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여자 - 공선옥.김미월 산문집
공선옥.김미월 지음 / 유유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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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75


《내가 사랑한 여자》

 공선옥·김미월

 유유

 2012.7.20.



강경애라는 작가가 없었다면 내가 감히 어디 가서 ‘작가가 나온다면 바로 너희들처럼 가난하고 너희들처럼 학원도 못 가고 너희들처럼 돈도 없는 아이들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15쪽)


캐테 콜비츠의 자화상을 보다 나는 흠칫 놀랐다. 언젠가 어두컴컴한 부엌 부뚜막에 홀로 앉아 계시던 내 어머니의 모습이 거기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28쪽)


기자가 카슨에게 늦은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하자 그녀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때로는 결혼한 남자 작가들이 부러워요. 아내가 밥도 해주고 돌봐주니까요. 불필요한 방해를 받지 않으니 시간도 절약되잖아요.” (51쪽)


예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이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이미 삶 자체가 빛날 수밖에 없었던 아름다운 예술가, 아름다운 여성, 아름다운 어머니 펄. 그녀에게 경배를. (112쪽)



  락슈미바이라는 분이 걸어온 길을 다룬 인도 영화를 보았습니다. 인도에서 뭇사내가 벌벌 떨면서 영국 동인도회사 앞에서 무릎을 꿇지는 않았을 테지만, 무척 많다 싶은 사내들은 동인도회사 허수아비가 되거나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짐기에 어떠했을까요? 뭇사내는 당차게 일어나서 맞섰을까요, 아니면 벌벌 떨면서 제국주의 군화발에 혀를 핥았을까요.


  모아나, 홈, 인사이드아웃, 프로즌, 트롤, 뮬란, 포카혼타스 같은 만화영화를 즐겁게 보았는데, 문득 돌아보니 적잖은 만화영화에서 단단한 울타리를 깨거나 부수는 가시내가 나옵니다. 단단한 울타리란 저 너머에 있기도 하고, 우리 마을이나 집에 있기도 하고, 우리 마음에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가시내만 울타리를 깨거나 부수지 않아요. 사내도 울타리를 깨거나 부수는데, 울타리를 깨거나 부술 적에는 언제나 사이좋게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해요.


  《내가 사랑한 여자》(공선옥·김미월, 유유, 2012)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엮는 이야기책입니다. 가시내로서 가시내를 사랑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온누리에서 저마다 다르지만 똑같이 울타리를 깨거나 부수려 했던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사내가 세운 울타리를 사내가 깨기도 합니다만, 가시내가 세운 울타리를 사내가 깨는 일은 드뭅니다. 없다시피 하기도 하지요. 어떤가요, 우리 삶자리에서 가시내가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 있을까요? 모든 울타리는 사내 스스로 벌벌 떨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바보스레 세운 무덤은 아닐까요?


  힘으로 세운 울타리는 힘으로 깨거나 부술 수 없습니다. 해님이 따순 볕으로 흐물흐물 녹여내어 껍데기를 벗기듯, 어떤 힘울타리도 작은 씨앗 같은 사랑으로 살살 녹여서 허울을 벗기지 싶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님이란, 포근한 겨울볕이요 따스한 봄볕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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