘 삶길을 가꿀 수 있으면, 이 삶빛은 언제라도 둘레에 환하게 드리울 테니, 이웃과 동무는 우리 빛을 나누어 받으면서 즐겁게 삶읽기를 누릴 수 있겠지. 마음으로 들어온 책은 마음에서 빛나 따사로운 바람이 된다.


2008.11.23. 우리가 먹는 밥이 우리 몸을 이룬다. 어떤 밥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몸이 달라진다. 우리가 마시는 물과 바람이 우리 몸을 이룬다. 어떤 물과 바람을 마시느냐에 따라 우리 몸이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 생각을 이룬다. 어떤 것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가 읽는 것이 우리 앎을 이룬다. 어떤 것을 읽느냐에 따라 우리 앎이 달라진다. 그러면, 마음과 사랑과 꿈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마음을 어떻게 가꾸고, 사랑은 어떻게 나누며, 꿈은 어떻게 키울 때에, 우리 스스로 기쁘면서 아름다울 수 있을까. ㅈㅈㄷ신문을 읽는 사람은 두 갈래 길로 간다. 하나는 ㅈㅈㄷ이 외치는 대로 멍하니 좇는 길을 간다. 다른 하나는 ㅈㅈㄷ이 외치는 거짓을 알아채면서 ㅈㅈㄷ을 꾸짖거나 손가락질하는 길을 간다. 둘 모두 ㅈㅈㄷ 언저리에서 헤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ㅈㅈㄷ을 끊으면 된다. 들풀을 보거나 들꽃을 보는 사람은 들풀과 들꽃을 차츰차츰 익힌다. 어느 풀을 뜯어서 먹으면 몸에 도움이 되는가를 스스로 시나브로 깨닫고, 어느 꽃을 어느 철에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지 찬찬히 알아챈다. 도감을 뒤지거나 인터넷을 살핀다고 해서 들풀이나 들꽃을 알아채거나 배우지 못한다. 육아책을 만 권쯤 읽기에 아이를 잘 돌보거나 키우지 않는다. 육아책은 한 권만 읽어도 되지만, 한 권조차 안 읽어도 된다. 왜냐하면, 내가 키울 아이는 우리 아이인 터라, 우리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고 살가이 보듬으면서 따스히 보살필 수 있으면 된다. 인문책을 읽는 사람은 인문책 지식을 머리에 담는다. 베스트셀러를 읽는 사람은 베스트셀러 줄거리를 머리에 담는다. 교과서와 문제집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교과서와 문제집 정보를 머리에 담는다. 스스로 찾거나 보거나 읽는 대로 마음을 이룬다. 어느 책을 찾거나 보거나 읽든 그리 대수롭지 않다. 이러한 모습이 되기에 훌륭하지 않고, 저러한 모습이 되기에 볼썽사납지 않다. 그저 그뿐이요, 그저 그이 스스로 나아가는 삶일 뿐이다. 넋이 무엇인지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은 넋을 바라볼 수 있다. 하루가 걸릴 수 있고 한 해가 걸릴 수 있으며 백 해나 즈믄 해가 걸릴 수 있다.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은 자꾸 바라보면서 꾸준히 생각하기 때문에 마침내 제대로 알아채면서 깨닫는다.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조금도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도 못 깨닫는다. 누구는 야구나 축구를 잘 알 테지만, 누구는 야구나 축구라는 이름조차 모른다. 바라보는 사람은 차근차근 알면서 깨달을 테지만, 안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조금도 알 수 없다. 마음을 이루는 책인 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먼저 내가 어떠한 길을 걷는 삶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삶길을 생각하면서 이 삶길에 걸맞구나 싶은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말글을 다루는 사람은 말글을 다룬 책과 온갖 사전을 곁에 두면서 말글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릴 수 있다. 역사를 다루는 사람은 역사를 다룬 책과 온갖 자료를 옆에 놓으면서 역사를 누구보다 깊이 돌아볼 수 있다. 보고 다시 보며 또 보니, 잘 알고 깊이 알며 넓게 알 수밖에 없다. 우리는 책을 읽는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을 이루는 책을 읽는다. 좋거나 나쁜 책은 없다. 그저 마음을 이루는 책을 읽을 뿐이다. 어느 책을 고를는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면서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값싼 책을 살 수도 있고 비싼 책을 살 수도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우리 삶을 씩씩하게 걷는 길에 맞는 책’인지 제대로 살펴서 품에 안아야 한다.


2010.1.2.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서 고른다. 스스로 찾아서 고른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겨를을 내고, 스스로 가장 사랑스러운 곳에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엎드려서, 스스로 가장 즐거운 눈빛을 밝혀 ‘이야기’를 누린다. 그런데,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이 아닌 책읽기가 있다. 이를테면, 서평도서라든지 홍보도서가 되면 아름답지도 사랑스럽지도 즐겁지도 않더라. 추천도서와 명작도서라면 아름답지도 사랑스럽지도 즐겁지도 않더라. 독후감 숙제나 논술훈련이라면 아름다울 수도 사랑스러울 수도 즐거울 수도 없더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신문이나 영화 같은 매체는 우리한테 자꾸 ‘유행’이나 ‘사건 사고’ 같은 데에 얽매이도록 할 뿐 아니라, 생각을 안 하고 빨려들도록 이끌지 싶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깊이 쓰면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저 휩쓸리거나 휘말리고 만다. 그렇지만, 아무리 책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서 찾고 고르고 읽고 삭이고 누리고 나누지 않는다면, 멍하니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는 몸짓하고 똑같겠지. 마음을 기울이기에 아름다운 책읽기가 된다. 마음을 쏟을 적에 사랑스러운 책읽기가 된다. 마음을 들이면서 삶을 지으니 즐거운 책읽기가 된다. 책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즐겁게 읽어서 누리는 사람은, 종이책이 아닌 나무와 풀과 새와 구름과 해와 바람과 흙을 읽으면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을 맛본다.


2013.11.1. 바쁜 일이 있을 적에는 한 줄만 차근차근 읽어도 된다. 굳이 긴 글이나 여러 글을 다 읽지 않아도 되지. 바쁜 일이 있으면 바쁜 일에 마음이 사로잡히기 마련이라, 책이나 글을 제대로 살피기 어렵다. 책이나 글은 바쁜 몸으로는 못 읽기 때문. 바쁜 사람은 노래를 제대로 못 듣는다. 바쁜 사람은 사랑을 제대로 못 한다. 바쁜 사람은 밥맛을 제대로 못 느낀다. 바쁜 사람은 하늘빛과 햇빛과 웃음빛을 찬찬히 헤아리지 못한다. 안 바쁠 때에, 아니 느긋할 때에, 느긋하면서 아늑하고 따사로울 적에 비로소 책을 읽는다. 느긋하면서 아늑하고 따사로울 적에 찬찬히 노래를 듣고 사랑을 하며 밥맛을 느낀다. 느긋한 삶에서 느긋한 말이 샘솟아. 아늑한 삶에서 아늑한 말이 흘러. 따사로운 삶에서 따사로운 말이 고운 빛으로 거듭나.


2015.2.26. 배울 마음이 없는 사람은 배울 수 없다. 참으로 그렇다. 배울 마음이 있는 사람은 배울 수 있다. 참말로 이와 같다. 눈을 뜨고 싶다면 눈을 뜰 수 있다. 눈을 감고 싶다면 눈을 감을 수 있다. 언제나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모든 일을 한다. 언제나 내가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서 내 길을 걷는다. 남이 나를 가르치지 못한다. 내가 나를 가르친다. 왜냐하면, 아무리 남들이 내 앞에서 멋진 강의와 강연을 베풀어도 ‘스스로 들어서 배울 마음’을 끌어내야 비로소 배우기 때문. 그러니까, 나를 가르치는 사람은 언제나 나일 뿐. 숱한 스승이나 멋진 길잡이나 훌륭한 이슬떨이는 우리 곁에서 이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일 뿐. 이들이 우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가르치려고 이들, 스승이나 길잡이나 이슬떨이를 불러서 함께 이 길을 걷는다. 남이 나를 살리지 못한다. 내가 나를 살린다. 왜냐하면, 아무리 내 머리에 ‘산소마스크’를 씌워 주어도, 내 마음이 움직여서 내 몸이 숨을 쉬도록 말을 걸지 않으면, 나는 숨을 못 쉬고 죽는다. 내가 살려면 내가 기운을 내어 숨을 쉬고 밥을 먹어야 한다. 배우려는 사람은 늘 스스로 배운다. 살려는 사람은 늘 스스로 살아난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늘 스스로 책을 읽는다. 돈을 벌려는 사람은 늘 스스로 돈을 번다. 삶을 지으려는 사람은 늘 스스로 삶을 짓는다.


2017.10.4. 나이를 한 살 더 먹기에 더 슬기롭지 않더군. 돈을 더 많이 벌기에 더 너그럽지 않더라. 글을 더 많이 썼기에 더 빼어나지 않네. 말을 더 잘 하기에 더 착하지는 않고. 책을 더 많이 읽었기에 더 아름답지는 않지. 땅을 더 거느리기에 더 넉넉하지 않을 뿐더러, 밥을 더 많이 먹었기에 더 배부르지 않아.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늘 달라지는 살림. 읽는다는 마음이란, 우리 스스로 아직 모자라거나 어리숙한 줄 깨닫고 이를 채우거나 가다듬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즐겁게 새로 지을 길을 갈고닦거나 가꾸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한테는 책 하나조차 없어도 된다. 참답고 고우며 착하게 읽으려는 마음이 있을 적에는 우리 스스로 책이 되고 우리 스스로 책을 지으며 우리 이웃이 빚는 숱한 삶책을 받아들일 수 있다.


2018.12.12. 나는 “모든 아이는 열 살 무렵까지 신나게 뛰놀 줄 알아야 합니다.” 하고 한동안 생각했다. 우리 집 큰아이는 2017년에 열 살이다. 얼마 앞서 곁님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곁님이 한 마디를 하네. “아이들이 스무 살까지 신나게 뛰놀아도 되지 않을까요?” 곁님이 문득 들려준 말을 듣고 10초쯤 생각했다. 더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더군. 참말로 모든 아이는 열 살 무렵까지 신나게 뛰놀고, 스무 살에 이르도록 재미나게 뛰놀면 좋겠네. 나중에 서른 살 적까지 사랑스레 뛰놀면 더욱 좋구나 싶고. 놀 줄 아는 마음이란 어떻게 누구하고 놀 적에 어떻게 즐거운가를 알 수 있는 삶이 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 마음은 고이 흐르고 흘러서 어떻게 누구하고 일할 적에 어떻게 즐거운가를 알아차리는 살림으로 거듭나지 싶다. 잘 놀며 자란 아이가 잘 일하며 살림짓는 어른이 되지 싶다. 슬기롭고 사랑스레 놀며 자란 아이가 슬기로우며 사랑스레 살림을 지어 새롭게 아이를 낳거나 돌보는 어버이가 되지 싶다. 그래서 신나게 뛰놀며 자란 아이는 책을 읽어도 참으로 아름답고 알차며 사랑스레 읽는 멋스러운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지 싶다. 


2019.6.29. “저기 노래가 흐르나?” “저기 차가 지나갔나?” “저기 누가 있나?” “저기 덥나?” “저기 춥나?” 내가 나를 지켜보면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가려고 한다면, 우리 마음은 우리 몸이 언제 어디에서나 가장 빛나게 튼튼한 결을 잇도록 이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기울일 줄 알면, 오직 우리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움직이면서 스스로 즐겁게 지낸다. 이때에는 시끄러움·수선스러움·더위·추위·남눈 모두 튕겨낸다. 책읽기도 좋고 글쓰기도 좋고 밭일도 좋고 집안일도 좋고 수다질도 좋다. 무엇이든 좋으니 생각해 보자. 우리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서 이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를 하면 이 일이나 놀이를 빼고 다른 것은 하나도 우리 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나는 수다꽃잔치에서는 추위도 더위도 ‘하루가 저무는 줄’도 잊는다. 멋진 삶이자 마음이 아닌가?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